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뿔 난 과학계 달래기에 나섰다.
이 장관은 2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스카이홀에서 25개 과학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기관장을 만났다. 앞서 과기정통부는 지난 22일 내년도 주요 R&D 예산을 13.9% 삭감하고, 국가 R&D 사업 가운데 하위 20%는 구조조정하는 내용의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1991년 이후 33년 만의 R&D 예산 삭감에 과학기술계는 참담하다는 반응이다.
출연연의 충격은 더 크다. 출연연의 총 예산은 연 5조5000억원 수준으로 정부 R&D 예산의 16.6%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번에 출연연의 주요 사업비 예산 중 20%가 삭감됐다. 특히 출연연이 R&D 카르텔과 비효율의 주범처럼 지목되면서 출연연 소속 연구자들의 사기가 뚝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간담회인 만큼 출연연 기관장들이 어떤 목소리를 낼 지에 관심이 쏠렸다. 앞서 출연연을 관리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김복철 이사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R&D 예산 삭감의 방향은 맞지만 방식이 잘못됐다”며 쓴소리를 낸 직후여서 김 이사장이 다시 비판의 목소리를 낼 지도 관심사였다.
간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참석한 기관장들을 통해 분위기는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한 출연연 기관장은 “R&D 비효율을 없애기 위한 제도 개선에는 기관장들도 대부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며 “다만 계도기간을 두거나 구조조정 대상이 되더라도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는 완충 장치 같은 건 만들어야 하지 않냐는 지적은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기관장은 “해외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연구들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며 “예산 삭감에서 그치지 않고 국제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출연연 기관장들은 예산 삭감은 어쩔 수 없다면 기관에 예산을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재량권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우주 분야의 한 출연연 기관장은 “지금 시스템은 정부가 출연연에 직접 예산을 주는 게 아니라 연구 과제 하나하나에 별도로 예산을 주는 방식이다 보니 출연연 입장에선 예산 배정에 아무런 자율성이 없다”며 “출연연 입장에서는 줄어든 예산을 조금 더 기민하게 쓸 수 있도록 자율성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다른 출연연 기관장도 “기관장에게 예산 운용의 자율성을 늘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고, 장관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을 비판했던 김복철 이사장은 “이번 혁신과정을 통해 향후 몇 년 내 세계 최고의 혁신 거점으로 거듭나도록 전략·전술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한 발 물러섰다.
이 장관은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혁신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연구 현장의 높은 혁신 의지와 함께라면 최고의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기관으로 성공적인 체계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며 “이번 간담회를 시작으로 현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재정적·정책적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