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의 운진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자 국토 최남단인 마라도가 모습을 보였다. 마라도 북단의 살레덕선착장에 내려 다시 10분 정도 남쪽으로 걸어가자 ‘대한민국 국토 최남단’이라고 쓰인 검은 비석이 나타났다. 주변에는 광활한 바다와 작은 어선만 몇 척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한가로운 섬에 어울리지 않는 관측 장비가 눈에 띄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환경방사선감시기였다. 최인희 원자력안전기술원 실장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토 최남단의 방사선 감시를 위해 2012년에 설치한 감시기”라고 설명했다. 감시기 스크린에는 커다랗게 ‘정상’이란 글자가 떠 있었다.
최근 일본이 사고 원전에 쌓여있던 오염수를 방류하면서 행여 한반도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국내 원자력 안전 관련 기관들은 바닷물과 공기, 해산물과 농작물까지 한반도 모든 곳에서 방사선 수치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마라도 감시기는 방사선 감시망의 최남단을 맡았다.
◇일본 원전 사고 이후 기준 넘는 방사선 없어
마라도 감시기는 국내외 방사선 비상사태를 조기에 탐지하기 위해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전국에 설치한 238개 방사선감시소 가운데 국토 최남단에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한반도에 기준 이상으로 방사성 물질이 들어오지 않는지 감시하는 보루이다.
작은 우체통만한 크기의 감시기 안에는 아르곤 가스가 압축돼 있는 구체가 들어 있다. 방사선이 이 구체 안의 아르곤 가스를 통과하면 아르곤 가스와 반응해 전류가 나오는데 이 전류를 측정해서 방사선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8일 오전 10시쯤 기자가 찾아갔을 때 감시기는 0.082uSv/h와 ‘정상’ 수준이라는 글씨가 디스플레이에 떴다. 시버트(Sv)는 생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사선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uSv는 100만분의 1시버트이다. 일반인의 인공방사선 노출 허용량은 시간당 0.114마이크로시버트(연간 1밀리시버트)이다. 연간 노출되는 자연방사선은 3밀리시버트 정도로 본다. 마라도의 방사선을 1년 내내 받아도 0.7밀리시버트에 그친다.
송명한 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은 “감지기 반경 10m 이내에 11uSv/h 정도의 방사성 물질(세슘137 기준)이 존재하면 유의미한 수치로 감시를 할 수 있다”며 “마라도 감시기를 운영한 이후 아직까지 문제 상황이 발생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육·해·공에 걸쳐 구축한 방사능 감시 체계를 구축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전국 15개 대학에 지방방사능측정소를 위탁운영하고 있고, 이와 별개로 전국 238개 지점에 방사선감시소를 설치했다. 방사선감시소에서 측정된 방사선 수치는 실시간으로 대전에 있는 원자력안전기술원 본원에 모여 분석된다.
지방방사능측정소는 공기 중의 환경방사선을 감시하고, 방사능 시료에 대한 분석도 한다. 제주 방사능측정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정만희 제주대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오염수 해양 방류 이후 방사능 감시의 최전선이 제주가 됐다”며 “제주 지역이 방사능에서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기 위한 검사 수요가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6배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제주 방사능측정소에서는 해수나 지하수뿐만 아니라 제주의 특산물인 광어나 녹찻잎 같은 식품에 대한 방사능 검사도 하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제주 지역 농산물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씻어주는 최전선이 제주대인 셈이다.
◇해양 방사선 감시망 4배로 확충
원자력안전기술원은 238개의 방사선감시기를 2028년까지 296기로 확대할 계획이다. 방사선감시기는 ‘육·해·공’ 중에서도 ‘육’과 ‘공’의 방사선 감시를 책임진다. 최인희 실장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외에도 중국이나 러시아의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 물질,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 등이 여전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감시기를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며 “내륙과 서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감시기를 추가해 국민들의 불안을 씻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이후 관심이 커진 해양 방사능 감시는 원안위와 원자력안전기술원, 해양수산부가 함께 맡고 있다. 일본이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하면서 원안위가 운영하고 있는 해양 방사능 감시 지점은 2020년 22개에서 올해 78개로 네 배 가까이 늘었다. 김용재 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은 “해수부 산하 수산과학원의 선박이 감시 지점에서 직접 시료를 채취해 오면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시료를 분석하고 평가한다”며 “국민들의 관심이 큰 세슘과 삼중수소, 스트론튬 등의 핵종을 위주로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도쿄전력이 지난 2월 28일부터 오염수 4차 방류를 시작하면서 원안위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의 해양 방사능 감시도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김성일 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은 “도쿄전력이 예정대로 방류를 진행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24시간 감시하고 있고, 매주 한 차례 화상회의를 하고 IAEA 후쿠시마 현장사무소도 격주로 방문한다”며 “5차 방류 때부터는 1년에 두 차례 정도 실제 시료를 채취해서 IAEA와 함께 교차 검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염수 해양 방류가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우려했던 사고나 고농도의 삼중수소가 유출되는 일은 없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따르면, 발전소로부터 3㎞ 이내 10개 지점에서 진행된 해수 삼중수소 농도 검사 결과 최대 1L당 12Bq(베크렐)을 넘지 않았다. 베크렐은 방사성물질에서 방출되는 방사선량 단위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올해 4월부터 시작된 5차 방류부터는 삼중수소 방출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전히 허용 수치 안이기는 하지만, 네 차례 방류로 자신감을 얻은 도쿄전력이 5차 방류부터는 삼중수소 방출량을 늘릴 예정이어서 국내 관련 기관들도 긴장하고 있다. 김성일 책임연구원은 “이번 4차 방류까지는 오염수 농도가 낮은 탱크 위주로 방류가 이뤄졌고, 앞으로는 도쿄전력이 농도가 높은 탱크를 점진적으로 방류한다는 계획”이라며 “앞으로 모니터링을 더욱 꼼꼼하게 하는 게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시버트(Sv), 베크렐(Bq)
시버트(Sv)는 생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사선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 베크렐(Bq)은 방사성물질에서 방출되는 방사선량 단위.
☞방사선, 방사능, 방사성
불안정한 원소의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방출되는 입자를 방사선이라고 한다. 방사선을 내는 능력을 방사능, 방사선을 만들어내는 물질을 방사성 물질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