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저녁 뒷산 위로 보름달이 떠오르면 아이들은 노래를 불렀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일제 강점기던 1924년 윤극영이 작사 작곡한 동요 ‘반달’이다. 보름달을 보면 왼쪽에 검게 보이는 현무암 저지대가 꼭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 같다.
인류가 반세기 만에 다시 달로 사람을 보낸다. 미국은 1972년 아폴로 17호 이래 중단된 유인(有人) 달 탐사를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으로 재개했다. 2025년 우주인 2명을 달 남극에 보내는 것이 목표다. 이번에 달을 찾는 우주인은 처음으로 다른 생명체를 만날지 모른다. 방아 찧는 토끼가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동물인 ‘물곰(water bear)’이다. 앞서 달에 추락한 탐사선에 물곰이 실렸기 때문이다.
인류가 우주로 눈을 돌린 이래 다양한 동물들이 우주로 나갔다. 사람 대신 동물을 보내 우주방사선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시험했다. 중력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우리 몸에 공생(共生)하는 미생물은 어찌 되는지 알아보는 실험도 했다. 일부는 산 채로 지구로 돌아왔지만,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인류에게 우주로 가는 길을 열어준 고귀한 희생들이다.
◇이스라엘이 달로 보낸 ‘지구 최강의 동물’
물곰은 절지동물의 이웃으로 몸길이가 1.5㎜를 넘지 않는다. 다리 8개로 움직이며 이끼에서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산다. ‘느리게 걷는 동물’이란 뜻의 타디그레이드(tardigrade)라는 이름이 있지만, 물속을 헤엄치는 곰처럼 생겼다고 물곰이라는 별명이 더 유명하다. 이 물곰이 달에 있다.
물곰들은 이스라엘 우주 기업 스페이스IL이 기부금을 받아 만든 무인(無人) 탐사선 ‘베레시트(Beresheet, 히브리어로 창세기)’를 타고 달로 갔다. 베레시트는 지난 2019년 4월 11일 달 착륙을 시도하다가 추락했다. 한 달 뒤 미국 아치미션재단이 베레시티에 물곰들을 담아 보냈다고 밝혔다. 이 재단은 인류의 유산을 태양계의 다른 곳에도 전파하겠다는 목표로 2015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당시 베레시트에 3000만쪽에 해당하는 인류의 지식과 DNA 시료를 작은 접시에 담아 보냈는데 그 표면에 물곰 수천 마리도 함께 넣었다는 것이다.
탐사선이 파괴됐지만 물곰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아치미션재단이 달에 보낼 동물로 물곰을 택한 것은 엄청난 생존 능력 때문이다. 물곰은 30년 넘게 물과 먹이 없이도 살 수 있다. 1948년 한 이탈리아 동물학자는 박물관에서 보관하던 120년 된 이끼 표본에 물을 붓자 그곳에 있던 물곰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보고했다. 섭씨 영하 273도의 극저온이나 물이 끓고도 남을 151도 고열에도 끄떡없다.
특히 우주에서도 문제가 없다. 대부분 동물은 10~20Gy(그레이) 정도의 방사선량에 목숨을 잃는데, 물곰은 무려 5700그레이를 견딘다. 유럽우주국(ESA)은 2007년 무인 우주선에 물곰을 실어 우주로 발사했다. 12일 후 지구로 귀환한 물곰들에게 수분을 제공하자 일부가 살아났다고 한다. 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치명적 방사선에 견딘 생명체는 물곰 이전에 이끼와 박테리아밖에 없었다. 명실상부 지구 최강의 동물인 셈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도 ‘지구에 사는 동물 중 외계 생명체로 가장 적합한 후보’로 물곰을 꼽았다.
물곰은 극한 환경을 만나면 몸을 공처럼 말고 일종의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다. 신체 대사는 평소의 0.01%로 떨어지고 특수 물질로 단백질 등 주요 부분을 감싸 보호한다. DNA 손상을 막는 항산화 물질도 대량 분비한다. 씨앗 상태로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달에 있는 물곰도 지구로 돌아오면 다시 살아난다고 본다.
그런데 달에 지구 생물을 마음대로 보내도 될까. 나사는 화성 탐사선을 보낼 때 지구 생명체가 외계 생태계를 오염시킬 가능성에 대비해 우주선을 철저히 소독한다. 하지만 달은 예외다. 이미 생명체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아폴로 우주인들이 장내 세균이 있는 배설물을 봉지 96개에 담아 달에 두고 온 것도 그 때문이다.
