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자들이 전기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超傳導) 현상을 상온(常溫)에서 구현했다고 발표했다. 사실이라면 거리 상관없이 무손실 송전(送電)이 가능해 에너지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고성능 전자석도 만들어 자기부상열차와 핵융합 발전에 활용할 수 있다.
당장 노벨상감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학계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내외 과학자들이 실험 결과를 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이 지금까지 과학 연구와 모순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상온 초전도체 찾아 110년 넘게 연구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지난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상압 조건의 127도 이하 온도에서 초전도성을 갖는 납 기반 물질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다른 과학자들의 심사를 거쳐 정식으로 출판되지 않고 연구자가 쓴 논문을 수정 없이 그대로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의 석좌연구원이 마이클 노먼(Michael Norman) 박사는 이를 두고 지난 27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정말 아마추어처럼 보인다”며 “해당 연구진은 초전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일부 데이터를 제시하는 방식이 수상쩍다”고 말했다. 일리노이대의 응집 물질 물리학자인 나디아 메이슨(Nadya Mason) 교수는 “저자들이 (상온 초전도체) 제작 기술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준 것에 감사한다”면서도 “데이터가 약간 엉성해 보인다”고 했다.
초전도 현상은 전류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흐르는 것이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인체 내부를 촬영할 수 있는 것은 초전도선 덕분에 전자석에서 전류가 저항 없이 흘러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를 압도하는 양자컴퓨터도 초전도체가 기반이 됐다. 문제는 현재 초전도선은 극저온에서만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선 피복 안으로 극저온을 유도하는 액체 질소나 헬륨이 흐른다. MRI도 양자컴퓨터도 거대한 냉장고에서만 가동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100년 넘도록 더 높은 온도, 상온에서도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찾기 위해 경쟁했다. 초전도 현상은 1911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지인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Heike Kamerlingh Onnes)가 섭씨 영하 269도에서 처음 발견했다. 납과 니오븀 합금, 주석 등에서 초전도 현상이 구현됐다. 이 공로로 1923년 노벨 물리힉상을 받았다.
미국 물리학자인 존 바딘(John Bardeen)과 레온 쿠퍼(Leon Cooper), 존 로버트 슈리퍼(John Robert Schrieffer)는 1957년 자신들의 이름을 첫 글자를 딴 이른바 BCS 이론으로 초전도 현상을 설명했다. 결정 격자 구조의 진동이 전자 사이에 접착제 역할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쌍이 저항을 받지 않고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른다고 설명한다. 전자쌍을 유도하는 결정 격자 구조의 진동은 영하 233도 이상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세 과학자는 BCS 이론으로 1972년 노벨상을 받았다.
상온 초전도 연구는 최근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초고압으로 초전도 온도를 높였다. 2015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과학자들은 대기압보다 150만배 강한 압력으로 황화수소를 압축해 영하 70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 이후 초전도 현상을 구현할 수 있는 온도가 영하 23도, 영하 13도에 이어 영상 7도까지 발전했다.
미국 로체스터대의 랑가 디아스(Ranga Dias) 교수는 상온 초전도 시대를 열었다. 그는 2020년 네이처에 섭씨 15도에서 수소와 탄소, 황을 다이아몬드 모루 사이에 넣고 압착해 초전도체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성과는 그해 사이언스지의 10대 과학 성과에도 선정됐다. 디아스 교수는 지난 3월에는 초전도 온도를 21도까지 높였다.
◇“납에 구리 불순물 추가해도 전기 차이 없어”
국내 연구진은 납을 이용해 상온에서도 초전도성을 가지는 물질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인산구리를 925도의 고온에서 10시간 구워 얻은 물질을 산화납, 황산화납과 섞어 다시 725도에서 24시간 반응시켰다. 그 결과 납을 기반으로 하는 아파타이트(apatite)라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아파타이트 구조는 육각 기둥의 모양으로 원자가 배열이 반복된 형태다.
납-아파타이트 구조는 비대칭적인 형태를 보였다. 아파타이트 구조는 납 원자 10개로만 만들어지면 대칭 구조를 갖는데, 일부 원자가 구리로 바뀌면서 형태가 일그러진 것이다. 그 결과 부피가 0.48%가 줄며 수축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들어진 초전도성 물질에 ‘LK-99′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번 연구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출신인 김현탁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 앤메리대 교수도 참여했다.
