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난 7월 22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국내 연구진이 상온·상압 초전도 현상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는 논문을 게재하면서 여름 내내 전 세계 과학계가 들썩였다. 주인공은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김지훈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소장, 권영완 고려대 연구교수였다.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R&D센터에서 열린 LK-99 관련 고려대 연구진실성 위원회 조사결과 설명회에서 권영완 교수가 발언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사실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교과서가 바뀔 만한 발견이었다. 노벨상급 연구 성과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과학계는 신중했다. 과거에도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많았지만 사실로 확인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연구진이 검증에 착수했고, 수많은 연구진이 모두 LK-99 재현에 실패했다.

논문의 주인공들마저 언론을 피하고 입을 닫으면서 LK-99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런데 11일 오후, 아카이브에 올라온 LK-99 첫 논문의 저자 중 한 명인 권영완 교수가 마침내 기자들 앞에 모습을 보였다. 논문이 공개된 지 5개월여 만이다.

◇초전도체는 없고 자중지란만 있다

권영완 교수가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유는 뭘까. 상온·상압 초전도체나 LK-99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석배 대표와 김현탁 미국 버지니아 윌리엄 앤메리대 교수의 공격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김현탁 교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재직하다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 간 연구자다. 도대체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지난 11월 21일 김현탁 교수가 권 교수를 연구윤리규정 위반으로 조사를 요청한 것에 대해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지금까지 LK-99와 관련한 논란을 가장 깊이 있게 파헤친 공신력 있는 기관이다. 5명의 조사위원이 8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네 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고, 당사자인 김현탁 교수와 권영완 교수, 이석배 대표, 김지훈 소장의 설명을 모두 들은 유일한 기관이기도 하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조사결과 결정문을 토대로 정리해 봤다.

LK-99 연구는 당초 이석배 대표와 권 교수, 김 소장이 함께 진행했다. 권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퀀텀에너지연구소에서 초전도체 연구를 시작한 건 2017년부터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2017년 3월쯤 이 대표와 만났고 초전도 관련한 연구를 제안받았다”며 “전자스핀 공명분광기 ‘ESR’을 통해 연구를 하자고 내가 제안했고, 2018년 김지훈 박사가 합류하면서 물질 합성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 말했다.

2021년에 새로운 물질이 나와서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투고한 사실도 언급했다. 하지만 네이처와 사이언스가 요구하는 추가 데이터를 마련하지 못하면서 논문이 게재되지는 않았다. 권 교수는 2022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퀀텀에너지연구소에서 직접 초전도체 상용화 연구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권 교수에게 각자대표를 약속했던 이 대표가 말을 바꾸면서 둘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 권 교수는 “2017년부터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협조를 했는데 나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하면 더이상 같이 갈 수 없다는 판단에 회사를 나왔다”고 말했다.

자석 위에 한 물질이 반쯤 떠 있는 모습. 김현탁 교수는 이 물질이 초전도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의 진위성을 놓고 의구심이 계속되고 있다./김현탁

권 교수가 떠난 뒤 이 대표가 손을 잡은 사람이 김현탁 교수다. 이 대표는 김 교수와 함께 LK-99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권 교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올해 7월 17일에 처음 알았다고 한다.

권 교수는 “이석배 대표가 메일을 보내서 외국 학자와 같이 논문을 쓰고 있는데 저자로 참여할 것인지 물었다”며 이후 이 외국 학자가 미국에 있는 김현탁 교수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그동안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김현탁 교수가 갑자기 나타나 대장처럼 구는 게 이상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연구를 주도한 건 자신인데 김 교수와 이 대표가 연구를 이끄는 모양새가 된 것이 이상했다는 설명이다. 그간의 연구 과정을 김 교수에게 설명했지만, 김 교수는 오히려 “이번에는 저자로만 참여하고 나중에 제1저자를 맡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권 교수는 전했다.

결국 권 교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논문에서 빠졌다. 이 대표와 김 교수는 국제학술지 ‘APL머티리얼즈’에 논문을 냈다. 이 논문은 현재 내용을 몇 차례 바꿔서 계속 심사를 받고 있다. 권 교수는 “APL머티리얼즈는 한 달 이면 나올 수 있는 저널인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건 어려움이 있다는 말 아니겠냐”고 말했다.

