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이 과거 기후와 고인류 화석 데이터를 분석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혼혈이 기후 변화 덕분에 등장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두 종이 동시에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6차례 나타났고, 이 시기 교류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했다./악셀 팀머만

21세기의 지구 온난화는 기후 위기를 일으켜 지구촌에 여러 재난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먼 옛날 지구를 덮친 온난화는 인류 조상의 친척들이 서로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됐다. 또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급격한 빙하기 시기에 유럽 인류의 조상이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 만년 전에 있었던 인류 조상의 친척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해답의 실마리는 꽃가루에 있었다.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 단장이 이끄는 연구진은 1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기후 변화가 인류의 조상이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며 “이로 인해 다른 종(種)과 교류해 자손을 낳거나 한 지역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고 밝혔다.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재현한 데니소바인의 얼굴. 중앙아시아 일대에 살던 데니소바인은 지구가 따듯해지며 유럽에서 넘어온 네안데르탈인과 만나 자손을 남겼다./마얀 하렐

◇대륙 뛰어 넘은 사랑의 비밀은 지구 온난화

네안데르탈인은 약 13만년 전 유럽 지역에 등장해 4만년 전쯤 멸종했다. 약 20만년 전에 등장한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인류 조상의 친척이다. 이 시기 아시아에서는 또 다른 인류의 친척인 데니소바인이 살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서로 교류했다는 증거는 2018년 처음 발견됐다.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소장은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데니소바 동굴에서 한 구의 화석을 발굴해 ‘데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데니는 13세 소녀로 데니소바인 아버지와 네안데르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었다. 데니의 발견은 지금까지도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유일한 교류 증거다.

팀머만 단장은 “현대인들에게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발견될 정도로 과거 인류들은 많은 교류가 있었다”며 “다만 데니소바인의 흔적이 단 16개만 남아 있어 네안데르탈인과의 교류와 혼혈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IBS 연구진은 이같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교류가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과거 기후 데이터를 분석했다. 지금까지 고인류 연구는 화석과 디옥시리보핵산(DNA)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IBS 연구진은 기후에 따라 인류의 거주 환경이 변하면서 이동 경로를 찾아간다는 새로운 접근 방법을 활용했다.

우선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화석이 발견된 지역의 과거 기후를 추정했다. 이들이 선호하는 기후 조건을 찾기 위해서다. 네안데르탈인은 따듯한 온대림과 초원지대에 살았고 데니소바인은 툰드라처럼 추운 냉대림을 선호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구의 자전축과 공전궤도의 변화를 분석해 이들의 서식지가 서로 겹치는 지역도 확인했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최소 6차례 같은 지역에 이들이 모두 선호하는 기후가 만들어졌다. 데니가 발견된 지역 이외에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서로 만나 자손을 낳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데니가 살았던 시기를 포함해 약 21만년 전과 30만년 전이다. 이때 지구의 기온은 따듯해지면서 유럽의 온대림이 중앙아시아로 확장됐다. 이 길을 따라 네안데르탈인이 이동했고, 데니소바인의 서식지까지 도달했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팀머만 단장은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인류 조상들의 이종교배 패턴이 바뀌는 것을 확인했다”며 “아직 찾지 못한 두 종의 혼혈이 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호모 에렉투스의 복원 사진. 호모 에렉투스는 유럽에 진출해 살았으나 약 112만년 전 흔적이 사라졌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은 그 이유가 급격한 빙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후 모델 연구로 알아냈다./팀 에반슨

◇감춰졌던 빙하기가 유럽을 빈집으로 만들었다

연구진은 약 112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유럽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도 과거 기후 분석으로 알아냈다. 호모 에렉투스는 180만년 전 등장해 10만년 전 멸종한 고대 인류의 친척이다. 완벽한 이족보행 능력을 갖춰 ‘일어선 자(erectus)’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모에렉투스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중앙유라시아를 거쳐 서유럽으로 진출했다. 이들의 이동 경로에는 시기에 따라 다양한 화석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다. 140만년 전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한 이들의 흔적은 112만년 전을 전후로 유럽에서 사라졌다. 학계에서는 그 이유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멸종한 것인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는지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팀머만 단장은 “유럽을 지배했던 호모 에렉투스가 사라지고 전혀 다른 인류가 다시 등장했다”며 “그 이유는 아직 누구도 모르는 상태”라고 말했다.

IBS 연구진은 200만년에 걸친 장기간의 과거 기후 데이터와 서식지 모델을 결합해 당시 호모 에렉투스가 겪었던 환경을 재현했다. 이들의 마지막 행적이 발견된 이베리아 반도의 연안의 퇴적물에서 꽃가루와 해조류의 흔적도 분석해 기후 분석의 정확도를 높였다.

분석 결과, 호모 에렉투스가 유럽에서 사라진 112만년 전 유럽 지역에 급격한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시기 북대서양 인근 바다의 수온은 7도까지 내려갔다. 이전 기후 데이터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기후 패턴이다. 이 시기 급격하게 추워진 유럽의 기후는 약 4000년 동안 지속되면서 호모 에렉투스의 생활을 어렵게 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이 과거 유럽의 기후 변화를 분석해 호모 에렉투스가 약 112만년 전 사라진 이유를 찾았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른 빙하기로 유럽에서 살기 어려워진 이들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은 이 시기 유럽의 기후를 더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기후 시뮬레이션 분석을 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유럽의 빙상이 급격하게 붕괴되며 차가운 물이 바다로 유입됐고 급격한 기후 변화가 나타났다. 유럽 일대에서는 강수량은 많지만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반사막화’ 현상이 일어났고, 호모 에렉투스의 서식 적합성은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지금까지 유럽 최초의 빙하기는 약 90만년 전에 나타났다고 알려졌으나, 이보다 앞서 빙하기가 있었다는 새로운 증거다. 유럽에서 살기 어려워진 호모 에렉투스는 결국 사라졌고, 빈 자리는 호모 안테세소르라는 새로운 종이 채우게 됐다.

팀머만 단장은 “과거 인류 조상들은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받아 왔다”며 “현대에 사는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고 있는 만큼 새로운 기술 개발과 탄소 감축 같은 대책을 세워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d4459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j4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