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강원도 동해시에서 북동쪽으로 52㎞ 떨어진 해역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역은 지난달 23일 이후 규모 2.0 이상 지진이 13번 일어난 곳이다. 같은 기간 한반도 인근에서 발생한 44회의 지진 중 3분의 1이 한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강원도와 동해안 일대의 지진 위험이 커졌다고 지적하지만, 정작 이 일대의 지하단층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반토막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과학기술계와 기상청 등에 따르면 강원·동해안 지역의 지하단층과 지진 특성을 조사하는 연구 사업의 예산이 50% 수준으로 삭감됐다. 최근 동해안 일대에서 지진 발생이 늘고 있지만 정작 지진 예측에 중요한 지하단층 조사 예산은 줄어든 것이다.
정부는 2016년 경주 지진과 2018년 포항지진 이후 국내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특성을 파악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반도 단층 연구를 시작했다. 단층은 지질 활동으로 지층이 어긋나 있는 구조로, 이곳에 축적된 힘이 지진으로 이어진다. 단층의 구조와 특성을 미리 파악하면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전파 속도 같은 특성을 예측할 수 있어, 단층은 지진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그동안 단층 조사는 여러 기관이 나눠서 맡았다. 행정안전부는 육상단층, 해양수산부는 해양단층 연구를 맡았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 지진의 원인으로 꼽히는 지하단층 조사는 기상청이 맡았다. 기상청은 2018년부터 ‘한반도 지하단층·속도 구조 통합 모델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상청은 한반도를 여러 지역으로 나눠 5단계에 걸쳐 지하단층을 조사하기로 했다. 수도권과 경상권을 대상으로 1단계 사업은 연 5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2021년 마무리됐다. 문제는 강원도와 동해안 일대의 지하단층을 조사하는 2단계 사업에서 발생했다. 지난해부터 강원·동해안 일대에 대한 2단계 사업이 시작됐지만, 연구 첫 해인 지난해 예산이 21억5000만원으로 삭감된 것이다. 올해는 이보다 늘어난 32억2000만원이 배정됐지만 역시나 1단계 사업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하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하단층 연구는 지역과 관계 없이 일정한 수준의 예산이 필요한데 2단계 사업은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실제로는 상시적인 관측과 장비·인력을 감안하면 1단계 사업보다 많은 예산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오히려 삭감됐다”고 설명했다.
과학계에서는 지하단층 연구 사업의 예산 삭감 이유가 지역·경제적 요소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구와 인프라가 집중된 수도권·경상권과 달리 강원·동해안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중요성이 떨어지는 점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장성준 강원대 지질·지구물리학부 교수는 “1단계 사업의 대상이었던 경상도 지역에는 산업단지와 원자력발전소 같은 주요 시설이 밀집해 실제로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과거에는 지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동해에서 최근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지진의 발생 가능성은 어느 지역이 더 크다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진의 규모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지하단층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 대부분은 지하단층에서 시작된다. 100억원 규모의 재산 피해를 준 경주지진과 580억원 규모의 피해가 있었던 포항지진 모두 지하단층에서 시작됐다. 장 교수는 “지하단층 조사는 중장기적인 연구가 필수적이라 한 번의 연구도 내실 있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지진 연구는 국민 안전과 연관성이 큰 만큼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