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출범을 앞둔 우주항공청 산하로 들어갈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직과 행정직 간 ‘노노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항우연과 연구직 노조가 행정직에 지급되던 연구개발능률성과급 삭감을 논의하면서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항우연 행정부서장들이 급기야 대거 사퇴서를 제출했다.
22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항우연 행정부서장 16명은 전날 이상률 항우연 원장에게 보직 사퇴서를 일괄 제출했다. 사퇴서를 제출한 부서장에는 항우연 경영지원본부장과 인사혁신실장, 인프라종합지원실장, 전략기획본부 예산재정실장, 감사부장 등이 포함됐다.
항우연 행정부서장들이 사퇴서를 제출한 건 연구직으로 구성된 교섭대표노조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항우연 지부가 행정직에 대한 연구개발능률성과급 삭감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과기노조는 행정직에 대한 연구개발능률성과급을 우선 보전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예고하기도 했다. 다만 지난 21일 대의원대회에서 잠정합의안 서명이 된다면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취소하는 것으로 결의했다.
연구개발능률성과급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하는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연구지원 인력에 지급되는 성과급이다. 연구수당을 받는 연구직 외에도 지원인력에 성과급을 지급하기 위한 사기 진작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다만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구자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정됐다.
항우연 연구직과 행정직은 연구개발능률성과급을 두고 오랜 시간 갈등을 벌여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2020년 행정직을 대상으로 한 연구개발능률성과급을 우선적으로 보전하지 말라는 감사 결과가 나온 뒤 연구직 노조에서 문제 삼았다. 특히 항우연은 성과급과 관련해 기관과 노조가 합의해 정하는데, 의견 차이로 최근 2년간 연구개발능률성과급이 지급되지 않았다. 그동안 지급되지 않은 연구개발능률성과급은 40억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직 노조는 지원 인력이 기관 운영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도, 혜택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행정직으로 구성된 동행노조는 “행정직은 소수 직종에 해당돼 모든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는데, 그나마 남아 있던 행정성과급조차도 빼앗기고 있다”며 “통합과 단합을 부르짖어야 할 과기노조가 기관 분열에 앞장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기노조는 교섭대표노조라는 우월적 지위와 힘을 가지고 행정조직을 붕괴시키고 있다”며 “수년간 행정성과급의 삭감과 폐지를 요구하면서 행정 인력들의 임금은 매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직 사퇴서를 제출한 행정부서장들은 연구직 노조의 집단행동으로 행정직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정 분야나 특정 직종의 처우만을 저하시키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며 “행정직 무시, 일방적 희생 요구에 따른 결과와 책임과 함께 사기 저하된 부서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부서장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반면 과기노조는 동행노조의 성명에 대해 “제2노조 성명의 ‘연구행정성과급’은 존재하지 않는 자신들이 만든 신조어”라며 “(연구개발능률성과급 문제와 관련해선) 2022년 권익위원회에서 어떻게 집행해야 하는지 결정된 사항을 배포하기도 했다”고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연구개발능률성과급은 우수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연구 기여도를 평가해 지급하도록 한 것인데, 각 출연연들은 이를 무시하고 행정직을 위한 성과급처럼 사용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항우연 내부에서는 연구개발능률성과급 문제를 우주항공청 편입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항우연 직원은 “항우연이 우주청 소속으로 되면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싹이 틀 텐데, 성과급 문제로 서로 싸우면 좋을 게 없다”며 “서로 한 발씩 양보하면서 우주청에 들어가기 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