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네크로맨서(Necromancer)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강령술사를 뜻하는 네크로맨서는 죽은 사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을 사용하는 이들을 말한다. 사람은 아니지만 죽은 거미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들이 있다. ‘네크로보틱스(Necrobotics)’라는 이름이 붙은 이 마법 같은 기술이 올해 이그(Ig) 노벨상을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의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지는 14일(현지시각) 미국 라이스대학의 다니엘 프레스턴 교수 등을 비롯한 연구진이 제33회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 기계공학 부문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 발표를 앞두고 발표하는 ‘짝퉁 노벨상’이다. 이그는 ‘있을 법하지 않은 진짜(Improbable Genuine)’의 약자다. 있을 법하지 않지만 진짜로 있는 엉뚱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다.

이그 노벨상 기계공학상을 받은 미국 라이스대학 연구진. 이들은 죽은 거미의 다리를 이용해 물건을 집는 그리퍼를 만들었다./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라이스대 연구진은 죽은 거미를 이용해 물건을 움켜쥘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거미는 근육을 이용해 다리를 펴지 않는다. 거미에게는 굴근이라고 하는 근육이 있는데 이 근육은 다리를 안쪽으로 구부리기만 하고 밖으로 펼 수는 없다. 거미는 체내 수압을 조절해 다리를 바깥으로 벌린다. 거미가 죽으면 수압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다리는 몸 안 쪽으로 구부러져서 둥글게 말리는 것이다.

라이스대 연구진은 연구실에서 작업을 하다 복도 끝에 있는 거미의 사체를 보고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즉시 죽은 거미를 찾아서 실험을 했다. 죽은 거미의 체내에 공기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다리를 벌렸다 구부렸다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연구진은 늑대거미를 이용해 실험을 했는데 1000번에 달하는 ‘구부렸다-펼쳤다’ 사이클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걸 확인했다.

특히 죽은 거미의 다리를 이용해 물건을 드는 것도 성공했다. 거미는 자기 몸무게의 130% 이상의 무게를 들 수 있다. 연구진은 실제로 죽은 거미를 이용한 그리퍼로 회로기판을 조작하거나 물체를 들거나 심지어 다른 거미를 들어올리기도 했다.

연구진은 “거미 그리퍼는 휴대용 장치의 역할을 할 수 있고 야외에서는 선천적으로 위장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고 밝혔다. 프레스턴 교수는 “우리는 이그 노벨상이 강조하는 창의적인 사고를 유발하는 연구의 팬”이라며 “우리의 롤 모델 중 몇 명이 이그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 대열에 합류하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그 노벨상 기계공학상을 받은 라이스대 연구진의 '네크로보틱스'의 원리를 보여주는 그림./라이스대

영국 사우샘프턴대학의 얀 잘라시에비치(Jan Zalasiewicz) 교수는 이그 노벨 화학·지질학상을 수상했다. 잘라시에비치 교수는 많은 과학자가 바위를 핥는 걸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바위의 축축한 표면이 건조한 표면보다 광물 입자를 더 잘 보여주기 때문에 바위를 핥아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그 노벨 영양상은 전기 젓가락과 빨대를 연구한 일본 연구진에게 돌아갔다. 도쿄대의 나카무라 히로미는 “음식의 맛은 전기 자극에 의해 바뀔 수 있다”며 “조미료 같은 기존 재료로는 불가능한 걸 혀에 전기 자극을 줘서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전기 젓가락과 빨대로 혀에 전기 자극을 주면 음식의 짠맛을 강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공중보건상은 한국인 과학자가 받았다. 스탠퍼드대 의대 비뇨기의학과의 박승민 박사는 진단용 스마트 변기를 개발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박 박사가 개발한 스마트 변기는 내장 카메라로 대소변 사진을 찍어서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이다.

이그 노벨 공중보건상을 받은 미국 스탠퍼드 의대 박승민 박사가 유튜브로 생중계된 시상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유튜브 캡쳐

이그 노벨 의학상은 개인의 콧구멍에 같은 수의 머리카락이 들어있는지 연구한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과학자들이 받았고, 이그 노벨 커뮤니케이션상은 문장을 거꾸로 말하는 사람들을 연구한 칠레 산티아고대 연구진에게 돌아갔다.

이그 노벨 물리학상은 밤에 산란을 위해 갈리시아 해안에 모이는 멸치의 활동이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연구한 이들에게 돌아갔다. 물리학상을 받은 사우샘프턴 대학의 비에이토 페르난데즈 카스트로(Bieito Fernández Castro) 박사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작은 규모의 물리적 현상에 대한 연구가 이렇게 큰 관심을 받을 지 몰랐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Advanced Science, DOI : https://doi.org/10.1002/advs.202201174

Scientific Reports, DOI :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8-020-67551-z

Nature Geoscience, DOI :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1-022-009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