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노디스크의 2형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과 비만 치료제 ‘위고비’에 포함된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환자들이 겪는 대사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학회에서 비만 치료제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HIV 감염자의 체중 감량을 돕고, 비정상적인 지방 축적을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11일(현지 시각) 전했다.
HIV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들어가거나 복제를 막는 약물을 사용한다. 하지만 항바이러스 약물은 체중 증가와 같은 대사 질환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HIV 감염자의 대사 질환에 세마글루타이드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글루카곤펩타이드(GLP)-1 호르몬의 유사체로 혈당 수치를 낮추고 식욕을 조절하도록 돕는다. 이에 지난 3월 초에 열린 학회에서 세마글루타이드의 치료 효과에 대한 초기 데이터가 공유됐다.
미국 에이즈 연구 네트워크 센터 연구진은 HIV 치료를 받으면서 세마글루타이드를 처방받은 환자 222명의 사례를 살폈다. 그 결과 약 1년 만에 평균 6.5㎏, 초기 체중의 5.7%가 줄었다. 대니얼 리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메디컬센터 교수는 “실제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HIV 감염자가 늘면서 HIV 환자의 20%가 세마글루타이드와 같은 계열의 약물을 투여받고 있다”고 밝혔다.
세마글루타이드는 단순히 체중만 줄이지는 않는다. 미국 텍사스대 건강과학센터 연구진은 HIV와 지방간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6개월 동안 세마글루타이드 주사를 사용하자, 참가자 중 29%의 질환이 완전히 개선됐다고 밝혔다. 항바이러스 요법을 받는 HIV 감염자 중 30~40%는 간에 지방이 축적되는 지방간 질환을 보인다. 상태에 따라 간부전이나 심혈관 질환도 나타나는데, 이를 세마글루타이드가 치료하는 것이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의과대학 연구진은 지난 10월 세마글루타이드가 HIV 감염자의 피부밑에 비정상적으로 지방이 축적되는 ‘지방비대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결과도 발표했다. 3월에는 세마글루타이드를 처방받은 환자들의 혈액 내 염증 지표가 약 40%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주로 복부 지방이 축적되는 지방비대증은 염증 증가와 관련 있고, 심장 대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대니얼 리 교수는 “HIV를 잘 통제하더라도 만성 염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염증이 증가하면 심혈관은 물론 간, 신장, 뇌, 인지 기능과 같은 말단 기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세마글루타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세마글루타이드를 처방받은 환자 중 일부가 근육량이 감소하는 부작용을 보였다. 대니얼 리 교수는 “60세 이상의 환자가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며 “HIV에 걸린 고령자는 세마글루타이드에 의한 근육 손실에 취약해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4-006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