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에는 ‘꿈의 컴퓨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양자역학에 기반을 둔 양자컴퓨터는 미시세계에서 통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물질이 여러 가지로 중첩된 상태로 존재할 수 없지만, 양자컴퓨터에서는 물질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기존 컴퓨터의 정보 단위인 비트는 0과 1, 두 가지로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는 0과 1이 동시에 나타난다. 예컨대 일반 컴퓨터가 2비트이면 정보는 00, 01, 10, 11 네 가지 중 하나지만, 양자컴퓨터가 2큐비트라면 네 가지 상태가 동시에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커지면 300큐비트일 때는 우주의 모든 원자 수보다 많은 상태를 처리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컴퓨터의 계산능력이 그만큼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진다는 의미다.
문제는 ‘노이즈’로 불리는 오류다. 양자컴퓨터가 ‘꿈의 컴퓨터’인 이유도 바로 이 오류 가능성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큐비트의 특성상 오류가 일어날 가능성도 큐비트가 많아질 수록 커진다. 아무리 계산 속도가 빨라도 오류가 일어난다면 컴퓨터라고 할 수 없다. 양자컴퓨터를 꿈의 컴퓨터라고 부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양자컴퓨터를 현실 세계에서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위한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구글과 IBM이 그 주인공이다. 구글은 지난 2월 양자컴퓨터의 오류를 정정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아직은 기초적인 수준이었지만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위한 중요한 마일스톤이었다.
구글에 이어 IBM은 오류를 정정하지 않고 완화하는 방법만으로 양자컴퓨터를 실제 시뮬레이션에 활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IBM 연구진이 지난 6월 1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은 양자 프로세서인 이글(Eagle)을 이용해 자성 물질의 동작을 계산하는데 성공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의 물리학자인 이징이 고안한 모델을 계산하는 과제였는데 너무나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 슈퍼컴퓨터로도 정확한 답을 계산할 수 없었다. 하지만 IBM 연구진이 고안한 양자 오류 완화 방식을 적용하자 순식간에 정확한 계산이 나왔다.
양자컴퓨터가 ‘꿈’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 실제로 우리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순간이었다.
특히 IBM의 이번 논문을 쓴 제1저자의 이름이 국내 과학기술계의 관심을 끌었다. 양자컴퓨터 분야의 깜짝 놀랄 만한 연구 성과의 첫 줄에 한국인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바로 IBM 연구소의 김영석 박사였다.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출신인 김 박사는 일리노이대 대학원을 거쳐 IBM 연구소에 입사해 양자컴퓨터를 연구하고 있다.
김 박사는 2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양자과학기술 행사인 퀀텀코리아 2023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조선비즈는 김 박사에게 직접 이번 논문의 의미와 앞으로 한국이 양자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들었다.
-양자 오류 완화라는 접근법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아직 안 된 이유는 오류 때문이다. 오류를 해결하는 게 양자컴퓨터의 가장 큰 과제인데, IBM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류를 정정하는 기술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아직은 미래의 일이다. 가야 할 길은 맞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셈이다. IBM도 양자 오류 정정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다른 방법이 없을 지 고민했고 그 결과물이 오류 완화다. 오류를 정정하기보다는 있는 상태로 그대로 계산을 한 뒤에 오류가 포함된 결과 자체를 수정하는 방식이다. 결국 양자 오류를 정정하는 방식으로 가야겠지만 그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그 중간에 갭을 오류 완화 방식으로 메워주려는 것이다.”
-오류 완화를 통해 양자컴퓨터의 상업적인 이용이 가능하다는 건가.
“인공지능(AI)은 과거의 문제를 푸는 기술이고, 양자컴퓨터는 미래의 문제를 푸는 기술이다. AI는 인류가 원래 하고 있던 걸 더 빠르게 풀어주는 기술이다. 반면에 양자컴퓨터는 인류가 그동안은 풀지 못했던 문제를 풀어주는 기술이다. AI와 양자컴퓨터의 범위가 다른 셈이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돼도 대부분의 사람은 기존의 전통적인 컴퓨터를 사용하고, AI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나 AI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된다. 우주의 나이에 버금가는 계산이 필요한 문제를 풀 때 양자컴퓨터가 필요하다. 바이오나 항공우주 같은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런 분야는 슈퍼 컴퓨터로도 정확한 계산이 쉽지 않은 경우다 많다.”
