과학자들은 소에서 사람으로 AI가 전파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소 간 전염이 일어나는지 아직 알 수 없고 바이러스의 진화 방향을 정확히 알지 못해 우려하고 있다./픽사베이

지난달 25일 미국 텍사스주와 캔자스주를 비롯한 6개 주 농장 16곳에서 젖소들이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사례가 확인되면서 미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2021년 이후 조류인플루엔자가 전세계로 확산하면서 세계 곳곳의 조류는 물론 북극곰과 펭귄 등이 감염된 사례가 잇따라 보고됐지만 가축인 소가 고병원성 ‘H5N1′에 감염된 사례가 보고된 건 처음이다. 지난 1일에는 소와 접촉한 주민이 감염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8일(현지 시각) 과학자들이 포유류인 소에서 사람으로 전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다른 소로 전파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학자들은 포유류끼리 감염이 쉽게 이뤄질 경우 인간 감염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 사람-소 접촉 많을수록 사람으로 전파 기회 늘어나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인 H5N1는 1996년 중국에서 처음 발견됐다. H5N1형이라는 말은 바이러스 표면의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 단백질이 각각 5형, 1형이란 뜻이다. HA는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 역할을 하며, NA는 증식 후 인체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한다. 해마다 계절독감 백신을 만드는 것은 바이러스가 두 단백질의 형태를 매번 바꾸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3년부터 유행해 지난달 25일까지 463명의 목숨을 앗아간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바로 H5N1이다.

조류인플루엔자는 2021년부터 전 세계에 퍼지면서 야생 조류와 가금류 수억 마리 목숨을 빼앗았다. 조류 외에도 물개와 곰을 포함한 포유류가 감염된 것이 확인됐다. 소가 H5N1에 감염된 것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물론, 소에서 사람이 전염된 사례도 이번이 처음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광범위한 전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더 많은 포유류를 감염시킬수록 사람에게도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바이러스가 진화를 거듭해 사람을 전염시키는 변종이 탄생할 위험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대니얼 골드힐(Daniel Goldhill) 영국 왕립수의대 박사는 “특히 농장은 사람이 소와 자주 접촉하면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퍼질 수 있는 기회가 많다”며 “바이러스가 점차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번에 소로부터 H5N1이 감염된 사람은 결막염을 앓았다. 콧속 바이러스 수치가 낮아 호흡기 감염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감염된 젖소에서 추출한 바이러스와, 이 사람에게서 추출한 바이러스를 분석한 결과 유전적으로 비슷했다. 소에서 사람에게 전염이 됐다는 증거다.

과학자들은 이 H5N1가 소들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감염된 소들이 야생 조류로부터 감염된 것인지, 또는 소 간 전염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리처드 웨비(Richard Webby) 미국 세인트주드아동연구병원 바이러스학부 교수는 “이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지는지 이해해야 한다”며 “소 간 전염이 가능하다면 그만큼 다른 포유류나 사람에게 전염될 위험이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염된 소가 다른 소를 전염시킨다는 것은 바이러스가 조류가 아닌 포유류 간 전염되는 데 훨씬 효율적으로 진화했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H5N1에 소가 감염된 사례가 미국 여러 주에서 확인된 것으로 보아, 이미 소 간 전파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소와 소 사이에서 어떻게 퍼지는지 구체적인 경로도 찾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바이러스 수치가 소젖에서 가장 높다. 웨비 교수는 “H5N1이 오염된 착유기 등을 통해 전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공기 전파보다 느리기 때문에 바이러스 전파를 제어하기가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몇 년 간 전 세계적으로 H5N1이 퍼졌음에도 이제야 미국에서만 소 감염 사례가 나온 이유가 이것일 수 있다. 마리온 쿠프먼스(Marion Koopmans)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 의료센터 바이러스과학부 책임자는 “감염 사례가 나온 지역에서 소를 사육하는 방식에 독특한 점이 있는지, 또는 바이러스가 이 환경에서 지속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얻은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H5N1이 전세계적으로 소에게 얼마나 널리 퍼질 수 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당장 H5N1이 사람에게 널리 퍼질 위험은 작다고 보고 있다. 새나 소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가 사람의 코와 입에 있는 세포를 침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유류 감염 사례가 점차 늘어나면 사람도 감염시키는 변종이 나타날 위험이 그만큼 커진다.

골드힐 박사는 “만약 바이러스가 사람의 호흡기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는 돌연변이를 갖게 된다면 사람에게도 널리 전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플로리안 크래머(Florian Krammer) 미국 마운트시나이아이칸의대 교수팀은 이 바이러스에서 특정 효소(폴리머레이스)에 대한 유전자 부분을 연구하고 있다. 포유류를 감염시키는 변종들이 주로 이 부분에서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기존 AI 백신이 소가 감염된 H5N1에 대한 예방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H5N1는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낯선 바이러스라서 대다수 사람은 아직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가 진화하는 패턴을 보고 백신을 업데이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4-010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