◇有人 우주탐사 이끈 러시아 떠돌이 개
처음 우주로 나간 지구 생물은 실험에 많이 쓰이는 초파리였다. 1947년 미국은 나치 독일로부터 획득한 V-2 로켓에 초파리를 싣고 발사했다. 로켓은 지구와 우주의 경계로 불리는 고도 100㎞의 ‘카르만 라인’을 넘어 109㎞까지 도달했다. 초파리가 담긴 용기는 캡슐에 실려 낙하산을 타고 지구로 귀환했다. 과학자들은 우주방사선이 초파리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
미국과 구소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우주에서 체제 경쟁을 벌였다. 누가 먼저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지가 관건이었다. 그 길을 닦은 것이 가장 먼저 우주로 간 포유동물인 ‘라이카(Laika)’란 개였다. 구소련은 1957년 10월 4일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 한 달 뒤인 11월 3일에는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했는데, 그 안에 라이카가 실렸다. 사람을 우주로 보내기 전에 개로 먼저 시험한 것이다.
라이카는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 시내에 살던 떠돌이 개였다. 과학자들은 떠돌이 개들을 데려와 키우며 우주 훈련을 시켰다. 그중 똑똑하고 말을 잘 듣는 라이카가 첫 우주 동물이 됐다. 라이카는 지구 궤도에 처음 오른 동물로 명성을 얻었다. 기념 우표가 발행되고, 라이카 얼굴이 들어간 초콜릿도 발매됐다.
하지만 라이카는 사람들의 환호를 듣지 못했다. 당시 우주여행은 편도였다. 스푸트니크 2호는 태양열을 가릴 장치가 없어 라이카는 발사 후 네 번째로 지구 궤도를 돌다가 목숨을 잃었다. 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로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라이카의 희생 덕분이었다.
◇우주 고양이 펠리세트 60주년 행사 열려
개와 함께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고양이도 우주탐사에 참여했다. 프랑스는 1963년 10월 18일 ‘펠리세트(Félicette)’란 고양이를 베로니크 로켓에 실어 발사했다. 고양이는 고도 154㎞까지 올라가 우주를 체험했다.
펠리세트도 라이카처럼 주인 없이 거리를 떠돌던 파리의 길고양이였다. 프랑스 항공의학교육연구센터(CERMA)는 길고양이 14마리를 잡아 우주 훈련을 시켰다. 당시 과학자들이 고양이에게 동정심을 가지지 못하게 이름도 짓지 않았다. 펠리세트는 C341로만 불렸다. 나중에 고양이가 지구로 귀환하자 프랑스 언론은 흑백 무성 영화에 나온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고양이 ‘펠릭스(Felix)’의 이름을 암컷에 맞춰 펠리세트로 불렀다.
라이카와 달리 펠리세트는 살아서 지구로 돌아왔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구 귀환 두 달 뒤 과학자들은 우주 환경이 근골격이나 신진대사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려고 펠리세트를 안락사시켜 부검했다. 과학자들은 나중에 부검에서 얻은 정보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후 다시는 고양이를 우주로 보내지 않았다.
프랑스는 다음 달 펠리세트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9년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국제우주대학에 지구본 위에 앉아 있는 펠리세트를 묘사한 청동상이 세워졌다.
라이카의 후예들도 펠리세트처럼 살아서 지구로 귀환했다. 물론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했다. 2007년 출간된 ‘우주의 동물들(Animals in Space)’이란 책에 따르면 1951~1966년 소련은 개를 실은 로켓을 71회 발사했는데, 그중 17마리가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해파리, 거미, 달팽이도 우주로 나가
미소(美蘇)의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주동물도 늘어났다. 달 궤도로 거북을 보냈으며, 우주왕복선에 해파리 수천 마리를 실어 발사하기도 했다. 1973년 미국은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에 ‘아니타(Anita)’와 ‘아라벨라(Arabella)’라는 이름의 유럽정원거미를 보냈다. 미세 중력 환경에서 거미줄을 제대로 치는지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거미는 우주에서도 거미줄을 만들기는 했지만, 지구처럼 균일한 모양은 아니었다.
