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이 한국형 원전 수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소송을 합의로 풀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양측의 중재를 하겠다고 나선 데 이어 황 사장이 합의라는 해법을 제시하면서 소송전이 장기화되지 않고 조기에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황 사장은 18일 오후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한국원자력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특별강연을 한 뒤 기자와 만나 “(웨스팅하우스와의) 소송이 마무리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마 합의를 볼 것 같다”며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합의를 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원전업체인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한수원이 체코에 수출하려는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이 미국 기술에 기반을 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수원은 1970년대 원전을 처음 지을 당시 기술적인 도움은 받았지만, APR1400은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는 입장이다.
소송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이라는 국정과제 달성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패트릭 프래그먼 웨스팅하우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폴란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한국 원전이 폴란드에 지어질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 사장은 프래그먼 CEO의 말에 대해 “세상에 흑백으로 딱딱 100% 나뉘는 건 없다. 결국엔 협상이 잘 될 것으로 본다”며 “합의 보는 걸로 끝이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사장은 이달 말에 부산에서 한국형 소형모듈원자로(SMR)인 혁신형 SMR(i-SMR)을 기반으로 한 탄소중립도시인 ‘스마트넷제로시티’ 초기 모델을 공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연말에 아랍에미리트를 시작으로 한국형 SMR에 대한 마케팅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SMR은 발전용량이 300메가와트(㎿) 수준인 소형 원자력발전소로 기존 원전보다 훨씬 좁은 땅에서 비슷한 수준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다. 현재 이 기술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 세계 선진국들이 경쟁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2028년까지 399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한국형 SMR을 개발할 계획이다.
아직 한국형 SMR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황 사장은 개발이 완료된 뒤에 마케팅에 나서면 늦다며 한국형 SMR 수출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스케일파워를 비롯해 글로벌 SMR 시장에서 앞서가고 있는 기업들 중 기술 개발을 마무리하고 실증로를 지어 보여준 곳은 한 곳도 없다”며 “그럼에도 이들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공격적 마케팅을 동시에 진행한 덕에 투자자와 전력 수요자를 모두 모은 상태”라고 말했다.
황 사장은 “5월 마지막주 부산에서 열리는 기후산업국제박람회에서 혁신형 SMR 기반의 스마트넷제로시티 초기 모델을 첫 공개할 예정”이라며 “이어 초겨울에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기후변화당사국 28차 총회에서 한국형 SMR 글로벌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