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스 콜먼 미국 럿거스대 교수는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LK-99 논란을 계기로 과학계 문화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며 "성과주의를 벗어던지고 사회와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철 기자

초전도 이론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인 피어스 콜먼(piers coleman) 미국 럿거스대 물리학과 교수가 최근 한국을 방문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논란을 빚은 ‘LK-99′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콜먼 교수는 “연구 성과를 중시하는 과학계의 악습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평가한다”며 “새 물질을 찾으려는 연구진의 시도는 훌륭했지만,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콜먼 교수는 이달 1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초전도 및 양자 물질 분야 기술교류회’ 토크콘서트를 마치고 조선비즈와 만나 “LK-99가 상온 초전도체가 아닌 강자성체라는 과학계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기업인 퀀텀에너지연구소와 한양대, 고려대 연구진은 지난해 7월 각각 상온에서 초전도체 성질이 있는 새로운 물질 LK-99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초전도체는 전기 저항이 0인 물질로, 에너지 손실 없이 전류를 흘려 보내는 성질이 있다. 초전도성은 일반적으로 영하 260도 이하의 극저온에서 주로 나타난다. 만에 하나 LK-99가 상온 초전도체로 확정될 경우 에너지 저장·전송, 의료, 교통 분야에서 막대한 가치가 있어 과학계는 물론 산업계의 큰 관심을 받으며 관련 주가가 함께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국내외 과학자들은 LK-99가 일부 비슷한 성질이 있지만 초전도성은 없어 보인다며 반박했다.논란이 커지자 해외 연구자들이 초전도성 검증에 나섰고 국내에서도 한국초전도저온학회에 소속된 전문가들로 꾸려진 LK-99 검증위원회가 검증에 나서기도 했다. 검증위는 지난해 12월 “LK-99는 강자성체의 특성을 보이며 상온 초전도체라는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콜먼 교수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과학계에 자리 잡은 성과 중심의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연구 결과를 공개하면서 이번 논란이 촉발됐다는 것이다.

콜먼 교수는 “과학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는 누군가 자신보다 더 빠르게 연구를 발표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시작한다”며 “과학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성과를 누가 갖느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콜먼 교수는 LK-99 논란은 상온 초전도체 논문에서 반복적으로 데이터를 조작한 랑가 디아스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의 사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내다봤다. 콜먼 교수는 “LK-99 연구에 과학적 부정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들이 찾던 데이터와 유사한 패턴에 너무 몰입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새로운 물질을 찾기 위한 한국 연구진의 시도는 훌륭했다”며 “단지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또 LK-99의 초전도성을 설명하는 ‘BR-BCS 이론’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BR-BCS 이론은 두 초전도 이론을 결합해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메리대 교수가 개발한 새로운 이론이다. 초전도 이론 분야의 전문가인 콜먼 교수는 “LK-99 연구에는 틀린 해석이 포함돼 있다”며 “모트 절연체의 상전이를 통해 초전도성을 만든다는 이 이론과 비슷한 이론이 앞서 있었으나 과학계에서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LK-99가 과학계 내부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는 대중과 과학자들 사이의 소통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 전 세계에서 LK-99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물질은 수없이 많다”며 “언론에서도 이런 내용을 고려해 보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LK-99 연구진이 자신들이 꿈꾸던 성과에 매몰됐던 것처럼 대중들도 LK-99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며 “절제된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