권 교수는 APL머티리얼즈 논문과 별개로 7월 22일 아카이브에 자신과 퀀텀에너지연구소가 함께 연구한 LK-99에 대한 논문을 올렸다. 권 교수는 “2017년부터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연구인데 본인(이석배 대표)과 나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고 저자에서 빠지라는 건 연구자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약 2시간이 지나서 이 대표와 김 교수, 김지훈 소장, 오근호 한양대 교수 등이 저자로 참여한 논문이 아카이브에 다시 올라왔다.

LK-99 초기 똑같은 논문이 연달아 아카이브에 올라온 것은 논문 저자들 사이의 내분 때문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내분은 LK-99 논란과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골이 깊어졌다.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부정행위 아니다” 결론

김현탁 교수는 아카이브에 먼저 논문을 공개한 권 교수를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크게 여섯 가지 이유였다. 우선 논문 발표의 우선권을 확보하기 위해 고의로 저자 동의를 지연시키고 자신의 논문을 먼저 발표한 것이 부적절한 집필행위라는 것이다.

또 공동 저자인 이석배 대표, 김지훈 소장의 동의 없이 투고한 것과 앞서 ‘한국결정성장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의 저자 중 3명을 임의로 제외한 것, 한국결정성장학회지에 게재된 논문 내용을 인용 없이 사용한 것도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권 교수가 자신의 기여도에 대한 과장된 평가를 하고 있고, 초전도의 원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2021년 퀀텀에너지연구소 단독으로 출원한 LK-99 특허. 논문으로 발표된 LK-99의 물질 정보와 제조법을 포함하고 있다. 권영완 교수와 김지훈 소장, 이석배 대표의 이름이 보인다./키프리스

LK-99 연구를 함께 진행한 연구자들은 쪼개졌다. 김지훈 소장은 권 교수의 편에 섰고, 이석배 대표는 김 교수의 편에 섰다. 이석배 대표는 참고인 조사에서 “초전도 메커니즘은 김 교수가 2021년 사이언틱 리포트에 세계 최초로 발표한 것인데 권 교수가 인용하지 않고 자기 것인 양 주장했으니 해당 논문을 철회해야 한다”며 “김 교수의 논문 제출기회를 빼앗은 것은 사회적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김지훈 소장은 “권 교수는 ERP 분석법을 제안해 초전도 연구가 시작될 수 있게 했고, XPS 분석을 통해서 논문 제목에 나오는 화학 조성을 확정했다”며 “김현탁 교수가 처음에는 이걸 그대로 베껴서 논문을 냈다가 지금은 화학식을 베낀 사실이 문제가 될 것이라 여긴 듯 조성 일부를 바꿨다”고 말했다.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권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위원회는 결정문에서 “권영완은 자신의 연구 결과가 포함된 논문을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김현탁이 작성하고, 이에 대해 저자 동의를 요청받는 상황을 수긍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김현탁의 저자 동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며 “권영완은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김현탁의 논문이 투고될 경우, 자신의 연구 결과를 투고할 수 없게 된다는 상황 인식하에서 자신이 작성한 논문을 공저자의 동의를 얻은 후 아카이브에 투고했다”고 밝혔다. 권 교수의 아카이브 논문 투고에 윤리적인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논문 저자 표시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결정성장학회지에 저자로 들어간 임성연, 안수민, 오근호의 경우 실제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사무직 직원과 지인이기 때문에 이들을 논문 저자에 포함하지 않은 건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표절 의혹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김현탁 교수는 권 교수의 아카이브 논문에 등장하는 ‘structural distortion’이라는 표현이 자신의 논문에서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 표현은 김현탁의 논문 이전에도 재료 분야를 포함한 관련 학문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김현탁 논문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표절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퀀텀에너지연구소 “인정 못 해”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권 교수의 손을 들었지만, 양측의 갈등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권 교수의 기자회견 직후 방재규 퀀텀에너지연구소 부사장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 결론에 대해 우리도 추가 자료를 보완해서 제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권 교수와 김 소장이 LK-99 연구개발을 전적으로 진행했다는 주장은 일방적이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방 부사장은 “우리도 계속 연구를 하고 있고, 상업적인 준비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연세대 양자산업융합선도단과 초전도 물질 공동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날 권 교수의 기자회견에서도 LK-99의 실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권 교수는 LK-99 재현에 성공한 연구진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실험실에서 만들었고, 김지훈 박사도 만들 수 있다”며 “재현 실험은 충분히 진행했고, 지금은 상용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권 교수는 자신이 만든 LK-99를 공개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최근 씨씨에스(066790) 사내이사로 참여한 이유에 대해서도 답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