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역대 총장들이 재임 시절 빠지지 않고 이야기하는 대학이 있다. 바로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인 캘리포니아공대(칼텍)이다. 포스텍과 칼텍은 실제 닮은 부분이 많다. 칼텍은 메사추세츠공대(MIT)와 쌍벽을 이루는 연구중심 대학이지만 규모 면에서는 칼텍이 훨씬 작다. 작지만 강한, 소수정예가 칼텍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포스텍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비해 규모가 작은 대신 소수정예를 모토로 삼고 있다. 포스텍의 역대 총장들이 늘 “한국의 칼텍이 되겠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런데 포스텍과 칼텍이 마냥 닮은 꼴인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국제화 지표에서 나온다. 포스텍의 교수진의 수준은 사실 칼텍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초소형 광학 기술의 권위자인 노준석 교수와 기하학적 해석학 분야의 권위자인 최범준 교수 같은 젊은 연구자들이 포스텍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하고 있다. 외국인 교수 비율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외국인 학생 비율이다.
포스텍이 QS 세계대학평가에서 국내 주요 대학들과 비교해 가장 부진한 지표는 외국인 학생 비율(International Students Ratio)이다. 포스텍은 이 부문에서 2.6점을 받았다. 서울대(14.5) KAIST(11.6) 등 경쟁대학에 비해 열세였고, 포스텍이 목표로 삼는 칼텍(81)과는 비교가 어려운 수준이다.
외국인 학생 비율이 적은 건 대학알리미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원을 기준으로 보면 포스텍의 학생정원 대비 외국인 학생 비율은 5.32%에 머문다. KAIST(10.93%)나 서울대(9.58%)의 절반 수준이다. 후발주자인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10.41%, 울산과학기술원(UNIST) 7.27%,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7.7%에 이르는 것과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외국인 학생 비율이 46%인 칼텍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포스텍은 외국인 학생 수가 적은 건 소수 정예를 추구하는 학교의 방향성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포스텍은 “대학원생은 학생인 동시에 중요한 연구 인력으로, 포스텍은 우수 자원을 선발하기 위하여 입학 사정을 엄격하게 해왔다”며 “단순히 외국인 학생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대학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얼마나 다양한 국가에서 인재를 받느냐는 과학기술 경쟁력의 척도로 작용한다. 과학기술 강국인 미국의 대학들이 세계 곳곳에서 학생을 받는 이유다. 게다가 한국이 저출산 사회로 바뀌면서 이공계 연구 인력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학생 비율이 낮다는 건 미래 경쟁력에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포스텍을 옹호하는 포스텍 동문들도 국제화 지표가 낮은 문제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때 칼텍을 꿈꾸며 질주하던 포스텍이 이 문제에 봉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포스텍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학교 안팎의 관계자들은 학교본부의 학생 유치 전략 부재와 외국인에 배타적인 학교 분위기를 원인으로 꼽는다.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그동안 국내 학생들로도 충분히 정원을 채우다보니 포스텍이 외국인 학생을 제대로 유치해본 적이 거의 없다”면서 “과거 백성기 총장 때만 해도 대학 전체를 바이링구얼(두 개 이상의 언어를 동시에 사용)로 하고, 외국인 교수와 학생을 대폭 늘린다는 이니셔티브가 있었는데 그 이후 어쩐 일인지 이런 플랜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염 교수는 과거와 달리 최근 수년 새 포스텍에 들어오는 국내 학생들의 수준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점을 걱정했다. 그는 “학부의 수준은 입시에서 결정되는데 입시랭킹이나 대학 선호도에서 계속해서 밀리고 있다”며 “예전에는 서울과학고, 한성과학고, 경기과학고에서 우수한 학생을 받았는데 지금은 이들 학교에서 학생들을 뽑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대학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염 교수는 “서울에 있는 대학의 연구비가 많아지고 연구 시설이 좋아지면서 연세대와 고려대, 한양대 같은 서울 지역 상위권 대학을 나온 학부졸업생을 포항으로 데려오는 일이 힘들어졌다”고 했다. 국내에서 최고 수준의 학생을 뽑는 게 어려워진다면 외국인 학생 유치에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이런 노력마저도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포스텍 졸업생 김모씨는 학교 차원에서 외국인 학생 유치에 소극적인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다른 대학들이 외국인 학생이 많은 건 국내 학생을 뽑기가 어렵다보니 적극적으로 뽑은 건데, 포스텍은 오랫동안 국내 학생 충원에 문제가 없다보니 외국인 학생 선발에 급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학생 유치와 관련해 포스텍보다 상황이 좋은 국내 다른 대학들은 어떤 노력을 할까.
