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급속히 발전하며 새해에도 이와 관련된 기술들이 주목될 것으로 예측됐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2024년 새해에 주목해야 할 7가지 기술을 22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단백질 설계하는 AI’와 ‘딥페이크 결과물을 인식하는 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DNA 삽입 기술’, ‘분자 단위의 고해상도 이미징’, ‘인간세포지도 프로젝트’, ‘나노 3D 프린팅’이다.
◇단백질 설계하는 AI, 루게릭병 환자에게 말 되찾아준 BCI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 단백질설계연구소 소장팀은 컴퓨터를 이용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이 단백질은 예상했던 대로 3차원으로 접히기는 했지만 비활성 상태였다. 즉, 생물학적으로 어떠한 기능도 수행할 수 없어 분자를 합성했다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었다.
최근 연구자들은 3차원 구조를 띨 뿐 아니라 효소처럼 특별한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설계한다. 같은 대학 닐 킹 교수팀은 베이커 교수팀과 함께 단백질 기반 백신과 약물 전달 단백질을 설계하고 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 순서대로 줄줄이 엮인 ‘시퀀스’가, 서로 얽히고 접히면서 만들어진 분자다. 연구진은 챗GPT 같은 대형언어모델(LLM)을 이용해 시퀀스를 설계한다. 마치 단어-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노엘리아 페루즈 스페인 바르셀로나 분자생물학연구소 교수는 “AI를 이용해 단백질을 설계하는 것은 단백질 안에 숨겨진 문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2022년 페루즈 교수팀은 실험실에서 단백질을 만들 때 안정적으로 접히게 하는 AI(ProtGPT2)와 효소 단백질의 서열을 만드는 AI(ZymCTRL)를 개발했다.
이러한 ‘서열 기반 단백질 설계’에는 한계가 있다. 기존 단백질 분자처럼 기능을 하고, 또 어떤 기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는지 예측하려면 3차원으로 설계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네이처는 2023년 연구자들이 달리(DALL-E) 같은 이미지 생성 도구의 기본이 되는 ‘확산’ 모델을 이용해 단백질을 설계하는 AI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베이커 교수팀에서 개발한 AI(REdiffusion)다. 이 AI는 ‘구조 기반’으로 단백질을 설계한다. DNA 같은 생체 분자 주변의 단백질 분자부터 금속 주변의 단백질 분자까지 설계해 인공효소와 전자 조절물질, 생체재료 등을 만들 수 있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루게릭병)으로 혀까지 마비된 환자가 AI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덕분에 말을 되찾기도 했다. 프랜시스 윌렛 미국 스탠퍼드대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 교수팀과 미국 브레인게이트 컨소시엄은 루게릭병을 앓는 팩 베넷의 뇌에 전극을 이식한 다음, 딥러닝 알고리즘에게 그가 떠올리는 어휘를 음성으로 바꾸도록 훈련시켰다. 몇 주 뒤 베넷은 이 BCI를 통해 12만5000개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됐다. 분당 최대 62단어까지 말할 수 있었다. 일반인과 말하는 속도가 비슷하고 어휘는 2배나 더 다양한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제 마비 환자가 전달하려는 내용을 ‘자동완성’으로 분석해 언어로 바꿔주는 AI도 개발하고 있다. 윌렛 교수팀은 에드워드 창 미국 UC샌프란시스코대 의대 교수팀과 함께 해당 AI를 만들어 뇌졸중으로 말을 잃은 여성 환자가 분당 78개 단어로 말할 수 있게 했다. 이전 언어 AI보다 5배 이상 빠른 속도다.
2021년에는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진이 BCI가 언어뿐 아니라 마비 환자의 운동능력과 감각까지도 살릴 수 있는 로봇팔 기술도 개발했다. 네이처는 BCI와 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기분 장애와 정신질환, 중등도 인지장애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딥페이크가 만든 가짜 영상 알아채는 AI
AI가 너무 발전하면 오히려 사람들의 눈을 속여 악용될 위험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사진이나 동영상 속 얼굴을 바꾸거나 새로운 얼굴을 만드는 딥페이크다. 선거철 대선 후보의 얼굴을 조작해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퍼뜨리거나, CCTV를 조작해 중요한 증거물을 지우는 등 나쁜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 딥페이크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사진과 동영상이 딥페이크로 만들어진 가짜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루이자 베르도리바 이탈리아 나폴리 페데리코2세대 교수팀은 2019년부터 AI로 조작된 얼굴을 찾아내는 AI(FaceForensics++)를 개발해왔다. 아직까지 완벽하지는 않다. 고양이와 쥐의 싸움처럼 AI가 완벽한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날로 발전해가는데 또다른 AI가 그 베일을 벗기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기술은 AI에서 영상을 만들 때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기계의 눈에는 보이는 워터마크를 생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실제 같은 사진이나 동영상이라도 이것이 딥페이크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고등연구계획국(DARPA) 연구진은 다양한 각도에서 영상을 분석해 딥페이크가 만든 가짜 영상을 알아내는 AI(DeeFake-O-Meter)를 개발했다. 네이처는 앞으로도 딥페이크와, 이를 감지하려는 AI 간 다툼이 수 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 나노 환경을 바꾸는 기술들도 주목돼
네이처는 나노 단위, 즉 밀리미터의 100만분의 1보다 작은 수준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기존의 것을 고치는 기술들에도 주목했다.