인간과 같은 영장류도 우주로 갔다. 미국은 1948~1951년 ‘앨버트(Albert)’ 1~6이라는 이름의 붉은털원숭이 6마리를 우주로 보냈다. 이어 1961년 1월에는 침팬지 ‘햄(Ham)’이 머큐리 레드스톤 2호를 타고 우주로 갔다가 무사 귀환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머큐리 레드스톤 3호에 탑승한 앨런 셰퍼드(Alan Shepard)가 우주로 나간 첫 미국인이 됐다.
영화 ‘혹성 탈출’ 시리즈의 2001년 작에는 미래 지구를 지배한 침팬지 문명이 과거 인류가 우주로 보냈던 침팬지에서 비롯됐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는 물론 다르다. 햄은 1963년 나사에서 은퇴하고 여생을 동물원에서 보내다가 1983년 26세에 세상을 떠났다.
대형 포유동물의 우주 비행은 1969년 아폴로 11호 우주인의 달 착륙 이후 유인 우주 비행에 자신감이 높아지면서 크게 줄었다. 라이카의 비극적 최후가 알려지면서 동물 희생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아진 점도 영향을 줬다.
하지만 우주동물의 대상은 더 넓어졌다. 윤리 논란이 있는 대형 동물 대신 실험 목적에 맞게 다양한 작은 동물이 선택됐다. 이를테면 우주에서 귓속 내이(內耳)의 변화는 귀뚜라미의 균형 기관으로 알아보고, 운동신경 변화는 신경세포가 매우 큰 달팽이로 대신 실험했다.
최근 우주 실험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작은 동물은 물곰이다. 이스라엘이 달에 물곰을 보낸 데 이어, 우리나라도 2021년 물곰을 우주로 보냈다. 당시 조선대와 연세대 연합팀에 만든 초소형 큐브위성 KMSL이 러시아 소유스 로켓에 실려 우주로 발사됐다. 그 안에 물곰 100마리도 들어있었다.
◇장내 세균 건강 알려줄 꼴뚜기별 왕자
최근에는 우주방사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동물실험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화성 탐사처럼 장기간 우주여행에 대비한 새로운 실험이 등장했다. 주된 실험 공간은 지구 상공 400㎞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동물로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우주에서 장기간 체류하면 인체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실험했다.
2021년 6월 3일 미국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국제우주정거장으로 무인 화물선 드래건(Dragon)을 발사했는데, 화물 중에 짧은꼬리오징어가 있었다. 김수정 작가의 만화 ‘아기공룡 둘리’를 보면 우주에서 온 꼴뚜기별 왕자가 나온다. 드래건 화물선을 타고 우주로 간 짧은꼬리오징어는 만화 속 꼴두기별 왕자를 똑 닮았다.
오징어는 우주에서 장내 세균의 건강을 실험하기 위해 선택됐다. 장기간 우주여행 시대가 다가오면서 우리 몸의 또 다른 주인인 장내 세균의 건강을 어떻게 유지할지도 중요해졌다. 장내 세균은 소화 기능은 물론 뇌를 포함해 다양한 장기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오징어가 물속에 있으면 녹색과 파란색 빛이 난다. 몸에 별도로 발광(發光) 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을 만드는 미생물과 공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오징어와 발광 미생물을 인체와 장내 세균 대신 실험 모델로 삼았다.
인류가 반세기 만에 다시 달에 발을 딛고 나면 다음 목표는 화성이다. 화성은 지구 궤도의 우주정거장과는 다른 심우주(深宇宙)이다. 그만큼 환경도 더 혹독하다. 과학자들은 다시 우주동물 실험을 늘리고 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9년 작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우주의 어둠을 소리 없이 가로지르는 인공위성… 그 끝없는 우주적 고독 안에서 개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라고 썼다. 고독한 우주여행을 함께 해온 동물들과 앞으로 화성으로 갈 길을 열어줄 동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참고 자료
Scientific Reports(2022),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2-08265-2
University of Hawai(2021), https://www.hawaii.edu/news/2021/06/24/squids-in-space/
Nature Comminications(2016). DOI: https://doi.org/10.1038/ncomms12808
Origins of Life and Evolution of Biospheres(2016), DOI: https://doi.org/10.1007/s11084-016-9522-1
NASA(2014), https://history.nasa.gov/animal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