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풍력 에너지 발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공학의 다양한 영역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풍력 터빈 블레이드(풍력발전기 날개) 대형화에 맞춰 탄소 섬유와 같은 가벼운 소재를 발굴하고 번개와 강한 바람에도 터빈이 잘 도는지 파악하기 위해 ‘광섬유 센서’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길버트(James Gilbert) 영국 헐대 공대 교수는 14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은 넷 제로(탄소배출량 0)를 달성하기 위해 청정 에너지원인 ‘해상풍력 발전’ 프로젝트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길버트 교수는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한국공학한림원(NAEK)과 영국왕립공학한림원(RAEng)이 공동으로 주최한 ‘한영 정책기술포럼’에 토론자로 참여하기 위해 내한했다.
길버트 교수는 유럽의 1위 터빈 제조업체인 ‘지멘스 가메사(Siemens Gamesa Renewable Energy)’와 공동으로 해상풍력 발전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광섬유 센서를 적용하는 ‘아우라 프로젝트(Aura project)’의 연구 책임자다.
영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 전환을 위해 재생에너지, 재생 가능한 에너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3월 해상풍력과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재생 에너지 전환을 담은 ‘에너지 안보 및 넷제로 성장 계획(Powering Up Britain)’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해상풍력 발전 설비용량을 50기가와트(GW)까지 올려 가정에서 쓰는 전기는 모두 재생 에너지로 바꾼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영국은 국가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면 해상풍력 발전의 잠재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관련 기술 개발과 인프라 확대를 위한 지원 정책을 펼쳐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해상풍력 발전은 2050년까지 유럽연합(EU) 전체 에너지믹스(에너지원을 다양화하는 것)의 약 23%를 차지하며 주요 발전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해상풍력 발전기의 효율성은 터빈 날개 길이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길이가 더 길어지면 바람을 받을 수 있는 면적이 증가해 더 많은 전기를 생산, 발전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기업들은 지난 20여년간 경쟁적으로 날개 길이를 길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일례로 스코틀랜드 기업 SSE의 최신 터빈은 날개가 107미터(m)에 달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최초로 8메가와트(MW)급 해상풍력발전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는 평균 풍속 초속 6.5m에서도 이용률 30% 이상이 가능할 수 있도록 로터 지름을 205m까지 늘렸다.
길버트 교수는 “날개 길이가 2배 증가하면 바람을 받는 면적은 4배로 증가한다”며 “날개가 잘 유지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터빈 날개는 복잡한 금형에 주입되는 수지를 사용해 만들어지는데, 풍력 터빈 날개의 길이가 현재 80m 이상 넘고 점점 커지고 있어 수지가 날개를 통해 고르게 분산되었는지 여부를 알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잘 돌아가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길버트 교수는 “광섬유 센서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해상풍력 터빈이 작동하는 동안 번개와 폭풍과 같은 위험에도 잘 견딜 수 있어야 한다”면서 “터빈 날개에 주입된 수지의 무게가 가벼워야 하는 한편, 터빈 날개에 들어가는 수지가 날개에 고르게 분산됐는지를 파악하는 감지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터빈 날개를 길게 만들려면 부품 소재가 가벼워야 한다. 풍력 발전기의 날개는 주로 유리 섬유나 기타 복합 재료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효율적인 에너지 생성에 필요한 강도와 유연성을 제공한다. 문제는 이러한 물질이 생분해되지 않는 데다, 무겁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폐기된 날개가 땅 속에 매립되면 전 세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대안으로 주목되는 것이 탄소 섬유다. 탄소섬유의 무게는 철과 비교해 4분의 1 수준이다. 반면 강도는 10배 높아 풍력 발전기 날개, 항공기 동체 등 다양한 산업에 쓰이는 신소재다. 길버트 교수는 “날개 중량을 줄이고도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리 섬유 대신 탄소 섬유를 사용해 제품을 만든다”고 말했다.
길버트 교수는 “터빈 날개에 설치된 광섬유로 만든 센서를 사용하면 수지가 주입될 때 금형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온도는 적절한지,날개를 따라 잘 들어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며 “이는 기존 센서에서는 구현되지 않는 어려운 기술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들은 해상풍력 사업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은 노르웨이 에너지기업 에퀴노르와 ‘반딧불이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는 울산시 연안 70km 해상에 15메가와트(㎿)급 풍력발전기 50기를 설치해 총 750㎿ 규모의 세계 최대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동해 권역에서 추진 중인 해상풍력 프로젝트 공동개발에 참여, 2030년까지 풍력 사업 발전량을 현재 대비 30배인 2GW까지 확대한다. 두산에너빌리티(034020)도 글로벌 해상풍력 업체인 지멘스 가메사와 손잡고 해상풍력 사업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길버트 교수는 친환경 에너지원인 해상풍력 발전을 위해 한국과도 적극 협력할 수 있다고 했다. 길버트 교수는 “영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바다 자원이 많고 해안선도 길어 해상풍력에너지 발전을 이루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춰 발전소 효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경험을 갖췄다”면서 “한국 기업 또는 연구소와도 협력해 해상풍력 관련 연구과제를 수행할 기회가 올 수 있다면 기꺼이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원자력을 주요 핵심 에너지 원으로 밀고 있다. 해상풍력 에너지의 확대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원자력보다 잠재력이 클까. 이에 대해 길버트 교수는 “원자력 발전소가 (해상풍력 발전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원자력 원자로에서 연소를 마친 뒤 배출된 사용후핵연료를 운반하고 저장하는 데 사용하는 특수 용기 주재료는 금속와 콘크리트이 사용되는데 이산화탄소 배출원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길버트 교수는 “바람을 이용한 해상풍력은 상대적으로 친환경 재생에너지로서 탄소중립 목표에 더 가까운 에너지원이라고 볼 수 있다”며 “둘 중 어느 것 하나가 더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에너지믹스를 통해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 전환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