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연구진은 지난 6월 2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천문학’에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토성의 위성 엔켈라두스(Enceladus) 남극에서 우주로 뿜어져 나오는 1만㎞ 길이의 수증기 기둥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물기둥이 뻗은 것과 같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미국과 유럽, 캐나다가 25년간 13조원을 들여 개발한 사상 최대 크기의 우주 망원경이다. 2021년 크리스마스에 우주로 발사돼 이듬해 1월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관측 지점에 도착했다. 나사에 따르면 이번에 제임스 웹이 포착한 물기둥은 지금까지 엔켈라두스에서 관측된 것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태양계에서 바다를 간직한 ‘오션 월드(ocean world)’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상과 우주에서 관측한 자료를 토대로 태양계에서 잇따라 바다가 있는 천체들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목성과 토성, 해왕성의 위성에서부터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 그리고 저 멀리 명왕성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오션 월드들이 드러났다.
◇생명 풍부한 심해 환경과 같은 지하 바다
과학자들이 우주에서 바다를 찾는 것은 액체 상태의 물이 있어야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은 수많은 물질을 녹이는 최고의 용매(溶媒)여서 생명체에 필요한 물질들을 제공할 수 있다. 또 물은 비열, 즉 물 1g을 1도 높이는 데 필요한 열량이 다른 물질보다 크다. 덕분에 생명체를 더위와 추위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물을 구성하는 산소와 수소는 에너지 흐름을 만들어내고 생명체의 뼈대가 되기도 한다.
이번에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엔켈라두스는 지름이 504㎞로, 지구의 4% 크기에 불과하다. 달과 비교해도 7분의 1에 그친다. 과학자들이 이 작은 위성에 주목하는 것은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Europa)와 함께 태양계에서 물이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천체로 꼽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곳처럼 물을 살짝 얼린 슬러시나 얼음 상태가 아니라 생명체가 탄생하기에 충분한 온도의 바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유럽의 공동 탐사선 카시니(Cassini)는 2005년 처음으로 엔켈라두스 남극에서 물기둥들이 분출되는 모습을 관측했다. 과학자들은 자기력과 중력 관측 정보를 토대로 엔켈라두스에는 표면의 지하 40㎞에 최대 수심 10㎞인 바다가 있다고 추정했다. 표면의 얼음층과 중심부의 암석층 사이에 바다가 있다는 말이다. 나사 과학자들은 지난 2016년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유로파의 남극 근처에서 물기둥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최대 200㎞까지 치솟는 장면을 포착했다.
유로파에서도 물기둥이 관측됐다. 1990년대 목성 탐사선 갈릴레오(Galileo)는 유로파를 지나면서 자기력이 변하는 것을 확인했다. 전기가 통하는 액체가 있어야 자기력이 달라진다. 이를 근거로 과학자들은 유로파 지하에 수심 100㎞인 소금기를 띤 바다가 있다고 추정했다. 소금물은 전기가 잘 통한다. 과학자들은 2012년과 2016년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유로파 남극 근처에서 높이 160~200㎞의 물기둥이 솟구치는 장면을 포착했다.
과학자들은 목성과 토성의 중력 때문에 유로파와 엔켈라두스 내부 바다에 마찰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해저 온천이 생긴다고 본다. 이 온천수가 지표면의 갈라진 틈을 타고 물기둥으로 분출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유로파와 엔켈라두스의 지하 바다는 지구 심해의 열수분출구(熱水噴出口)와 같은 환경일 가능성이 크다.
1970년대 해양학자들은 심해저 화산지대에서 뜨거운 물이 분출되는 열수분출구를 발견했다. 햇빛도 들지 않는 곳이지만 그곳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지구 초기에 이런 곳에서 생명체가 탄생했다고 본다. 유로파와 엔켈라두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2015년 미국과 독일 과학자들은 엔켈라두스의 물기둥에서 해저 온천에서 생성됐을 것으로 보이는 규산염 성분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규산염의 입자 크기로 볼 때 섭씨 90도 이상의 물이 암석과 만났을 때 생성됐다고 추정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의 프랑크 포스트버그(Frank Postberg)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 6월 15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엔켈라두스 지하 바다에 생명체의 핵심 구성 요소인 인산염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은 지금까지 지구 이외의 바다에서 검출된 적이 없었다. 인산염에 있는 인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인은 에너지를 운반하는 분자인 ATP와 유전정보를 담은 DNA를 이룬다. 세포막, 사람과 동물의 뼈와 치아도 만든다.
◇바닷물 양에서 지구 압도하는 천체들
태양계의 오션 월드는 규모에서 지구를 압도한다. 지구는 표면의 71%가 바다지만, 바닷물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지구 반지름이 6371㎞이다. 나사 제트추진연구소(JPL)에 따르면 지구에 있는 물을 모두 합쳐 공으로 만들면 반지름이 690㎞에 지나지 않는다. 유로파는 반지름이 지구보다 훨씬 작은 1565㎞이지만 거기에 담긴 물공은 반지름이 880㎞로 훨씬 크다. 양으로 따지면 지구보다 두 배 이상이다.
다른 곳에는 더 많은 물이 숨어 있다.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Ganymede)와 토성의 위성 타이탄(Titan)은 각각 물공의 반지름이 2350㎞, 1890㎞나 된다. 가니메데는 태양계에서 가장 큰 위성이다. 수성보다 크다. 얼음과 지하 바다가 샌드위치처럼 번갈아 가며 층을 이루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오로라 활동을 볼 때 바다가 따듯하고 염분을 띠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는 지표를 덮은 얼음층 아래 50㎞에 지구의 사해(死海) 같은 염분이 강한 바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이탄은 여러 면에서 지구와 닮았다. 기압이 비슷하고 지구 대기의 수증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메탄이 대기 전반에 분포하고 있다. 메탄과 탄화수소로 채워진 호수도 확인됐다.
