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이 지난 21일 경기 고양시 한국항공대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허 총장은 "우주항공청은 우주산업에 쓸모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송복규 기자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한국판 NASA(미 항공우주국)’ 역할을 할 우주항공청이 올해 5월 출범한다. 윤 대통령이 2022년 11월 28일 항공우주 관련 연구자와 기업 관계자들 앞에서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한 지 1년 6개월 만이다. 입법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지만, ‘우주항공청 특별법’이 지난달 9일 국회를 통과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도 우주항공청의 행보를 기대하는 연구자 중 하나다. 한국항공대는 1952년 개교해 한국에서 항공우주 분야 인재 양성을 담당한 민간 항공우주 종합대학이다. 허 총장은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항공우주정책연구소를 7년간 이끈 자타공인 항공우주 정책 전문가다.

지난 21일 경기 고양시 한국항공대에서 만난 허 총장은 우주항공청 설립에 대해 질문하자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말로 입을 뗐다. 선진국들이 항공우주 분야 기술과 산업을 육성할 때 한국은 지원이 부족해 ‘암흑기’와도 같았는데, 이제야 탈출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우주항공청의 성공은 조직 하나를 세워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허 총장이 말하는 우주항공청의 성공 조건은 무엇일까.

허 총장은 우주항공청 개청과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우주항공청의 위상’ 강화이다. 우주항공청을 정책과 연구개발, 산업 육성을 아우르는 전담기관으로 만든 만큼 역할이 제도에 그치면 안 된다는 설명이다. 우주항공청이 실질적인 항공우주 분야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초대 청장의 권한도 중요하다.

허 총장은 “우주항공청의 전담기구로 만들어놨는데, 위상이 정말 법 그대로 작동할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며 “우주항공청에 대해 찬반 논의가 계속되고 절충하는 형식으로 가버리면 힘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주항공청과 협력할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등 정부 부처와 직속으로 편입된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과의 협력 관계도 중요하다. 연구 기능과 생산 기능을 가져가는 만큼 역할이 분명해져야 한다. 우주항공청 체계를 바탕으로 항공우주 산업이 육성될 수 있는 쓸모 있는 정책을 내놓는 것도 우주항공청의 숙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이 지난 21일 경기 고양시 한국항공대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허 총장은 "우주항공청은 우주산업에 쓸모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송복규 기자

초대 청장의 책임도 막중하다. 허 총장은 우주항공청 초대 청장은 전문성과 조율 능력, 국제적 감각이 고루 갖춰진 인물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급 공항 대열에 합류한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인천공항이 2001년 개항해서 단기간에 정상급 공항에 올라섰던 것은 초대 사장에 유능한 사람들이 선택됐기 때문”이라며 “항공우주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중요하지만, 위성이나 발사체, 항공처럼 한쪽 분야에만 특화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산학연과 정부부처 사이의 매니지먼트 능력, 국제협력을 위한 국제적 감각을 두루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주항공청 신설로 윤 대통령이 내세운 우주경제는 점점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위성 데이터와 위성항법장치(GPS), 저궤도 우주통신처럼 이미 우주기술은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허 총장은 일상에서 우주기술이 널리 활용돼 우주 분야 지원에 대한 공감대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허 총장은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우주 개발에 대한 청사진을 내놨지만, 당선 이후에 스멀스멀 계획이 실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주 관련 연구개발이나 지원 정책이 단절된 부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엔 대통령이 직접 나서 로드맵을 발표했고, 우주항공청 설립과 우주경제에 대한 공감대로 지원이 계속될 걸로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제에 대해선 항공우주 분야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항공우주 산업이 팽창하면서 인재가 부족한 가운데 우주기술 분야가 ‘블루오션’이라는 인식을 줘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허 총장은 “산업이 팽창하니 인력 부족은 어쩔 수 없고, 심각한 문제”라면서도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주기적으로 나온다는 건 의료계가 이미 ‘레드오션’이라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10년, 20년 후를 보면 항공우주 산업은 성장할 수밖에 없는 ‘블루오션’이니 이공계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