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앞에 있는 바흐의 동상. 독일 조각가 카를 제프너가 1908년에 만든 작품이다./위키미디어

바로크음악을 완성한 독일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오늘날 ‘음악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곡가이다. 물리학자들이 바흐의 작품이 수학으로 봐도 완벽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물리천문학과의 다니엘 바세트(Danielle Bassett) 교수 연구진은 이달 초 미국 물리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리서치’에 “네트워크 이론으로 바흐의 작품 수백편을 분석해 형식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적합한 수학적 구조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바흐의 음악이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작품 형식 따라 복잡도 달라

연구진은 사람들이 음악을 기억하거나 다음에 연주될 부분을 예상하는 능력이 작품 구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바흐를 연구했다. 바흐의 작품을 분석하기로 한 것은 생전 코랄(chorale)이라는 차분한 찬송가부터 빠르고 기교가 화려한 건반 악기 전주곡인 토카타(Toccata)까지 1100곡이 넘는 다양한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분석은 노드(node, 점)들이 에지(edge, 선)로 연결된 망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노드는 개인이나 국가, 회사 같은 개체를 의미하고 선으로 연결됐다는 것은 거래 관계나 친구 사이라는 식으로 특정한 관계가 형성돼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크음악의 거장인 바흐의 작품을 네트워크 이론으로 분석한 결과 수학적으로 완벽한 구조로 밝혀졌다./미 물리학회

연구진은 바흐의 작품에 나오는 음을 노드로, 음과 음 사이의 전환을 에지로 표현해 정보 네트워크로 변환했다. 노드 간 연결이 많을수록 네트워크는 복잡하고 정보량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분석 결과 전주곡인 토카타가 찬송가인 코랄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즉 찬송가는 엔트로피(무질서도)가 낮고, 전주곡은 높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차이가 작품의 기능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교회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기 위해 만든 찬송가는 예측 가능성이 낮은 단순한 곡이고, 청중에게 재미와 놀라움을 주는 게 목적인 전주곡은 복잡성을 통해 풍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중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탁월

연구진은 정보 네트워크를 이용해 청중들이 바흐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조사했다. 청중이 음악을 들으면 뇌가 대충 어떤 형식인지 파악하고 다음에 어떻게 음이 흘러갈지 예측한다. 이때 인간의 불완전한 지각 시스템은 정보를 바탕으로 네트워크 모델을 만들면서 정확성과 복잡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예측이 정확하게 들어맞으려면 이미 들은 음악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네트워크 구조를 파악해야 하지만, 이 경우 완벽한 메모리가 필요하다. 그만큼 계산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러다가는 음악을 즐기기는커녕 머리만 아플 것이다. 반대로 계산 비용을 최소화하면 제대로 네트워크 구조를 표현하지 못한다. 이러면 바흐 작품을 듣고도 어떤 특징이 있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인간은 둘 사이에서 중간을 택한다. 네트워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정확성과 복잡성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다. 계산 복잡성을 줄이기 위해 세부 사항을 생략하거나 단순화하는 식이다. 연구진은 바흐의 작품은 실제 네트워크와 청중이 추론하는 네트워크의 차이가 무작위로 생성된 네트워크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목판화 '바흐 가족의 아침 찬송가(토비 에드워드 로젠탈, 1870)'. 건반을 치고 있는 사람이 바흐이다./위키미디어

청중이 바흐의 작품을 들으면서 음의 전환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바흐의 작품이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음악을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정하웅 KAIST 물리학과 석좌교수는 “바흐의 음악 네트워크가 인간의 추론을 통해 적당히 기억하는 정보의 커뮤니케이션에 잘 맞게 구성돼 있다는 뜻”이라며 “다시 말해 바흐의 음악 네트워크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추론 과정에 잘 맞게 작곡돼 효율적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수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음표들의 순서가 무작위가 아니라 일정한 패턴이 있고 이것이 인간이 추론 가능한 정보 처리라고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간이 음악을 들을 때 뇌에서 언어영역이 활성화된다고 알려져 있다”며 “이번 결과를 종합하면 음악의 창의성이나 개성을 언어적인 추론이 가능한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다만 바흐 음악의 특징을 이야기하려면 다른 작곡가의 작품들과 비교해야 하는데 이번 논문에는 그런 정보가 없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의 뇌신경과학자인 랜디 매킨토시(Randy McIntosh) 교수도 영국 뉴사이언티스트지에 “정보 이론은 바흐의 작곡 스타일이 다른 유형의 음악과 비교했을 때 예외적인지 밝혀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청중이 평소 음악을 얼마나 듣는지, 음악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도 음악을 인지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앞으로 다른 작곡가와 서구가 아닌 지역의 음악에 대해서도 동일한 분석을 수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Physical Review Research(2024), DOI: https://doi.org/10.1103/PhysRevResearch.6.013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