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금속 표면에서 물 분자가 전압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다 느려지는 현상을 1000조분의 1초 속도로 직접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조민행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장(고려대 교수)과 마틴 자니(Martin T. Zanni) 미국 위스콘신 화학과 교수 연구진은 20일 전압 변화에 따라 금속 전극 표면의 물 분자 움직임을 펨토초(fs·1000조분의 1초) 단위에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전압에 따른 물 분자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은 전기화학적 반응을 이해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청정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수전해질 전지 개발’에도 의미가 크다. 수전해질 전지는 물을 용매로 사용하는 리튬이온전지로, 수전해질 전지가 개발되면 화학적으로 안전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화성이 낮아 폭발의 위험성이 없다.
유독한 화학물질이나 비수용액 용매의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의 위험도 크게 낮출 수 있다. 최근에는 전극 표면에 존재하는 물 분자들의 움직임을 포함해 전하 운반체 역할을 하는 이온 용매화 에너지 변화, 이온 탈용매화 현상, 산화와 환원 반응 연구를 위해 다양한 분광학적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기존 방법으로는 전극 표면에 있는 극소량의 물 분자를 직접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크기가 매우 작은 분자들을 관찰하기 위해 아주 짧은 레이저를 쏴서 분자들이 만드는 시그널을 시간에 따라 관찰하는 시분해 분광법이 널리 활용됐다. 하지만 금속 표면 근처의 물 분자 신호보다 금속 전극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신호가 훨씬 커서 물 분자 움직임만을 선택적으로 측정하고 연구하는 것이 어려웠다.
연구진은 정교하게 설계한 화합물을 금 전극 표면에 달라붙게 한 후 탐침 분자에 대한 표면 진동 분광학적 측정과 분자 동력학 시뮬레이션을 시행했다. 표면 진동 분광학은 연구 대상 물질에 짧은 레이저 빛을 가한 후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표면의 신호를 분석하는 것으로 분자의 구조와 움직임을 탐지하는 방법이다. 분자 동력학 시뮬레이션은 컴퓨터를 이용해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운동방정식을 풀어 물질 내의 원자와 분자들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방법이다. 연구진은 두 가지 방법을 접목해 물 분자와 금속 표면에 달라붙은 유기 분자 간의 상호 작용인 수소결합 구조와 물 분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전극에 가하는 전압 크기와 부호에 따라 물 분자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특이한 현상도 처음 확인했다. 양의 전압을 가하면 물 분자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음의 전압을 가하면 빨라지는 현상이다. 또 물 분자 움직임 변화의 정도가 전압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을 확인했다. 전극 표면에 존재하는 물의 산화 환원 반응 역시 물 분자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곽기정 IBS 연구원은 ”순수한 물에 다양한 이온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전기화학적 계면 현상도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민행 단장은 “전기화학반응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연구 결과”라며 “수전해질을 이용한 배터리 개발과 응용에 필요한 물리화학적인 통찰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이달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