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5일(현지 시각) 한국의 R&D 예산 삭감 계획에 대한 반응을 보도했다. 네이처는 “전 세계에서도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예산이 가장 높은 편이지만, 갑작스러운 삭감에 과학자들 사이에서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네이처는 국내 과학기술계는 물론 정책연구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대변인, 대학원생까지 각계각층의 의견을 다뤘다. 먼저 이어확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의 “과학계 노동조합과 협회가 처음으로 뭉쳐 R&D 예산 삭감에 반대하고 있다”는 말을 인용하며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
이어 지난 8월 과기부가 발표한 예산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202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4.5%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R&D 예산을 한국을 세계 5대 연구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GDP 5%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다르다고도 지적했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네이처에 “이는 일종의 모순”이라 말했다. 네이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를 인용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한국화학연구원과 같은 기관은 28%까지 예산이 삭감될 수 있다고 전했다. KAIST와 같은 상위 연구기관의 경우는 예산이 10%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예산안을 조정하겠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인공지능이나 반도체 등 특정 7개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한편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은 줄인다. 또 실적이 저조한 연구 사업을 폐지하고, 연구 인프라와 장비 등 간접비용을 줄일 계획이다. 과기부 대변인은 네이처에 “세계적인 연구 성과는 연구진 간의 공동 연구에서 시작된다”며 “국내 과학자들이 국제적으로 협력하도록 국제 연구 교류 예산을 늘릴 것”이라 밝혔다.
이에 대해 케이 조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CL) 뇌과학과 교수는 “국제 협력을 위해서는 자금 외에도 연구센터나 대규모 데이터 등의 인프라와 장기간에 걸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네이처는 이동헌 KAIST 대학원총학생회장의 “R&D 예산 삭감은 STEM 직업이 다른 분야에 비해 안정성이 낮고 수익성도 낮다는 인식을 높일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대학원과 학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두철 전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은 네이처에 “만약 예산 삭감이 무산되더라도, 제안만으로 연구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며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막달레나 스키퍼 네이처 편집장은 2023 한국생물공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R&D 투자를 강요했다. 스키퍼 편집장은 “그동안 한국의 R&D 투자는 잘됐었는데 이번 예산 삭감은 이례적”이라며 “mRNA나 크리스퍼와 같은 아이디어도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만큼, 모든 것을 장기적으로 보고 R&D 예산을 계획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네이처는 논문 외에 연구와 관련된 의견을 싣는다”며 “연구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 세계에 공유하고 관련된 의견을 전달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네이처에 앞서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달 19일(현지 시각) ‘과학 지출 챔피언인 한국, 예산 삭감을 제안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R&D 예산 삭감 사태를 다뤘다. 당시 과학계와의 긴밀한 소통 없이 R&D 예산 삭감안 논의가 진행된 것에 대해 우려를 전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3-02841-w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k9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