목성의 위성 칼리스토(Callisto)와 해왕성의 위성 트리톤(Triton)도 물공의 반지름이 1800㎞와 1170㎞나 된다. 칼리스토는 200㎞ 두께의 얼음층 아래에 10㎞ 깊이의 바다가 있으며, 트리톤도 표면 얼음층과 암석 중심부 사이에 바다가 있다고 추정된다.
행성 아래 단계인 왜해성(矮行星)에도 바다가 있다. 지난 2016년 나사는 탐사선 뉴허라이즌스(New Horizons)가 전송한 자료를 토대로 태양계 외곽의 명왕성에 슬러시나 진창 같은 바다가 존재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나사가 바다가 있다고 지목한 곳은 명왕성 사진에서 하트 모양이 선명한 ‘스푸트니크 평원’의 지하이다. 명왕성의 심장 아래에 바다가 흐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태양계의 끝자락에 있는 명왕성은 2006년 국제천문연맹으로부터 행성 지위를 박탈당하고 왜행성으로 강등됐다. 모양이 길쭉한 데다 행성처럼 태양을 돌면서도, 다른 행성 등의 영향을 받아 궤도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명왕성은 가장 큰 위성인 카론과 서로 주위를 돈다.
나사 과학자들은 스푸트니크 평원이 늘 카론을 등지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스푸트니크 평원 쪽에 뭔가 무게가 더 나가는 게 있어야 공전하면서 항상 바깥쪽을 향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지하의 슬러시 바다가 바로 추가된 무게라고 봤다. 명왕성 지하에는 물을 얼지 않게 하는 암모니아도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주목받은 오션 월드는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에 있는 왜행성인 세레스(Ceres)에 있다. 2016년 미국 행성과학연구소는 사이언스지에 나사 탐사선 돈(Dawn)의 관측데이터를 통해 세레스의 북극 지역에서 표면 구멍마다 얼음이 가득 차 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세레스의 얼음에는 탄산나트륨이 있었다. 탄산나트륨과 같은 소금 성분은 지구에서 심해저 화산지대의 고온 환경에서 생성된다. 표면의 얼음이 과거 세레스의 지하 바다에서 솟아났다는 의미다.
◇심우주 탐사에 필요한 연료 제공할 수도
미국과 유럽은 태양계의 오션 월드에 잇따라 탐사선을 보냈다. 목성 탐사선 갈릴레오(1987년 발사), 토성 탐사선 카시니(1997년 발사)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오션 월드 탐사를 이끌었다. 그 뒤를 이어 지난 2011년 탐사선 주노(Juno)가 발사돼 2016년 목성 궤도에 도착했다.
주노의 탐사 목표는 4개의 갈릴레이 위성들이다. 1610년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목성 주변에서 발견한 이오(Io)와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이다.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신과 사랑을 나눈 연인들의 이름이다. 목성(주피터)은 제우스의 로마식 이름이다. 그런데 탐사선 주노는 제우스 신의 아내인 헤라의 로마식 이름이다. 주노 탐사는 본처가 남편 주위를 맴도는 연적들을 찾아 나선 셈이다.
주노 탐사선은 2021년 가니메데를 탐사했으며 지난해에는 유로파 표면의 골짜기와 충돌구를 상세하게 관찰했다. 올해와 내년에는 이오에 근접 비행할 예정이다. 주노의 유로파 탐사 결과는 나사가 2024년 발사할 유로파 클리퍼(Europa Clipper) 탐사선에 유용한 자료가 된다. 클리퍼는 2030년 목성 궤도에 도착할 예정이다. 목표는 유로파 표면 26㎞ 상공까지 접근해 고해상도 사진을 찍고 화학 성분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생명체가 살 수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유럽도 제우스의 연인들을 찾아 나섰다. 유럽우주국(ESA)은 지난 4월 ‘주스(JUICE)’ 탐사선을 아리안5 로켓에 실어 우주로 발사했다. 주스는 ‘목성 얼음 위성 탐사선(Jupiter Icy Moons Explorer)’이란 뜻의 영어 단어 앞글자를 딴 말이다. 주스는 2031년 7월 목성 궤도에 도착해 4년 반 동안 목성 궤도를 돌며 가니메데와 칼리스토, 유로파 등을 탐사할 계획이다.
나사는 오는 2027년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게도 비행 탐사선 드래건플라이(Dragonfly)를 보낼 예정이다. 드래건플라이는 지구 밖으로 가는 첫 비행 탐사선이다. 화성에서 활동 중인 인저뉴어티도 헬기처럼 날지만, 보조 역할만 하고 있다. 드래건플라이는 2034년 타이탄에 착륙해 지름 1m의 수평 날개 8개로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토양 시료를 채취할 계획이다.
태양계의 바다는 우주탐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다른 탐사를 돕는 보급 기지가 될 수도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최영준 박사는 태양계 오션 월드에 대해 “물은 우주인의 생활용수이자 로켓의 추진제와 산화제를 만들 수도 있다”며 “태양계 다른 행성이나 위성에서 이렇게 중요한 물자를 현지 조달할 수 있다면 우주탐사의 효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계 오션 월드가 인류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참고자료
Nature Astronomy(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50-023-02009-6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5987-9
Science(201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f4219
Nature(2016), DOI: https://doi.org/10.1038/nature20148
Science(200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1121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