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만난 김봉훈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 교수. 앞에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와 네이처를 비롯해 그의 연구팀이 논문을 낸 저명한 학술지 표지들이 액자에 담겨 있다. /대구=최정석 기자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학술지의 양대 산맥이다. 많은 과학자가 이 두 학술지에 자신의 논문을 싣는 걸 목표로 하지만 평생 한 편도 싣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김봉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 교수는 이 어렵다는 일을 4년 사이 세 차례나 해냈다.

더 놀라운 건 김 교수가 사이언스, 네이처에 발표한 3편의 논문의 연구 분야가 전부 다르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사이언스에 걸린 2017년 논문은 나노미터(㎚) 단위의 초미세 반도체 입자인 ‘QLED’에 대한 연구였다. 2019년 사이언스 논문은 피부 자극 없이 입을 수 있는(웨어러블) 전자 소자, 2021년 네이처 논문은 민들레 씨앗 형태로 만든 나노로봇을 개발한 내용을 담았다. 화학공학, 로봇공학, 컴퓨터공학을 비롯한 여러 방면에서 두루두루 성과를 낸 셈이다.

1980년에 태어난 젊은 연구자인 그는 서로 다른 분야를 이리저리 옮기며 연구하는 자신의 ‘괴짜 행보’를 못마땅하게 보는 과학계 시선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 집중도가 떨어지고 한 가지 분야에 대한 내공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래도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고 했다. 다가올 미래의 과학기술 연구 트렌드는 서로 다른 분야가 한 데 어우러진 ‘융복합 연구’가 될 거란 믿음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천재라 한들 사람 한 명이 이룰 수 있는 성과에는 한계가 있다”며 “그 벽을 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분야와 그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연구 신념은 그의 삶에도 녹아있었다. 대학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그는 박사 시절 웨어러블 소자와 마이크로 로봇 연구에 관심이 생겨 해당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존 로저스 교수 연구실로 교환학생을 가고자 했다. 처음에 로저스 교수는 연구 분야가 달랐던 김 교수를 교환학생으로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김 교수는 ‘서로 다른 것을 합쳐 혁신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건 미국의 건국이념이 아니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결국 로저스 교수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김 교수는 교환학생이 끝나고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딴 뒤 로저스 교수의 부름을 다시 받고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2019년 숭실대 유기신소재‧파이버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로봇공학이 미래 핵심 연구 분야가 될 거란 확신을 갖고 2022년 DGIST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는 “건학 이념부터가 ‘융복합 대학’인 DGIST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4일 대구 달성군 DGIST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지난달 4일 대구 달성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연구실에서 김봉훈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 교수가 인터뷰를 진행 중이다. /최정석 기자

-사이언스·네이처 논문 3편이 전부 분야가 다르다.

“2017년 사이언스 논문은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는 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가 주제였다. 일반적인 디스플레이는 빛을 밖으로 내뿜는 것만 할 수 있는데 당시 내가 논문에서 제안한 디스플레이는 빛 방출과 빛 감지가 모두 가능한 형태였다. 2019년 사이언스 논문은 몸이 아픈 신생아를 위한 웨어러블 사물인터넷 소자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웨어러블 소자는 보통 성인을 대상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피부가 덜 자라 민감한 아기들에게 쓰면 자극이 심해 염증이 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일이 없도록 피부를 자극하지 않는 소자를 연구·개발해 논문을 썼다. 2021년 네이처 논문에는 바람에 잘 퍼지는 민들레 씨앗 형태를 모방해 만든 3차원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한 내용이 들어갔다.”

-이렇게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를 수행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성격 때문이다. 취미가 됐든 뭐가 됐든 어느 한 가지를 오래 붙잡고 늘어지는 성격이 아니다. 쉽게 말해 금방 싫증 내는 타입이다. 연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공부를 하면 그 분야 1인자는 아니어도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그림은 잡힌다. 그 단계까지 오면 매너리즘에 빠져 스스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성향 탓에 박사 학위를 딴 후 포닥(박사후연구원) 때 분야를 옮기면서 고생을 좀 했다. 보통 포닥 과정은 2~3년인데 나는 6년을 했다.”