한양대는 2024 QS 세계대학평가 외국인 학생 비율에서 국내 주요 대학 중 가장 높은 점수인 54.3를 받았다. 이 학교는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 차원의 원스톱서비스를 구축했다. 입학 지원과 심리상담, 비자 신청, 취업까지 외국인 학생이 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전 과정을 학교가 직접 챙기고 돌보고 있다. 중국센터를 운영해 적극적으로 중국의 우수 학생을 유치하는 것도 주효했다.
국내 연구중심대학 중에서는 UNIST가 가장 적극적으로 외국인 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 UNIST는 외국인 학생 비율 20%를 학교 차원에서 목표로 잡고 외국인 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전 교과 과정을 영어 교육으로 진행하고 있고, 생활과 취업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UNIST 관계자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우수한 과학 영재를 UNIST에 데려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현지를 찾아 입학설명회도 여러 차례 개최하고, 우수한 인재는 과학 올림피아드에 나갈 수 있도록 별도로 캠프를 차려서 교육을 진행한 뒤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으면 UNIST에 바로 입학시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학내에 확산해 있는 배타적 분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스텍에서 학부를 나온 한 정부출연연구기관 선임연구원은 “외국인 학생이 KAIST나 다른 대학보다 적다보니 영어 수업 자체에 대한 부담이 적은 게 포스텍의 장점이라고 학생들끼리 이야기하곤 했다”며 “외국인 학생이 들어오면 영어수업으로 전환되다보니 외국인 학생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긴 했다”고 말했다.
포스텍 졸업생 김모씨는 “한국 학생이 소통하기 편하고, 외국인 학생은 비자나 생활 부분을 신경쓸 게 많다보니 굳이 받고 싶어하지 않았던 분위기가 학내에 있던 것 같다”며 “결국에는 (이런 분위기를 변화시킬) 첫 단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포스텍 캠퍼스에서 만난 외국인 학생들은 학교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포스텍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고 있는 한 외국인은 서울과 먼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수도권이나 포항 같은 지리적인 여건은 고려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열악한 생활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포스텍의 연구 수준이나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학교에서 제공하는 아파트나 생활 시설은 부족한 게 너무 많다”며 “포스텍 안에 외국인 학생이나 연구원이 100명은 넘는데 채식이나 할랄푸드를 제공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는 KAIST와 GIST, DGIST가 할랄식당과 연계해 외국인 학생이나 연구원들에게 주기적으로 필요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또 다른 외국인 연구원은 지역에 국제 학교가 없는 점을 가장 큰 애로점으로 꼽았다. 이 연구원은 “아이들을 국제 학교에 보내려고 찾아봐도 포항에서는 해결책이 없다”며 “서울이나 부산까지 가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제일 아쉽다”고 말했다.
포스텍은 국제화위원회를 운영하며 외국인 교원과 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학급 외국인 전임교원 유치, 대학 주도 국제학술대회 개최, 정주 여건 개선을 대표적인 과제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부터 외국인 통합 지원센터(ISSS)를 운영하며 외국인 학생에 대한 정착 지원과 생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내 공문서나 공식 행사, 회의에서는 국·영문을 혼용하는 바이링구얼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고, 외국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 연수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