2023년 말, 미국과 영국에서는 겸상적혈구질환과 베타지중해빈혈에 대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치료법을 처음으로 승인했다. 이에 네이처는 새해에도 크리스퍼 등 유전자 편집 기술을 주목할 만하다고 짚었다. 특히 커다란 DNA 단편을 삽입하는 기술에 주목했다.
기존 유전자 가위는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비활성화하고 작은 단위 안에서 서열을 바꾼다. 연구자들은 이보다 더 큰 DNA 서열을 정확하게 삽입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DNA 재조합을 중재하는 바이러스의 단백질, 즉 단일가닥어닐링단백질(SSAP)를 이용해 DNA를 삽입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것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접목하면 최대 2Kb만큼의 DNA를 정확하게 삽입할 수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진은 2022년 프라임 편집을 애용해 최대 36kb 만큼 DNA를 정확하게 삽입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네이처는 원자 수준의 분해능으로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는 기술에도 주목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진은 2022년 후반에 2.3암스트롱(Å, 1Å=0.1nm) 정밀도로 분자를 분석할 수 있는 나노 현미경 MINSTED를 개발했다.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진은 2023년에는 이 현미경을 이용해 DNA 가닥을 이루는 개별 분자들을 분석해냈다. 독일 괴팅겐대 의대 과학자들도 나노 현미경(ONE)을 개발했다. 이 현미경은 세포 내 단백질복합체를 개별적으로 분리해 이미지화하는 원리다. 연구진은 항체를 채취해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특유의 Y자 모양을 확인하기도 했다.
영국 웰컴생어연구소와 미국 제넨텍을 비롯해 전세계 100개국 과학자 3000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는 인간세포지도 프로젝트(휴먼셀아틀라스·Human Cell Atlas)도 꼽혔다. 이 프로젝트는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의 특성과 기능을 규명해 각 장기가 어떤 세포로 이뤄졌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설명한다.
연구자들은 단일 세포 수준에서 분자 내용을 해독할 수 있는 만큼 과학 기술이 발달하며 인간세포지도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미국 미국 10X지노믹스의 플랫폼(Xenium)을 이용하면 매주 조직샘플 4개에서 유전자 400개가 발현되는 것을 한꺼번에 분석할 수 있다. 미국 아코야 바이오사이어니스의 플랫폼(PhenoCycler)으로는 특정 조직을 이루는 단백질을 추적해 3차원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2023년에는 이런 플랫폼들을 이용해 여러 연구 성과가 나왔다. 인간 폐 지도가 나왔고 이를 이용해 폐 섬유화와 종양,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인한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연구자들은 인간세포지도가 완료되려면 적어도 5년 이상 거릴 것으로 보고 있다. 암 같은 난치질환에 대해 세포 수준에서 원인과 진행 상황, 세포별 약물 표적을 했을 때 어떤 변화가 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네이처는 기존 3D 프린팅보다 훨씬 빠르면서도 나노미터(nm, 1nm=100만분의 1mm) 수준으로 찍어내는 나노 3D 프린팅 기술도 주목했다. 레이저를 이용하면 광중합 현상이 일어나 나노 단위로 촘촘하게 구조물을 찍어낼 수 있다. 나노 구조물을 이용하면 촉매나 에너지 저장장치처럼 독특한 특성을 가진 경량 재료를 만들 수 있다.
나노 3D 프린팅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다. 홍콩중문대 연구진은 기존 펄스 레이저 대신 패턴화된 2차원 광시트를 이용해 광중합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이 덕분에 나노 3D 프린팅의 속도가 1000배나 증가했다. 3D로 찍어낼 수 있는 재료가 제한적이라는 문제를 극복한 연구 성과도 있었다. 나노 3D 프린팅으로는 금속 구조물을 찍어내기가 어렵다. 그런데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진은 하이드로겔을 이용해 나노 구조물을 만든 다음, 여기에 금속 염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금속 나노 구조물을 찍어내는 데 성공했다.
네이처는 나노 3D 프린팅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 펄스 레이저 등 광중합 현상을 일으키는 장비가 꽤 비싸다는 점을 들어 새해에는 이런 한계점을 극복할 새 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