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운동 중인 기울어진 부착원반 모델을 설명하는 이미지. 중심부 블랙홀의 회전축은 그림의 수직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제트의 방향은 부착원반과 거의 수직을 이룬다. 블랙홀과 부착원반 사이의 회전축이 나란하지 않은 경우 부착원반과 제트의 세차운동이 일어난다./한국천문연구원

한국과 중국, 일본의 국제 공동연구팀이 블랙홀이 팽이처럼 흔들리며 회전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블랙홀이 빠르게 회전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건 현대 천체물리학의 주요 난제 중 하나였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것을 동아시아 공동 연구팀이 밝혀낸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을 포함해 전 세계 45개 기관, 79명의 연구원이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팀은 28일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진 M87 초대질량블랙홀의 제트 방출 방향이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활동성 은하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블랙홀은 우주에서 발견되는 가장 강력한 천체 중 하나다. 엄청난 크기의 중력으로 많은 양의 물질을 빨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플라즈마 제트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분출해 수천 광년 떨어진 곳까지 뿜어낸다. 제트는 기체와 액체 등 물질의 빠른 흐름을 말하는데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질이 방출돼 만들어진다. 블랙홀 주변에서는 자기장과 블랙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강력한 제트 방출 현상이 발생한다.

천체물리학계에서는 블랙홀에서 제트 방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블랙홀이 빠르게 회전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해 왔다. 하지만 이런 이론을 입증할 관측 결과는 아직까지 공개된 적이 없다.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연도별 이미지를 기반으로 나타낸 M87 블랙홀 제트의 방출 각도 변화 그래프. 흰색 화살표는 제트의 방출 각도를 나타내며, 녹색 곡선은 세차운동 모델을 관측에 적용하여 얻은 그래프다./한국천문연구원

공동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3년에 걸쳐 얻은 M87 블랙홀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2000년부터 2022년까지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EAVN), 초장기선 어레이, 한일공동 우주전파관측망, 동아시아-이탈리아 우주전파관측망에서 얻은 자료가 연구에 활용됐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한 결과, 블랙홀의 회전축이 부착원반의 회전축과 나란하지 않아 제트의 세차운동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차운동이란 회전하는 천체의 회전축이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현상이다. 세차운동은 블랙홀이 실제로 회전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번 연구의 한국 측 책임자인 노현욱 한국천문연구원 박사후연구원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전파관측망과 상관처리센터에 힘입어 한 천체에 대해 오랜시간 지속적으로 관측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EAVN 주도로 계속될 M87 모니터링에서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블랙홀의 새로운 현상들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공동 연구팀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저장연구소의 박사후연구원이자 논문의 제1 저자인 추이 유주(Yuzhu Cui) 박사는 “블랙홀과 부착원반 회전축이 어긋난 정도가 비교적 작고 세차운동 주기가 길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친 고해상도 데이터의 분석으로 이러한 성과를 이룰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제2 저자인 일본국립천문대의 하다 카즈히로(Kazuhiro Hada) 박사는 “M87 블랙홀이 회전하는지 여부는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블랙홀이 실제로 회전하고 있음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EAVN AGN의 워킹그룹 리더인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Kerr(커) 블랙홀이라고도 하는 회전하는 블랙홀 고유의 중력효과인 틀 끌림 현상(Frame dragging)를 독자적으로 입증한 이번 연구는 한국과 동아시아 연구진과 연구시설의 능력을 입증한 쾌거”라고 강조했다. 틀 끌림 현상은 블랙홀처럼 질량이 큰 물체가 회전하면 중력효과가 발생해 주변 시공간도 블랙홀을 따라 회전하는 것으로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예측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28일 소개됐다.

참고자료

Nature, DOI : https://www.researchsquare.com/article/rs-2624984/v1

이번 관측에 참여한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의 전파망원경. 총 13기이며 한국의 KVN(연세, 울산, 탐라)과 세종, 일본의 VERA(미즈사와, 이리키, 오가사와라, 이시가키지마)와 히타치, 노베야마, 타카하기, 중국의 CVN(난샨, 티얀마)으로 구성되어 있다./한국천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