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 단장 연구진은 바이러스의 RNA 안정성과 단백질 생산을 증가시키는 리보핵산(RNA) 염기서열을 발견했다고 6일 밝혔다.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가진 RNA 안정화 및 단백질 생산에 기여하는 조절 서열을 찾기 위해 인간에게 감염된다고 알려진 모든 바이러스 RNA 서열 정보를 모았다./기초과학연구원

국내 연구진이 바이러스에서 리보핵산(RNA)의 안정성과 단백질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RNA 염기서열을 발견했다. RNA는 생명체의 단백질 정보를 담은 물질로 최근에는 백신, 치료제 같은 의약품에 활용되고 있다. RNA 의약품은 설계와 생산이 비교적 간단하지만 안정성이 낮고 단백질 생산량에 따라 효과가 크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번 연구 결과가 RNA 의약품의 단점을 보완하면 다양한 질병에 활용할 수 있는 의약품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 단장이 이끄는 연구진은 6일 국제 학술지 ‘셀’에 “RNA 의약품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염기서열을 바이러스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 정보를 디옥시리보핵산(DNA)에 저장한다. DNA에 저장된 정보는 RNA를 거쳐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안정된 구조를 가진 DNA는 유전 정보를 오랜 기간 보관하기에 적합하다. 불안정한 구조로 빠르게 분해되는 RNA를 이용해 단백질이 필요한 시기와 양만 만들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중심 원리(Cetral Dogma)’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모든 생명체에서 나타나는 만큼 생명체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반면 생물과 무생물의 특징을 모두 가진 바이러스는 RNA에 직접 유전 정보를 저장하기도 한다. RNA는 유전 정보를 담기에는 불안정한 만큼 바이러스는 RNA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면서 진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는 의료·산업적으로 중요하다고 알려진 몇몇 종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IBS 연구진은 수백 종의 바이러스 RNA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대량 염기서열 분석법을 사용해 RNA의 안정성과 단백질 생산을 증가시키는 염기서열을 찾았다.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진 모든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분석했고, 이중 염기서열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많은 바이러스 142종의 선별해 RNA를 추출했다.

서제니 IBS RNA 연구단 연구원은 “바이러스의 유전체에 대한 기존 연구 데이터가 충분치 않아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이미 연구가 이뤄진 일부 바이러스를 선별했다”며 “미래에 신종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사람에게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연구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추출한 RNA 염기서열은 130쌍의 같은 길이로 잘라 3만여개의 조각으로 만들었다. RNA 조각은 세포에 넣어 RNA 안정성과 단백질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지 확인했다.

확인 결과, 3만여개의 RNA 조각 중 16개가 안정화와 단백질 생산을 모두 늘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조각에 ‘K5′라는 이름을 붙이고 세부적인 특징을 확인했다.

K5는 한 가닥의 RNA를 유전체로 가진 에이치바이러스(aichivirus)에서 유래한 RNA 조각인 것으로 확인됐다. 에이치바이러스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으나 아주 약한 장염을 일으켜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종에서 바이러스의 중요한 생존 전략을 발견한 것이다.

K5는 단백질과 결합해 분해가 잘 일어나지 않는 ‘혼합꼬리’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IBS RNA 연구단은 앞서 2018년 RNA에 혼합꼬리가 존재하며, 안정화에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김 단장은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만 집중한 기존의 연구 접근 방식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성과”라며 “지금은 약한 바이러스라도 앞으로 강력한 바이러스로 변이가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바이러스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K5를 이용해 RNA 의약품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DNA나 RNA를 생체에 주입할 때 사용하는 운반체인 ‘바이러스 벡터’에 K5를 삽입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실험했다. K5가 삽입된 바이러스 벡터는 유전자 전달 효과가 높아졌고, RNA 백신에 적용했을 때 면역 기능이 더 오랜 시간 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단장은 “K5를 이용하면 RNA 백신과 유전자치료제의 안정성과 성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Cell,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3.06.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