-유별난 대학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평범하진 않았다. KAIST 신소재공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신소재 관련 연구를 하던 중 웨어러블 기기 쪽에 관심이 생겨 교환학생을 가려 했다. 해당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였던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존 로저스 교수 연구실에 가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내가 하는 신소재 관련 연구는 자신들과 접점이 별로 없는데 왜 굳이 여기 오려고 하느냐는 거였다. 그런데도 너무 가고 싶었기에 로저스 교수한테 편지를 썼다. 너희 미국의 건국 이념이 융합과 혁신 아니냐. 나는 지금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있고 열정으로 가득하다. 이런 식으로 써서 보냈더니 결국 받아주더라.”

-그때 했던 연구가 사이언스 논문의 기틀이 된 건가.

“그렇다. 2019년 논문은 포닥때 하던 연구를 기반으로 한 결과물이다. 로저스 교수 밑에서 교환학생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 박사 학위를 땄다. 교환학생이 끝날 쯤에 로저스 교수가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면 다시 여기 와서 포닥을 할 생각 없냐고 먼저 권유했고 당연히 받아들였다.”

김봉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 교수와 존 로저스 미국 노스웨스턴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김봉훈 교수 제공

-2021년 네이처 논문은 웨어러블 기기가 아니라 마이크로 로봇으로 또 다른 분야인데.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이 대한민국 주력 연구·산업 분야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면서 그 쪽 분야에도 손을 뻗게 됐다. 카이스트 교수가 창업한 벤처 레인보우 로보틱스는 최근 삼성 쪽이 투자를 결정하면서 기업가치가 1조원을 넘기도 했다. HD현대중공업도 대구에 있는 로봇 산단에 상당한 투자를 넣고 있다. 또 바이오 분야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좁은 혈관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마이크로 로봇이 개발되면 또 다른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가능성을 크게 봤다.”

-2019년 숭실대 교수 부임 후 3년 만에 DGIST로 자리를 옮긴 것도 그 영향인가.

“그렇다. 숭실대에서는 유기신소재파이버공학과 소속이었다. 그러나 원래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다보니 신소재가 아닌 다른 공학 분야에 관심이 더 커졌다. 그러던 차에 마침 DGIST 교원 모집 공고가 떠서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의 공개채용에 지원 후 합격했다.”

-로봇 쪽 R&D 인프라를 갖춘 지역이 많을 텐데 굳이 대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로봇 산업은 현재 대구가 중점적으로 육성하려는 분야다. 국가차원에서 3000억원 정도 돈을 들여 로봇 테스트 필드를 대구에 구축하려는 중이고 로봇 산업에서 국내 최대 기업인 현대로보틱스 본사도 대구에 있다. 또 DGIST 중심으로 로봇 관련 국가연구소가 곳곳에 설치돼있다. 국내에서 로봇 연구개발(R&D)을 하고자 한다면 대구가 최적의 장소라고 본다. 또 DGIST의 건학 이념부터가 ‘융복합 대학’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모로 내게 딱 맞는 곳이라 생각했다.”

-여러 분야를 섭렵하며 높은 수준의 논문을 쓰는 것도 결국 융복합 연구라는 생각이 드는데.

“단 한 명의 천재가 전에 없던 성과를 내는 건 점점 어려워질 거라고 본다. 제약 분야에서도 화학 물질을 합성해 새로운 약을 만드는 게 한계에 다다르자 바이오 쪽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 않나. 앞선 위대한 연구자들 덕분에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혼자서 새로운 걸 개척하려 애쓰기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두루 공부한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야만 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고 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논문을 낸 게 결코 혼자 한 일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연구실 문을 활짝 열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김봉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교수는

1998~2005년 고려대 재료금속공학부 학사

2005~2007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 석사

2007~2012년 KAIST 신소재공학과 박사

2013~2016년 미국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UIUC) 신소재공학과 박사후연구원

2016~2019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신소재공학과 박사후연구원

2019~2022년 숭실대 유기신소재∙파이버공학과 조교수

2022년~현재 DGIST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 조교수

주요 연구 성과 및 수상 실적

2017년 Science, DOI: 10.1126/science.aal2038

2019년 Science, DOI: 10.1126/science.aau0780

2021년 Nature, DOI: 10.1038/s41586-021-03847-y

2022년 Nature Electronics, DOI: 10.1038/s41928-022-00788-w

2022년 국가연구개발 최우수 연구성과 선정

2022년 국가연구시설장비 관리∙활용 장관표창

2023년 국가연구개발 성과평가 대통령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