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R&D 예산안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이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3.9%로 줄었다. 33년 만의 예산 감축에 과학기술계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고, 이 와중에 어떤 예산은 왜 늘었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3월 9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한계도전 R&D 프로젝트 킥오프'에서 축사하고 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형 예타사업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연구개발이 큰 항공모함이라고 한다면 국가적 난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기민하게 움직이는 특공대와 같은 연구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계도전 R&D 프로젝트가 특공대와 같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3월 9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한계도전 R&D 프로젝트 킥오프’에서 직접 축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크지만 성공만 하면 파급 효과가 큰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해 도전적인 연구 과제를 이끌 새로운 프로젝트의 출발이었다. 인터넷과 위성항법시스템(GPS) 같은 첨단 기술을 개발하며 혁신 연구의 산실로 불리는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를 벤치마킹해 ‘한국판 DARPA’ 사업으로 불렸다.

장관이 직접 챙기는 사업답게 한계도전 R&D 프로젝트는 예산 삭감의 칼날을 피했다. 한계도전 R&D 프로젝트에는 내년에 신규 사업으로 10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모두 49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연도별로 보면 2025년에 139억3000만원, 2026년에 160억2000만원, 2027년에 62억원, 2028년에 28억5000만원이 배정됐다. 과기정통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사업 첫 해인 내년에는 5개 프로그램에서 10개 과제를 기획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특공대가 되겠다는 출사표와 달리 사업 진행은 지지부진하다. 지난 5월 한국연구재단에 한계도전 전략센터가 출범하고 프로젝트를 이끌 책임PM 공모에 나섰지만, 애초 목표였던 5명 대신 3명만 선발하는데 그쳤다. 바이오, 기후·에너지, 소재 분야에서만 책임PM을 선발했고, 반도체와 재난대응에서는 선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책임PM은 한계도전 R&D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과제의 기획부터 선정, 평가, 성과관리가 모두 책임PM 주도하에 이뤄진다. 책임PM 없이는 사업 진행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과기정통부는 나머지 2명의 책임PM도 올해 안에 선발한다는 계획인데, 과학기술계에서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계도전 R&D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한 정부출연연구기관 관계자는 “책임PM의 기준에 맞는 인물을 고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다 연구자들도 부담이 커서 지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3명의 책임PM을 뽑는 것도 3개월이 걸린 만큼 올해 안에 추가로 책임PM을 뽑는 건 물리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렇게 되면 5명의 책임PM이 10개의 과제를 추진한다는 내년 사업 계획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책임PM이 과제를 기획하는데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 걸 고려하면 내년 예산으로 5개의 프로그램에 10개의 과제를 추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내년도 프로그램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지금 편성된 100억원의 예산을 쓰지도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신청이 미승인된 것도 타격이다. 현재 계획된 한계도전 R&D 프로젝트는 시범사업이다. 총 사업비가 490억원으로 편성된 것도 예비타당성조사 기준인 500억원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본 사업에 나서려면 규모를 더 키워야 하기 때문에 예비타당성조사를 피할 수 없다.

애초에 과기정통부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받는 다른 대규모 R&D 프로젝트와 달리 ‘한계도전 R&D 프로젝트’는 실패 가능성이 크고 빠른 연구가 중요하기 때문에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는 방법을 택했다. 실제로 지난 8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신청도 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면제를 미승인하면서 본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 과기정통부는 내년 상반기에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특공대라고 하더니 기존의 대형 R&D 사업과 차별점이 없어졌다”며 “기존에도 과학난제도전 융합연구개발사업이나 혁신도전 프로젝트 같은 사업이 있었는데 어떤 부분이 다른 지 애매해보인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알키미스트’ 사업과 보건복지부의 ‘한국형 ARPA-H’ 사업처럼 다른 부처의 난제 해결형 R&D 사업과 한계도전 R&D 프로젝트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계도전 R&D 프로젝트의 바이오는 보건복지부 사업과 겹치고, 기후에너지 및 소재 분야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중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내용이 차별화될 수 있도록 과제를 기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