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항생 효과를 내는 분자 구조만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왼쪽부터 서상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 장석복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 시앙류 IBS 선임연구원./기초과학연구원

국내 연구진이 항생제를 만드는 공정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필요한 구조의 물질만 선택해서 합성하는 방식으로 기존 공정을 간소화했다. 다른 물질에 항생제 분자를 결합하는 것도 가능해 신약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장석복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장이 이끄는 연구진은 25일 니켈 촉매를 이용해 필요한 구조의 항생제를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반응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카탈리시스’에 실렸다.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1928년 우연한 계기로 발견됐다. 페니실린의 구조는 17년이 지난 1945년에야 알려졌다. ‘베타-락탐’으로 불리는 사각 고리 모양의 화합물은 페니실린의 주요 구조로 항생 효과를 낸다. 덕분에 베타-락탐 구조를 기반으로 페니실린 이후에 카바페넴, 세팔렉신과 같은 주요 항생제도 개발됐다.

페니실린의 구조가 알려지면서 다양한 항생제를 합성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도 남아 있다. 분자를 구성하는 원소의 종류와 개수가 완전히 같아도 전혀 다른 성질을 내는 구조가 만들어져 합성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이런 현상은 거울상 이성질성 또는 카이랄성이라고 부른다.

베타-락탐의 카이랄성을 줄이고 항생 효과를 내는 구조만 합성하려면 보조제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보조제를 쓰는 합성 공정은 단계가 복잡하고 제조 단가가 높다. 보조제를 없애기 위해 화학물질을 사용해 폐기물이 발생한다는 문제도 있다.

IBS 연구진은 니켈 촉매를 이용해 필요한 구조의 베타-락탐의 선택적 합성에 성공했다. 앞서 2019년 오각형의 감마-락탐을 합성한 이후 새로운 촉매가 개발된 덕이다.

연구진은 가격이 비싼 이리듐을 대신해 저렴한 니켈 촉매를 활용했다. 이를 기존 항생제 합성 공정에 적용한 결과, 공정이 8단계에서 3단계로 대폭 감소했다. 보조제를 넣고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 덕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서상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화학물리학과 교수는 “두 가지 구조의 베타-락탐 중 필요한 구조를 95% 이상의 정확도로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니켈 촉매를 활용해 복잡한 구조의 천연 물질에 베타-락탐을 결합하는 데도 성공했다. 신약 후보 물질을 기존보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장석복 단장은 “페니실린, 카바페넴과 같은 주요 항생제의 골격인 카이랄 베타-락탐을 손쉽게 합성했다”며 “유용한 물질의 합성 과정을 간소화해 산업에 적용하는 동시에 신약 개발을 위한 다양한 후보물질 발굴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