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30일 솔라 오비터 탐사선이 태양의 남극 부근에서 관측한 코로나 홀(Corona hole). 고에너지 입자들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ESA

작은 시냇물이 모여 거대한 강을 이루듯 태양 곳곳에서 발생하는 작은 폭발들이 위성통신과 전력망을 일시에 망가뜨리는 거대한 태양풍(solar wind)을 만들어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태양풍은 태양에서 우주로 분출되는 고에너지 입자들의 흐름이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태양풍을 연구했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지 못했다.

독일 막스 플랑크 태양계연구소의 락슈미 프라딥 치타(Lakshmi Pradeep Chitta) 박사 연구진은 지난 25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유럽우주국(ESA)의 무인(無人) 탐사선 솔라 오비터(Solar Orbiter)가 태양 표면에서 짧은 시간 동안 작은 규모의 입자 분출이 발생하는 모습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이런 작은 분출들이 거대한 태양풍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고에너지 물질 분출하는 코로나 구멍

태양의 대기층인 코로나(corona)는 온도가 150만도까지 올라간다. 온도가 엄청나게 높으면 물질이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플라스마(plasma) 상태로 존재한다. 여기서 시간당 160만㎞ 속도로 전기를 띤 입자들의 흐름인 태양풍을 우주로 내뿜는다.

치타 교수 연구진은 솔라 오비터가 2022년 3월 20일 태양의 남극에서 100만도의 플라스마가 초속 100㎞ 속도로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탐사선이 찍은 영상을 보면 여러 곳에서 200~500㎞ 길이의 검은 선들이 보인다. 명암(明暗)이 거꾸로 나타나는 네거티브 영상이므로 실제는 검은 선이 다른 곳보다 더 밝다. 바로 고에너지 입자들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태양풍의 평균 속도가 초속 450㎞이고, 그중 빠른 것은 초속 750㎞에 이른다는 점에서 이번에 관측한 현상은 규모가 훨씬 작은 미세 분출이라고 볼 수 있다. 분출 시간도 20~100초로 짧았다. 그래도 이때 분출된 에너지는 미국에서 3000~4000가구가 1년 동안 쓰는 에너지에 맞먹는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태양 표면에서 나타나는 20~100초 동안 초속 100km로 고에너지 입자를 뿜오내는 피코플레어들. 검은 선으로 나타난 부분이다. 네가티브 필름 사진이어서 검은 부분이 다른 표면보다 실제로는 더 온도가 높다./ESA

과학자들은 수십년 동안 태양풍이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지 연구했지만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태양을 가까이서 관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라 오비터는 지난해 태양에 4500만㎞까지 근접했다. 태양계 맨 안쪽에 있는 수성보다 더 태양에 가까이 간 것이다. 솔라 오비터는 2020년 발사 후 타원궤도로 태양을 돌고 있는데 2년에 한 번 태양에 근접한다.

연구진은 솔라 오비터의 극자외선 영상(EUI) 장비가 태양 남극의 이른바 ‘코로나 구멍(coronal hole)’에서 플라스마 분출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코로나에서 온도가 낮아 어둡게 보이는 곳이 코로나 구멍이다. 과학자들은 태양풍이 코로나 구멍의 자기장과 관련이 있다고 봤다. 솔라 오비터의 관측 결과는 이와 일치한다.

지구나 태양에서 물체를 끌어당기는 공간인 자기장은 자기 남·북극에서 위로 곧게 뻗었다가 다시 휘어져 아래로 내려온다. 코로나 구멍은 자기장이 안쪽으로 돌아오지 않고 밖으로 나온다. 이 때문에 코로나 구멍은 풍선이 새는 것처럼 태양풍을 우주로 입자들이 뿜어낸다는 것이다.

◇작은 분출들이 모여 거대한 태양풍 이뤄

코로나에서 발생하는 고에너지 입자 분출은 수소폭탄 수천만개가 동시에 폭발하는 것에 맞먹는 X급 태양 플레어(flare, 폭발)부터 그보다 10억분의 1 규모인 나노플레어(nanoflare)까지 있다. 지난해 솔라 오비터가 발견한 코로나 구멍에서 관측한 분출은 나노플레어보다 1000분의 1 작은 에너지를 방출해 피코플레어(picoflare)로 명명됐다. 피코는 1조분의 1이라는 뜻이다.

2020년 발사된 유럽우주국(ESA)의 태양 탐사선 솔라 오비터는 수성보다 더 가까운 궤도로 접근해 태양을 탐사했다./ESA

지금까지는 초고온 상태인 코로나가 자연히 팽창하고, 그중 일부가 우주로 뻗는 자기장을 따라 빠져나간다고 봤다. 이는 태양풍이 꾸준히 연속적으로 생성된다고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코로나 구멍에서 플라스마 분출들이 곳곳에서 서로 떨어진 채 발생하며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소규모로 진행되는 것을 확인했다.

논문 공저자인 벨기에 왕립천문대의 안드레이 주코프(Andrei Zhukov)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 중 하나는 플라스마 분출이 실제로 균일하지 않고 여러 곳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코로나 구멍에서 나오는 태양풍이 매우 간헐적인 분출로 시작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피코플레어가 에너지는 작지만 수가 많아 각각 최대 1분 정도만 활동해도 거대한 태양풍에 충분한 플라스마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치타 박사는 “산에서 흘러내린 작은 시냇물들이 모여 결국 거대한 강을 이루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 구멍이 태양풍의 기원이라는 사실은 앞서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지난 3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스튜어트 베일(Stuart Bale) 교수 연구진은 네이처에 “파커 태양 탐사선(Parker Solar Probe)이 태양 표면의 코로나 구멍에서 고에너지 입자의 흐름을 감지했으며, 이곳이 평균보다 빠른 ‘고속’ 태양풍이 시작되는 영역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파커는 2018년 미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태양 탐사선이다. 1958년 태양풍의 존재를 처음 예측한 시카고대의 유진 파커(Eugene Parker) 교수의 이름을 땄다. 베일 교수 연구진은 파커 탐사선이 코로나 구멍에서 태양풍이 균일하지 않다는 것을 감지했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고에너지 입자들이 샤워기 헤드에서 분사되는 물줄기처럼 방출됐다.

2023년 8월 7일 태양 표면이 폭발하면서 밝게 빛나는 모습. 이로 인해 지구 곳곳에서 통신망이 두절됐다./NASA

◇지구 인프라 구하는 태양풍 연구

태양풍이 코로나 구멍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태양 활동의 극대기에 지구의 피해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태양이 안정기에 있을 때는 코로나 구멍이 극지방에 한정돼 여기서 나오는 빠른 태양풍이 지구에 닿지 않는다. 하지만 11년마다 태양의 자기장이 뒤집히면서 태양 활동이 활발해지면 코로나 구멍이 표면 전체에 나타난다. 이로 인해 지구를 직접 겨냥하는 태양풍이 폭발적으로 발생한다.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태양풍이 지구 대기권과 충돌하면 자기장이 교란되면서 극지방에 오로라가 발생한다. 동시에 인공위성이 고장 나 통신과 항공기 항법시스템에도 문제가 생긴다. 플라스마 입자가 쌓이면서 유도전류가 발생해 전력시설이 파괴되고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태양 활동이 내년에 11년 주기의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최근 대형 폭발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올 7월과 8월에는 X급 폭발 세 개가 관측됐다. 지난 7일 태양 폭발은 세계 곳곳에서 통신 장애를 유발했다. 태양풍 연구가 태양의 비밀을 밝히는 동시에 지구의 인프라를 보호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참고 자료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e5801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59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