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전 세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국제 협력이 필수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2024 한국과 유럽연합(EU) 연구혁신의 날 행사에서 만난 시그네 랏소 유럽집행위원회 연구혁신총국 부총국장은 EU의 연구 혁신 프로그램 ‘호라이즌 유럽’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랏소 부총국장은 연구혁신총국의 2인자로 2018년부터 호라이즌 유럽을 포함해 EU의 연구와 혁신 분야 정책을 담당해 왔다.
호라이즌 유럽은 EU에서 1984년부터 시작한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혁신 재정지원 사업의 9번째 프로젝트다. 2021년부터 2027년까지 7년간 약 955억 유로(약 138조원)를 지원한다. 현재 전 세계 196개국 중 177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와 인구 고령화, 보건 비상사태와 같은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 인구 중 6%에 불과한 EU를 전 세계 연구의 17%, 주요 과학논문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EU의 연구 역량을 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랏소 부총국장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한 국가나 EU 자체만으로는 모든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며 “국제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호라이즌 유럽의 국제 협력에 대해 설명했다. 국제 협력을 통해 단순히 연구 성과의 질과 양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경제와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U는 회원국과 인근 국가 외에도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을 가지고 개방경제, 지식재산권 보호와 같은 요건을 충족하는 제3국에게 준회원국 가입을 제안한다. 한국과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총 6개 제3국에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참여를 제안했고, 현재 캐나다와 뉴질랜드가 가입을 완료했다. EU를 탈퇴한 영국 역시 국제공동연구 참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올해 1월부터 호라이즌 유럽에 재가입했고, 스위스도 준회원국 참여 협상을 곧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은 지난해 5월부터 EU와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가입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내년 초부터 준회원국이 되면, 한국은 EU 회원국 기관과 동등한 조건으로 글로벌 과제 해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호라이즌 유럽의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랏소 부총국장은 “지금까지 한국과의 협력을 살펴보면 디지털 분야와 친환경 에너지, 자율 주행, 모빌리티 분야에서 활발했다”며 “한국이 준회원국으로 합류하게 되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수소, 첨단소재까지 협력 분야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그러면서 “유럽뿐 아니라 호라이즌 유럽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국가와도 협력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양자 협력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호라이즌 유럽의 준회원국으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일정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한국이 참여하려고 해도 같은 상황이다. 랏소 부총국장은 “현재 예산에 대해서도 협상하고 있으나, 한국의 공공 연구 자금에 비하면 정말 적은 금액이 될 것”이라며 “협상 과정을 몇 달 안에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때 한국의 예산은 호라이즌 유럽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한국 연구자들을 지원하게 된다. 한국의 예산이 고스란히 연구자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랏소 부총국장은 국제 협력에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미칠 영향에 대해 “국제 협력 예산은 지난해보다 늘었고,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에 다시 예산을 늘린다는 발표를 접했다”며 “한국을 보면 국내총생산(GDP)에 비해 연구 투자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수십 년에 걸쳐 예산이 증가해 온 만큼 조금 삭감이 있더라도 미미한 수준으로 보인다”고 했다. 랏소 부총국장은 그러면서 “한국은 공공과 민간 연구 자금을 모두 합치면 여전히 연구 분야의 가장 큰 투자자”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