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 해밀톤호텔 옆 골목엔 핼러윈 데이를 맞아 1㎡당 9.74~12.09명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무허가 건물과 불법 증축으로 좁아진 폭 4m 정도의 길에 통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린 게 참사의 원인이었다. 이들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움직였는데, 인파가 겹겹이 쓰러지면서 희생자 1명당 최대 560㎏ 압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시민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를 보며 길을 걷다가도 죽을 수 있다는 걱정을 처음 하게 됐다.

이태원 참사는 한국의 부실한 치안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줬다. 거리의 인파를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 거리를 얼마나 통제할지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모두 몰랐다. 군중 혼잡도를 측정할 방법 자체가 없는 게 근본적인 문제였다. 경찰이 밀집도를 측정하는 건 1평(3.3㎡)을 성인 4~6명으로 계산해 전체 면적을 곱하는 방식이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추모 메시지 등이 붙어있다./뉴스1

경찰이 ‘제2의 핼러윈 참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눈을 돌린 곳이 과학치안이다. 경찰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시행하는 ‘치안현장 맞춤형 연구개발’, 이른바 ‘폴리스맵 2.0′ 사업으로 다중운집 위험도 예측·분석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이 기술은 특정 지역에 이동통신 가입자가 수를 바탕으로 혼잡도를 1차적으로 계산한 뒤, 위험도가 높은 지역의 현장 영상데이터를 확인해 2차 밀집도를 파악한다.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지난 지금, 과학 치안을 위한 연구개발(R&D) 예산도 국가 전체를 덮친 R&D 예산 삭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과기정통부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 설명자료를 보면 폴리스랩 2.0의 내년 예산은 43억5300만원으로, 올해 69억2000만원보다 37.1% 줄었다. 폴리스랩 2.0 사업으로 내년에 운영될 과학치안 기술 R&D 과제는 총 13개로 나타났다. 과제 하나당 3억3484억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는 셈이다.

폴리스랩은 개발된 원천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의성 높은 치안현장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됐다. 경찰의 과학적 역량을 강화하고 대국민 치안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해 2017년부터 시작됐다. 치매 노인의 신원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구조 요청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술도 폴리스랩으로 태어난 치안 서비스다.

폴리스랩 2.0 사업에 신규로 선정된 사업은 앞서 설명한 다중운집 위험도 분석시스템과 아동 목격자 맞춤형 비대면 진술 지원시스템, 인공지능(AI) 족적·타이어 윤적 자동검색 시스템, 지능형 어린이 보호구역 과속방지 시스템 총 4개다. 아직 개발 중인 기존 R&D 과제 9개까지 합쳐 올해 총 13개의 R&D를 끌고 가야 한다.

폴리스랩 2.0 사업은 내년엔 신규과제를 선정하지 못한다. 예산 삭감뿐 아니라 사업 자체가 일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폴리스랩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폴리스맵이 한동안 과제를 선정하지 못하면서 과학치안 R&D에 공백이 있을 것으로 봤다. 특히 사건·사고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과학치안 R&D에 공백기가 생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폴리스랩을 통해 R&D 과제를 새로 정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내년에도 어떤 사건·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며 “다양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사업으로 발전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치안의 역할은 경찰 조직 내에서도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는 만큼,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