IBM은 양자컴퓨터의 상용화에 앞서 다양한 활용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여러 기업들과 협업하고 있다. IBM이 2017년에 만든 ‘IBM 퀀텀(IBM Quantum)’에는 국내외 180여개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성종합기술원, LG전자, 연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카이스트, KQC등이 IBM 퀀텀 네트워크에 참여 중이다.
-오류 정정이나 오류 완화나 아직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막대한 투자에 비해 양자컴퓨터 분야의 발전 속도가 더딘 게 아닌가.
“20년 전만 해도 연구실에서 가능성을 고민하던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단계는 분명하게 지나갔다. 이제는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유용한 문제를 풀 수 있는 단계까지 접어들었다. 이런 페이스로 나간다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더 진지하게 양자컴퓨터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투자와 관심도 많아지면서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라고 본다.”
-IBM은 양자컴퓨터에 가장 빨리 뛰어든 기업이다. 아직 돈이 되는 기술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가 뭔가.
“내 생각이 IBM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기에 IBM이 100년을 넘게 살아남았다고 본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뀌는데 IBM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그건 자신의 주력 사업을 과감하게 바꿨기 때문이라고 본다. IBM이 퍼스널 컴퓨터를 세계 최초로 만들고도 사업부를 매각한 것처럼 시대의 변화에 맞췄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변화를 예측하고 선점하는 게 중요한 데 양자컴퓨터에 대한 투자도 그런 맥락이다. IBM이 양자컴퓨터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고, 정부에서도 많은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IBM은 양자정보 이론을 처음 만든 찰스 베넷이 몸 담고 있는 곳으로 50여년에 걸쳐 양자컴퓨터를 연구하고 있다. 2016년 5월 세계 최초의 범용 양자컴퓨터를 발표했고, 2021년에는 이번 논문에 등장한 127큐비트의 이글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이후 433큐비트의 오스프리(Osprey)에 이어 올해는 1121큐비트의 콘도르(Condor)를 선보일 예정이다. 2025년에는 여러 칩을 연결해 확장된 단일 프로세서를 만드는 방식으로 4000큐비트 이상의 양자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한국 정부도 양자과학기술에 대해 최근 투자를 늘리고 있다. 연구의 최전선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조언을 한다면.
“일단은 정부의 지원이 중요하다. AI는 실제 서비스할 수 있는 제품을 바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돈도 벌 수 있다. 민간 투자가 들어올 여지가 큰 것이다. 그에 비해 양자는 정부의 지원과 전략적인 투자가 필수다. 미국 정부도 그랬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대학에서 관련 연구가 시작됐고, IBM도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양한 인력풀이다. 양자컴퓨터라고 해서 양자 역학을 전공한 사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초전도 양자컴퓨터는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걸 만들고 유지하는 기술자가 있어야 하고, 이 안에 시그널을 넣기 위해 전기공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양자라고 해서 양자를 전공한 사람만 필요한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협업을 해야 발전할 수 있다. 한국도 연구실 수준의 성과가 아니라 100큐비트 이상의 실질적인 양자 프로세서가 목표라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력이 협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양자과학기술이라고 하면 괴짜들의 연구를 생각하기 쉬운데, 협업을 강조한다.
“이번 연구 성과도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IBM이 관련 논문을 처음 낸 시점이 2017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옥스포드대학에서도 논문이 나왔다. 2021년에 26큐비트로 시연을 하면서 점검을 했고, 그 덕분에 올해 127큐비트로 연구를 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내가 IBM에 합류하기 전부터 진행된 연구 성과가 이제야 나온 것이다. 양자과학기술이 빛을 보려면 한 명이 아니라 하드웨어와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모두가 하나의 팀이 돼서 협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