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강원 양양군 설악해수욕장에서 낙뢰를 맞고 쓰러진 30대 남성이 치료를 받던 중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서핑을 하기 위해 해수욕장을 찾은 이 남성은 해변에서 쉬던 중 낙뢰를 맞았습니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은 숨을 거뒀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낙뢰는 11만7681회 발생했습니다. 월별로 보면 전체 낙뢰의 65.9%에 해당하는 7만7569회가 7~8월에 집중돼 있습니다. 낙뢰로 인한 안전사고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 시기를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낙뢰로 인한 인명사고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악천후에 야외활동을 피하는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반드시 야외활동을 해야 한다면 개방된 장소는 피하고 높은 나무 옆에 서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이외에도 낙뢰가 치는 상황에서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몇몇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모두 기억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신 낙뢰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흐르는지를 알면 안전사고를 막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안전한 휴가철을 방해하는 낙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주문노 한국전기연구원 전기기기연구본부 본부장과 함께 알아봤습니다.
◇공기 마찰로 쌓인 정전기, 지상에 떨어진다
낙뢰는 구름에 쌓여 있는 전기 에너지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전기 에너지가 모여 있는 구름을 뇌운(雷雲)이라고 부릅니다. 낙뢰로 인해 발생하는 불빛은 번개, 소리는 천둥이라고 합니다.
뇌운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정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정확히 같습니다. 지상에 있는 수증기가 열을 받으면 상승기류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이 과정에서 구름이 만들어지는데 구름의 하부에는 고온다습한 공기가, 상부에는 차가운 공기가 쌓이게 됩니다. 이렇게 다른 성질을 가진 두 공기는 서로 섞이면서 마찰이 발생합니다.
공기 사이의 마찰은 정전기를 만듭니다. 마치 풍선을 머리카락에 비벼 정전기가 쌓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얼굴 크기의 풍선에 쌓이는 정전기는 머리카락을 서게 만드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길이가 수㎞에 달하는 구름에는 막대한 양의 정전기가 쌓입니다. 이렇게 쌓인 정전기는 지면에 가까워지면서 낙뢰의 형태로 지상으로 떨어집니다.
정전기는 인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정전기가 쌓여 있는 문고리를 잡아 손가락이 따끔했던 경험은 다들 한번씩 겪었을 것입니다. 문고리의 정전기가 전류 형태로 손가락으로 흐르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반면 낙뢰의 전류는 수만A(암페어)에 이를 정도로 큰 만큼 화상과 쇼크를 일으킬 정도입니다.
◇'페러데이 케이지’ 효과로 자동차 대피 효율적
전류는 저항이 작은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낙뢰가 떨어질 때 대피하는 요령도 전류의 특징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낙뢰는 가장 높이 솟아 있는 곳에 떨어집니다. 뇌운과 지면 사이는 공기가 거의 통하지 않는 공기로 차 있는 만큼 가장 짧은 거리로 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도시라면 고층 건물이고, 개방된 곳이라면 큰 나무가 일반적입니다. 해수욕장에서 낙뢰 사고가 일어나는 것도 주변에 높은 건물이나 큰 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나무 옆에 있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나무에 떨어진 낙뢰의 전류가 상대적으로 저항이 낮은 사람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낙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나무에서 10m 이상 떨어져 있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전류의 특징을 활용하면 낙뢰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전기화학자였던 마이클 페러데이는 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이 외부의 전류를 막아주는 효과를 발견했습니다. 이를 ‘페러데이 케이지’ 효과라고 부릅니다. 철제 새장(케이지)이 외부의 전류로부터 새를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때로는 자동차가 페러데이 케이지 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낙뢰에 맞으면 워낙 많은 전류가 흐르는 만큼 전자기기에 접촉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낙뢰 발생시 행동 요령을 숙지할 것을 권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낙뢰 피해 방지 기술 발전에도 지구온난화가 변수
미국 기상청에 따르면 매년 낙뢰에 인한 인프라 장애로 연간 10억달러(약 1조 27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합니다. 낙뢰는 전류뿐 아니라 강력한 전자기파(EMP)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전자장비가 고장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전자장비를 공격하는 EMP 폭탄처럼 말입니다. 이 때문에 낙뢰로 인한 재산 피해를 막는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스위스 연구진은 올해 1월 강력한 레이저를 이용해 낙뢰의 경로를 바꾸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속도 만큼이나 앞으로 낙뢰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지난 2월 북극에서는 뇌우가 55분간 관측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북극에서 관찰된 뇌우 중 가장 오래 지속된 사례입니다. 극지방에서는 뇌우가 만들어지는 것이 드문데 기온이 오르면서 수증기 발생량이 증가한 것이 그 원인으로 파악됩니다. 지난해 인도에서는 하루만에 20명이 낙뢰에 맞아 숨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낙뢰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자연 앞에서는 힘을 쓰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입는 피해는 막을 수 있는 기술도 없는 상황입니다. 낙뢰는 홍수,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입니다. 철저한 대비와 준비는 물론 자연에 대한 이해만이 유일한 대비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