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무작위성에 대한 인류의 지평을 넓힌 프랑스 과학자가 아벨상을 수상했다. 아벨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그는 5살에 한쪽 눈을 실명했으나 끝을 모르는 노력과 재능으로 이 상을 받았다.
노르웨이 과학한림원과 아벨상위원회는 20일(현지 시각) 미셸 탈라그랑 프랑스 소르본대 교수에게 아벨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과학한림원은 “탈라그랑은 확률 이론, 기능 분석, 통계학의 변화를 가져 온 수학자”라며 “그의 연구는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흥미로운 문제를 이해하고, 새로운 수학적 이론을 구축해 왔다”고 평가했다.
탈라그랑이 수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건 그가 15살 때의 일이다. 병원에서 1달을 지내야 했던 그는 이때 수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5살부터 유전병으로 인해 오른쪽 눈의 망막이 분리된 그는 이때 왼쪽 눈의 망막도 분리되며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눈을 감고 수학을 가르쳤던 일화로 유명하다.
탈라그랑은 당시를 회상하며 “트라우마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학교로 돌아갔을 때 수학과 물리학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프랑스 리옹대로 진학해 수학을 전공하고 1974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에 입사해 연구를 이어갔다. 이후 파리 6대학에서 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2017년까지 이 곳에서 근무했다.
탈라그랑의 전공은 우주와 자연의 무작위성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확률론과 이론물리학이다. 노르웨이 과학한림원도 이 분야에서 그의 업적을 치켜세웠다.
하나의 측정 값이 무작위로 변하는 확률 과정에서 무작위 측정 값의 최대값을 구하는 ‘확률과정’은 그의 주요 업구 업적 중 하나다. 가령 강수량에 따라 변하는 강의 수위가 언제 최대치가 돼 홍수로 이어질지 연구하는 것이다. 아벨상위원회는 “강의 수위를 확률과정으로 규정하고 시간에 따라 최대치를 알아내는 방법을 찾는 것은 수학계의 큰 관심”이라고 설명했다.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처럼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사건의 확률을 아는 것은 누구에게나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강의 수위처럼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는 사건은 확률적으로 계산이 까다롭다. 정확한 계산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탈라그랑은 기하학에서 쓰이는 방법을 확률과정에 적용해 이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그 결과, 확률과정이 정규분포를 따를 때 최댓값을 실제와 아주 가깝게 구하는 식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에서 확률 분포가 평균에 얼마나 가깝게 있는지 알아내는 이론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가령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 뒷면이 나올 확률은 50%로, 같은 행동을 두 번 반복하면 앞면이 나오는 횟수는 평균 1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절반에 가까운 경우는 앞면이 0번, 2번이 나오면서 평균값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같은 행동을 1000번 반복하면 동전의 앞면이 나오는 횟수는 평균치인 500번에 가까워지지만 여전히 평균을 벗어날 확률은 남아 있다. 탈라그랑이 만든 수식에 따르면 앞면이 450번에서 550번 사이로 나올 확률은 99.7%에 달한다. 반면 600번 이상 앞면이 나올 확률은 무시할 만큼 작다. 기존에는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기 까다로웠지만 그의 수식을 활용하면 비교적 쉽게 실제 자연에서 일어날 사건을 확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의 연구는 수학을 넘어 이론물리학으로도 확장됐다. 2021년 조르조 파리시 이탈리아 사피엔자대 교수에게 노벨상을 안긴 물리학 이론이 탈라그랑에 의해 완벽히 증명된 것이다. 파리시는 복잡계 물리학을 연구하면서 여러 수식을 사용했으나 완벽한 수학적 증명은 내놓지 못했다. 단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학을 사용했던 것이다.
탈라그랑은 2006년 파리시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해냈다. 결국 파리시의 이론은 탈라그랑에 의해 과학적으로 맞는다고 인정을 받게 된 셈이다. 복잡계 물리학은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활용되는 만큼 앞으로 탈라그랑의 수식이 미칠 파급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탈라그랑은 수학계에서도 변방에 있던 확률론을 이끌며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업적을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아벨상 역사에서 확률론 연구자가 수상한 사례는 이번이 두 번째에 불과하다. 노르웨이 과학한림원은 “그는 노력과 즐거움을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