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인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수상 뒤에 오히려 다른 연구자들에게 미치는 학술적 영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존 이오아니디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지난 8월 노벨상이나 ‘천재들의 상’이라 불리는 맥아더 펠로우십(MacArthur Fellows)을 받은 과학자들의 출판과 인용 패턴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노벨상이 과학자들의 연구 생산성과 영향력을 높이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영국왕립오픈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실렸다.
이오아니디스 교수 연구진은 이전까지 통계학적 방법으로 전염병학을 연구해 왔다. 2020년에는 불충분한 정보와 통계적 오류로 코로나19의 치사율이 높게 계산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통계학적 방법을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 성과를 분석하는 데 적용했다.
연구진은 21세기 들어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나 맥아더 펠로우십을 받은 과학자 총 191명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수상 시점을 기준으로 3년 전과 후의 연구 출판 횟수, 인용 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노벨상 수상자들은 상을 받은 뒤에도 거의 같은 수의 논문을 발표했지만, 수상 후의 연구는 수상 전의 연구보다 인용 횟수가 평균 80.5회 적었다. 수상 이후에 연구의 영향력이 감소한 셈이다.
특히 만 42세 이상 수상자는 수상 후 연구의 인용 횟수가 더 적게 나타났다. 만 41세 이하 수상자는 인용 횟수가 느는 경우가 있었지만 차이는 크지 않았다. 수상자의 연구 생산성에 ‘나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오아니디스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노벨상 같은 상은 과학자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는 것 같다”며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연구에 대해서는 “노벨상과 같은 주요 상이 수상자의 영향력을 높이지 못한다면, 과학계 발전을 위해 수상의 목적이나 기준, 영향력을 재평가해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출판과 인용 횟수만을 살핀 이오아니디스 교수의 연구에 부정적인 의견도 나온다. 노벨상 수상자의 삶을 추적해 온 해리엇 주커만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단순한 지표로 생산성을 살피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주커만 교수는 “노벨상 수상 경험이 수상자에게는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며 “수상자들은 자신의 분야 안팎에서 유명 인사로 대우받는데, 이런 변화가 연구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벨상 수상자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게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슌 왕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들은 자신이 한 연구 분야에서 정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며 “2021년 발표한 연구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수상 직후 3년 동안은 출판 수가 줄어들지만 이후에 다시 회복되는 경향을 관찰했다”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Royal Society Open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098/rsos.230549
arXiv(2021), DOI: https://doi.org/10.48550/arXiv.2107.06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