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대 퀘스트롬경영대 교수인 김종성 K2B테라퓨틱스 대표는 지난 7일 한국의 바이오 산업에 서울 홍릉특구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K2B테라퓨틱스의 ‘K2B’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보스턴으로라는 뜻의 ‘From KIST to Boston’의 약자다.

이 회사는 홍릉특구를 통해 미국 보스턴으로 진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5년 전 KIST에서 개발한 짧은 간섭 리보핵산(siRNA) 기술을 가지고 미국 보스턴 클러스터의 ‘랩센트럴’에 진출했다.

과학자들은 최근 RNA가 DNA의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닥이 아주 짧은 형태일 때는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차단해 암과 같은 질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간섭 RNA(siRNA)’는 특정 단백질의 생성과 소멸에 영향을 미치는 RNA를 그만 만들게 지시한다. siRNA로 약물을 만드는 플랫폼만 확보하면 다양한 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세계 바이오 산업의 중심지인 보스턴에서 생물학적 구조가 단순한 siRNA 기술로 혁신적인 항암제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미국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 랩센트럴에 입주한 K2B테라퓨틱스 직원들과 김종성 대표(뒷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K2B테라퓨틱스

미국 보스턴은 1000여개가 넘는 다국적 제약사와 신생 바이오텍이 모인 명실상부한 글로벌 바이오 산업의 중심지다. K2B테라퓨틱스가 사무실을 마련한 랩센트럴에도 전 세계에서 성공 신화를 위해 모인 바이오텍 기업 50곳이 입주해 있다. 랩센트럴 주변으로는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있어 우수한 인재가 즐비하다.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샘솟아 혁신으로 이어지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일상인 랩센트럴에는 다국적 제약사 사람들이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수시로 드나든다.

K2B테라퓨틱스도 보스턴 클러스터의 인프라와 사업 기회를 누리고 있다. 김 대표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랩센트럴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대형 제약사들에게는 사활을 건 전략”이라며 “K2B테라퓨틱스만 해도 글로벌 제약사인 존슨앤존슨과 로쉬, 릴리와 미팅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래도 기술적으로 심상치 않은 업체들이 많다 보니 글로벌 제약사도 랩센트럴의 동향을 유의 깊게 보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간다

홍릉특구가 해외 진출을 도운 기업은 K2B테라퓨틱스 뿐만이 아니다. 바이오 헬스케어 기업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도록 게이트웨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현지에 거점을 구축한 나라만 미국과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싱가포르, 이스라엘, 인도, 베트남 9개국에 달한다. 국내 기업을 진출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현지 기업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맡는다.

홍릉특구는 이들 나라의 바이오클러스터와 협력하고 현지 정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글로벌 연구개발(R&D) 협력의 모범 사례인 셈이다.

바이오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인 미국에서는 스타트업 보육시설인 CIC와 세계 최고 병원으로 꼽히는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 1700개 회원사를 보유한 생명과학협회 미국 바이오컴 캘리포니아와 손을 잡았다. 특히 메이요 클리닉의 경우 홍릉특구 입주 기업인 엔도로보틱스와 아라레연구소, 메디케어텍, OPSL 총 4개사를 선정해 수술용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로 했다.

그래픽=정서희

유럽에서 가장 활발하게 협력하는 파트너는 프랑스다. 홍릉특구는 바이오 스타트업의 유럽 진출을 돕기 위해 프랑스의 바이오 산·학·연·병 협력 기관인 ‘메디센(MEDICEN)’과 첨단 생명공학 기술 바이오클러스터 제노폴(GENOPOLE)’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또 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인 ‘비바 테크놀로지(VIVA Technology)’에 입주기업들이 참여해 기업을 소개하고 협력 기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해외 진출을 강점으로 한 홍릉특구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기업도 많아졌다. 홍릉특구 바이오클러스터에 입주한 기업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369개사, 기업가치는 2조9500억원이다. 해외로 나가고 싶어도 어떤 기관을 만나야 하는지 모르는 바이오텍 기업과 현지 바이오산업 관계자들을 홍릉특구가 연결해준 덕분이다.

강대신 홍릉특구 기획실장은 “바이오 헬스케어 기업들은 국내보다는 해외 사업에 대한 수요가 높은 편”이라며 “홍릉특구는 국내 다른 특구들과도 협력해 해외 진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장비용은 지원하지 않지만, 사업적으로 해외 진출 수요가 높은 기업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손민균

◇해외 기업의 한국 진출도 ‘홍릉’으로 통한다

홍릉특구는 해외 기업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도 돕는다. 이른바 ‘양방향 진출’의 게이트웨이인 셈이다. 미국에 둥지를 튼 기업이 홍릉특구의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정착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홍릉특구에는 KIST와 고려대, 경희대와 같은 연구기관·대학뿐 아니라 환자와 의사, 기업을 잇는 대학병원도 참여하고 있다. 전임상부터 임상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서울 유일의 ‘실증 특례구역’이기도 하다.

미국에 본사를 세운 인제니아테라퓨틱스(INGENIA Therapeutics)는 미국에서 홍릉으로 역진출한 사례다. 항체 전문기업인 인제니아테라퓨틱스는 이달 중 서울 홍릉에 있는 서울바이오허브 글로벌센터에 한국법인과 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이다. 당뇨황반부종과 습성황반변성과 같은 안구 질환 적응증 치료제를 기반으로 2025년 코스닥 상장을 추진한다.

자석으로 세포 치료제를 목표 지점에 정확히 전달하는 ‘마그네티오’ 플랫폼을 개발 중인 바이오트코리아의 장영준 대표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에서 임상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홍릉특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고려대안암병원과 협력한다. 고려대안암병원과의 적극적인 협업으로 1년 안에 미 식품의약국(FDA) 기준에 걸맞는 임상 결과를 내는 게 목표다.

장영준 바이오트코리아 대표./바이오트코리아

바이오트코리아는 사업 초기부터 홍릉특구의 도움을 받아왔다. 해외 진출 프로그램으로 싱가포르에 교육을 다녀오고 홍릉특구가 운영하는 포스트팁스로 육성 자금을 지원받았다. 치료제를 정확히 세포에 전달하는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기업인 만큼, 이번엔 홍릉특구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임상에 나설 계획이다.

장 대표는 홍릉특구가 한국에서 보기 힘든 산·학·연·병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바이오클러스터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홍릉특구는 병원과 연구기관, 기업이 함께 연계돼 돌아가는 성공적인 모델”이라며 “의료기기를 허가받기 위해선 임상뿐 아니라 사용성 평가 같은 것들도 시험해야 하는데, 홍릉특구의 고려대의료원에서 빠르게 진행해줬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병원에서 의료기기 독성 평가를 빠르게 지원해주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홍릉특구 지원 덕분에 현재 임상시험 승인 계획서를 제출했고 2025년에는 제품을 상용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