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R&D 예산안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이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3.9%로 줄었다. 33년 만의 예산 감축에 과학기술계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고, 이 와중에 어떤 예산은 왜 늘었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짧게 나마 맑은 하늘을 만났지만 이제는 옛일이다. 중국이 다시 산업활동을 늘리면서 한반도가 다시 미세먼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에서 발생한 스모그가 한반도를 덮친 탓이다. 지난달 31일 인천 지역은 초미세먼지 농도가 한때 ‘매우 나쁨’ 수준까지 치솟았다. 환경 전문가들은 올해 11월을 시작으로 내년 4월까지 안 좋은 대기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세먼지는 단순한 호흡기 질환에서 그치지 않고 천식과 심혈관계 질환의 원인이 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1㎡당 10㎍(마이크로그램·1㎍은 100만분의 1g) 늘 때마다 폐암 발생률이 90% 증가한다.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와 청소년들은 미세먼지에 더 취약하다.

수도권이 대기 정체로 오전에 일시적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이고 있는 31일 오전 경기 오산시 보적사에서 바라본 도심이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뿌연 모습을 보이고 있다./뉴스1

하지만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되면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기술이 개발되고도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국내 연구진은 5년간 학교 내부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러나 내년 예산이 90% 넘게 줄면서 기술의 현장 적용이 어렵게 됐다. 해마다 한국인의 건강을 위협한다며 책정한 미세먼지 대응 재난안전사업도 1000억원 넘게 삭감됐다.

‘에너지·환경 통합형 학교 미세먼지 관리기술 개발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가 힘을 합쳐 시작한 범부처 합동사업이다. 2019년 사업단을 설립하고 학교 교실의 공기 제어를 통해 이미 미세먼지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업단이 개발한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보다 시간당 초미세먼지 제거시간이 30% 이상 빨랐다.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이 되더라도 학교에서 만큼은 빠르게 공기를 정화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사업단이 올해 교육부로부터 받은 R&D 예산은 10억원이다. 그런데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이 예산이 6000만원으로 깎였다. 예산의 94%를 갑자기 날린 셈이다. 5년간 300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이지만, 애초 계획과는 관계없이 예산 대부분이 사라졌다. 미세먼지 관리기술 개발 사업처럼 계획과 다르게 내년 예산이 90% 이상 줄어든 사업은 총 27개에 이른다.

사업단에서 목표로 한 기술은 개발이 끝났다. 기술 개발이 끝났으니 예산을 줄였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문제는 5년간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개발한 기술이 사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스템 개발 이후 실제 학교와 공공기관에 보급할 수 있도록 사업화하고 확산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예산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연구실을 넘어가기 어려워졌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며 미세먼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책정한 재난안전사업 전체로 봐도 예산이 올해 6853억5700만원에서 내년 5552억1300만원으로 18.9% 감소했다. 새로 예산을 배정 받아 후속 과제를 할 가능성도 낮아졌다.

미세먼지 관리기술 개발사업단에 소속된 한 연구자는 “새로 개발한 관리 시스템은 현재 초등학교 한 곳에만 설치한 상태”라며 “성과를 확산시켜 교육 현장에 적용할 하나의 정책으로 자리매김해야 하지만 예산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술을 다 완성했는데 보급을 하지 못해 버리게 될 것 같아 걱정”이라며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제품 개발은 꾸준히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예산정책처도 ‘2024년도 예산안 총괄분석 보고서’에서 정부가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기 어려운 R&D 사업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정부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가 이뤄지는 R&D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수 사업의 예산을 대폭 감액 편성했다”며 “(정부 R&D 예산안은) 기존 투자 성과가 매몰되거나 목표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