아르곤 연구소의 마이클 노먼 박사는 한국 연구진의 주장에 대해 우선 납 아파타이트는 금속이 아니라 비전도성 광물이어서 초전도체로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 연구진은 납 아파타이트에 구리 불순물을 추가해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 하지만 노먼 박사는 납과 구리 원자는 전자 구조가 비슷해 납 원자의 일부를 구리 원자로 대체해도 재료의 전기적 특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납 원자는 매우 무거워 전자쌍을 유도할 진동을 억제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연구진이 자신들의 초전도체에 대해 이론적 설명을 하지 못하는 점도 의심을 증폭시켰다. 해당 연구진은 납 일부를 구리로 대체하는 도핑(doping, 불순물을 추가해 전기적 특성을 조절)이 물질 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납 원자의 긴 사슬을 왜곡한다고 추측한다. 연구진은 초전도가 이러한 1차원 채널을 따라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먼 박사는 “1차원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초전도를 생성하지 않는다”며 “도핑으로 인한 장애는 초전도를 더욱 억제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국 연구진은 자신들의 초전도체가 자석 위에서 공중 부양하는 모습도 공개했다. 초전도체는 이른바 ‘마이스너 효과(Meissner effect)’로 인해 일반 자석 위에 두면 떠오른다. 초전도체가 되면 물질 내부에 침투했던 자기장이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초전도체 내부에는 자기장이 생길 수 없다. 당연히 자석에 붙지 않고 밀려나 공중에 뜬다.
하지만 영상을 보면 동전 모양의 물질의 한쪽 가장자리만 완전히 공중에 뜨고 다른 쪽 가장자리는 여전히 자석에 붙어 있다. 김현탁 교수는 영국 뉴사이언티스트지에 “시료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일부분만 초전도가 되어 마이스너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라이스대의 더그 나텔슨(Doug Natelson) 교수는 지난 27일 ‘사이언티틱 아메리칸’에 “한국 연구진의 두 논문에 각각 LK-99의 자기적 특성을 자세히 설명하는 도표가 니온다”며 “같은 데이터로 만든 도표이므로 같아야 하는데, 한 논문의 도표에는 다른 도표보다 약 7000배 더 큰 눈금을 가진 Y축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한국 팀에 논평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데이터 조작과 누락, 논문 철회 잇따라
상온 초전도체는 손에 쥐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네이처지는 지난해 “로체스터대의 디아스 교수 연구진이 논문의 표 두 개에 나온 실험 데이터에서 비정상 신호를 빼면서 표준적이지 않고 자신들이 임의로 규정한 절차를 사용했다”며 논문 게재를 철회했다. 결론에 맞추기 위해 실험 데이터를 손봤다는 의미였다.
초전도는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현상과 함께 외부 자기장과 반대 방향으로 같은 세기의 자기장이 생기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과학자들은 디아스 교수 연구진이 전기저항에 대한 데이터는 밝혔지만, 자기장 관련 자료는 누락시켰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디아스 교수는 네이처 논문 철회 결정에 반발하며 지난 3월 다시 네이처에 “섭씨 21도에서 대기압 1만배 정도 압력으로 상온 초전도 현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희토류 원소인 루테튬에 수소와 질소를 넣고 대기압의 2만배 압력으로 압착하고 3일간 섭씨 200도로 구웠다. 압력은 낮추고 온도는 높인 것이다.
학계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과학자들은 수산화물에서도 초전도 현상이 가능하나 영하 148도의 극저온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접착제 역할을 하던 진동이 약해져 초고압에서나 격자 구조와 전자쌍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아스 교수는 아주 작은 질소 원자가 커다란 루테튬 원자 사이를 꿈틀거리듯 지나가면서 격자 구조를 단단하게 하는 상자 모양을 이룬다고 반박했다. 질소가 진동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디아스 교수의 논문이 나온 지 1주일 뒤 중국 난징대 연구진은 “디아스 교수의 논문대로 실험을 반복했지만 초전도 현상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당 결과는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에 실렸다.
이번 한국 연구진의 초전도체에 대해서도 재현실험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미국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연구소의 제니퍼 파울리(Jennifer Fowlie) 박사는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물리학자들은 해당 주장을 신속하게 실험해볼 것”이라며 “사실이라면 일주일 안에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arXiv(2023), DOI: https://doi.org/10.48550/arXiv.2307.12008
arXiv(2023), DOI: https://doi.org/10.48550/arXiv.2307.12037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k0021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5742-0
arXiv(2023), DOI: https://doi.org/10.48550/arXiv.2303.08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