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R&D 예산안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이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3.9%로 줄었다. 33년 만의 예산 감축에 과학기술계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고, 이 와중에 어떤 예산은 왜 늘었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5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헌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내년도 이 사업에 쓰일 예산을 31% 삭감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가 2887명의 현장 연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연구자가 꼽은 ‘R&D 예산 삭감’의 문제점은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였다. 그 다음으로 많은 연구자가 지목한 문제는 ‘현장 연구원의 사기 저하’였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예산 삭감 자체보다도 과학자를 우대하지 않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걸 경계했다. 천승현 세종대 물리천문학과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R&D 예산이 삭감된다면 이공계를 지원하려는 학생들은 상당한 불안감과 실망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동헌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도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R&D 삭감은 과학과 기술 등의 경력이 덜 안정적이고 수익도 덜 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어느 때보다도 과학자들의 사기 진작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이번 R&D 예산 삭감의 여파로 ‘과학기술인 사기진작’ 예산마저 31% 삭감됐다. 올해 11억8600만원이던 예산이 내년에는 8억1800만원으로 확 쪼그라들었다.

‘과학기술인 사기진작’은 국가‧사회 발전에 공헌한 과학기술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사회적 활동을 지원하는 목적의 사업이다. 2015년 제정된 ‘과학기술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고, 이에 따라 과학기술유공자 예우 및 지원계획이 5년 단위로 수립되고 있다.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면 2024년 15억3300만원, 2025년 15억9400만원으로 매년 예산도 늘어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 예산 삭감의 여파로 과학기술인 사기진작 사업마저 예산이 30%나 사라졌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과학기술유공자에 대한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예우와 사회적공헌활동 지원, 과학기술유공자 콘텐츠의 지역 확산 및 일반국민 보급 확대 등을 위해 예산 등 협조 요청”을 의견으로 냈지만 소용 없었다.

특히 유공자의 활동사진이나 연구자료 등 사료의 조사와 보전을 위한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지금까지 지정된 과학기술유공자는 81명인데 이 중 57명이 이미 작고한 상태다. 사료 조사와 보전이 시급한 상황인데 이마저도 필요없는 예산이라고 날린 것이다.

우수과학자포상을 위한 예산도 6.9% 삭감됐다. 과기정통부는 증액을 요청했지만 역시나 예산당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분리해서 운영하던 젊은과학자상과 이달의과학기술인상을 통합하는 식으로 운영비를 줄였다. 특히 우수과학도상은 예산을 38%나 줄였다. 수상자에게 주는 부상품의 가격을 1만8000원에서 1만1000원으로 깎았다.

과학의 날인 지난 4월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어린이과학관에서 어린이들이 도구를 이용해 과학 원리를 체험을 하고 있다./뉴스1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과학기술인 사기진작 사업이나 우수과학자포상 사업의 예산을 줄인 걸 보면 너무 좀스러워서 뭐라고 할 말도 없다”며 “우수과학도상은 과학의 날에 우수한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주는 상인데 우리나라가 돈이 얼마나 없다고 그 상까지 줄이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과학기술인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사업의 예산이 삭감됐다. 과학기술인력 육성지원 기반구축 사업은 31억8100만원에서 6.2% 삭감된 29억8300만원으로 줄었고, 과학기술인 협동조합 육성지원 사업도 12억7200만원에서 6억3600만원으로 삭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