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R&D 예산안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이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3.9%로 줄었다. 33년 만의 예산 감축에 과학기술계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고, 이 와중에 어떤 예산은 왜 늘었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서초구 JW매리어트호텔에서 열린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대통령실

“2032년 달에 착륙해 자원 채굴을 시작하고,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겠다. 우주기술은 최첨단기술의 집약체이자, 기존 산업을 부흥시키고 신산업을 탄생시키는 동력이다. 2045년까지 (우주 분야에) 최소 100조원 이상의 투자를 이끌어내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한 말이다. 당시 선포식에는 국내외 우주 기관·기업 관계자 150여 명이 참석해 윤 대통령이 제시한 비전을 들었다. 전례 없는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한 대통령의 발언에 과학계는 우리도 우주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우주 경제를 실현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기대를 얻었다.

하지만 희망과 기대가 희미해지는 데에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되면서 주요 우주 사업도 큰 타격을 입었다. 우리의 경쟁 상대가 우주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경쟁력을 확보할 때 한국에서는 긴축재정의 논리가 힘을 얻으며 이제 막 신생아 수준인 대한민국의 우주 경제는 휘청하게 됐다.

정부에선 국가전략기술인 우주·천문 분야는 예산을 줄이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연구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연구비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우주·천문 분야 연구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실제 숫자를 살펴보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신규사업을 제외한 주요 우주 사업 13개 중 8개(61.5%)가 예산이 삭감됐다. 예산이 삭감된 사업 가운데 절반 이상 줄어든 사업은 4개로, 연구진이 연구개발을 이어가기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래픽=정서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차세대중형위성개발사업은 올해 314억2000만원에서 내년 191억2600만원으로, 예산이 39.1% 줄었다. 위성기술을 민간기업으로 이전하는 이 사업은 500㎏급 표준형 위성을 개발해 우주 과학연구와 농산림·수자원을 감시한다. 차세대중형위성개발사업의 예산 삭감으로 기술을 이전받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사업을 운영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우주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련된 사업들도 예산이 대거 삭감됐다. 수출 통제 품목인 인공위성과 소형발사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마련된 ‘스페이스파이오니어 사업’의 내년 예산도 275억9100만원으로, 올해(329억900만원)보다 16.2% 감소했다. 우주 부품 국산화와 수출을 지원하고 우주기술의 스핀오프를 장려하기 위해 시작된 ‘우주개발 기반조성·성과확산 사업’은 올해 94억원에서 내년 20억원으로 무려 78%나 예산이 줄었다.

미래형 우주개발 사업도 마찬가지다. 우주 분야 미래선도기술을 확보하겠다며 마련한 ‘스페이스챌린지 사업’의 내년 예산은 43억원으로, 올해(138억원)보다 68.8% 삭감됐다. 최근 뉴스페이스 시장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위성정보 빅데이터 활용지원 사업은 올해(84억7000만원)의 절반인 42억3500만원으로 내년 예산이 배정됐다.

우주 분야 R&D를 수행하는 한국천문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연구운영비도 줄었다. 천문연은 올해보다 19% 감소한 549억8400만원을, 항우연은 16% 줄어든 1001억6500만원을 내년 연구운영비로 책정받았다. 이들 출연연은 예산 삭감을 통보받은 뒤 연구를 이어가기 위한 긴급회의도 열었다.

우주 기업 관계자들과 연구자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우주기술 분야에 지원을 줄이는 것이 앞으로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한국은 아직까지 민간 주도로 우주기술을 개발하는 ‘뉴스페이스’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한 우주 기업 관계자는 “한국 우주 기업들이 다른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긴 하지만, 정부에서 발생하는 수주와 과제가 여전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우주 분야의 예산이 갑자기 삭감되면 개발에 들어가는 예산이나 금액에 변동성이 커져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격려하기도 했던 한 우주 스타트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예산 삭감으로 미 항공우주국(NASA)과의 협업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는 것으로 안다”며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우리의 기술과 서비스를 실제로 우주 환경에 적용하기 위해 NASA와의 협업이 중요한데 출발선에서부터 다리가 꼬인 셈”이라고 말했다.

우주 분야를 연구하는 한 대학교수도 “최근 우주 분야에서 많은 성과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선진국들보다 기술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발사체나 달 착륙선 외에도 개발해야 할 기술들이 많은데, 예산부터 줄여버리면 당연히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