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원전 전경. /조선DB

“원전 주변에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를 3초 만에 탐지하는지 1초 만에 탐지하는지는 안전 측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진 탐지에서 원자로 운전 정지까지 걸리는 속도가 빠를수록 원자로 속 연료봉이 손상될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일 부산 기장군의 고리 원자력발전소(원전)에서 만난 이광훈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전본부장은 “2027년까지 원전과 그 주변 집중감시구역에서 발생한 지진을 1.4초 안에 탐지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근 동해 일대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계속되면서 원전의 안전 문제에도 관심이 커지자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수력원자력이 기자들을 불러 직접 고리 원전의 지진대응시스템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원안위와 기상청은 지난해 3월 업무협약(MOU)을 맺고 전국의 지진 관측망을 확충하고 있다. 2027년까지 집중감시구역에서는 1.4초, 일반감시구역에서는 2.7초만에 지진을 탐지할 수 있도록 지진관측망을 늘릴 계획이다. 특히 전국 원전에만 관측망 220개소를 더 설치해 ‘초(秒) 단위 대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집중감시구역이란 기상청이 대규모 지진 발생 시 큰 피해가 예상되는 곳들을 특별 관리하기 위해 정한 곳이다. 단층지역, 인구밀집지역, 원전지역이 집중감시구역에 들어가며 이는 한국 면적의 23%를 차지한다.

지진관측망을 확충할 필요성은 최근 들어 더욱 커진 상태다. 고리원전과 경북 경주 월성원전 주변에 활성단층이 5개나 있다는 사실이 지난 3월 확인됐기 때문이다. 활성단층은 50만년 이내에 2차례 이상, 또는 3만5000년 이내에 1차례 이상 움직였으며 지금도 활동 중인 단층이다. 전문가들은 이곳에서 크게는 규모 7 수준의 지진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맨 오른쪽부터) 유희동 기상청장과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위원장이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2호기에 설치된 지진관측기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원안위 제공

◇규모 6.5~7 수준 지진 발생 시 원자로 자동정지

이날 고리원전에서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원전 지진대응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원전 부지 내부에는 지진 감시 계측기가 총 6개 설치돼있다. 원자로 건물에 3개, 보조 건물에 2개, 원전 부지 내 지표면에 1개 설치돼있다. 이들은 A부터 F까지 알파벳을 붙여 구분하는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표준 음성 기호에 따라 알파, 브라보, 찰리와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6개 계측기 중 지진 대응 방향을 정하는 건 원전 부지 내 지표면에 설치한 ‘찰리’다. 찰리는 원전 부지 한 켠에 있는 잔디밭에 설치돼 있었다. 외부 충격에 약한 계측기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작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두른 뒤 스테인리스 지붕을 덮어놨다.

찰리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동서 방향(x축), 남북 방향(y축), 상하 방향(z축)으로 발생하는 ‘지반가속도’를 측정한다. 지반가속도란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면서 지반에 전달되는 가속도다. 지반가속도가 0.1g(지진 규모 약 6) 이상이면 원전 전체 설비를 제어하는 ‘주제어실’에서 원자로를 수동으로 정지한다.

지반가속도가 0.18g(지진 규모 약 6.5) 이상이면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된다. 신고리 3호기와 같은 최신 원전(APR-1400)은 내진 설계가 이전 세대 원전보다 더 잘 돼있어 지반가속도가 0.27g(지진 규모 약 7) 이상일 때만 자동 정지된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9 지진 당시 찰리가 계측한 지반가속도는 0.098g였다. 당시 고리 원전은 운전을 정지하지 않았지만 월성 원전은 1~4호기가 정밀안전점검을 위해 수동정지했다.

지난 12일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위원장(왼쪽)과 유희동 기상청장이 부산 기장군 고리 2호기 주제어실에 설치된 지진 계측 컴퓨터를 보고있다. /원안위 제공

◇주제어실 컴퓨터에서 지반가속도 실시간 측정

찰리가 계측한 지반가속도는 원전 설비 전체를 통제하는 ‘주제어실’로 실시간 전달된다. 이날 고리 원전 2호기 주제어실 내부에 설치된 지진 계측 컴퓨터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주제어실로 들어서자 옅은 연두색 기기에 각종 버튼과 레버, 화면들이 촘촘하게 배열된 모습이 보였다. 옛날 SF 영화가 묘사하는 우주선 조종부를 보는듯했다. 버튼과 레버에는 ‘조작 금지’라 쓰여있는 빨간색 종이가 곳곳에 꼽혀있었다. 이날은 정기적인 계획예방정비가 진행 중이었기에 원전이 정상 가동되지 않고 있었다.

주제어실 입구 오른편 벽에는 빨간색 사이렌과 주황색 사이렌이 달려있었다. 주황색은 지반가속도가 0.1g 이상일 때 울리는 경보 사이렌, 빨간색은 0.2g 이상일 때 울리는 OBE(운전기준지진) 사이렌이었다.

이 사이렌이 울릴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기가 지진 계측 컴퓨터다. 주제어실 오른편 통로로 들어서자 바닥부터 천장까지 하얀색으로 돼있는 좁은 길이 나왔다. 주제어실 직원이 오른쪽 벽면에 달린 문을 열자 지진 계측 컴퓨터가 검은 바탕에 노란색 파형으로 실시간 지반가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날 지반가속도는 -0.0002g였다. 음수가 찍힌 이유는 동서남북상하 중 어느 쪽으로 진동할 때 지반가속도를 측정했느냐에 따라 정방향(+)과 부방향(-)로 측정값이 나뉘기 때문이다. 동, 북, 상이 정방향이고 서, 남, 하가 부방향이다.

신월성 1호기의 원자로 내부 모습.

◇연료봉 분리하고 핵분열 멈춰 방사능 유출 가능성 최소화

원자로가 정지되면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원자로 속 격납고 안에 매달려있던 연료봉이 분리된다. 평상시 연료봉은 전기로 만든 자력을 통해 격납고 상단에 붙들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전기가 끊기면 격납고 상단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후에는 핵분열이 멈추면서 원자로가 지진으로 손상을 입어도 방사능이 거의 유출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은 지진이 원전에 미칠 영향이 커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연료봉을 분리하는 게 안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임종윤 고리원전지역사무소장은 “가능성은 낮지만 규모 7을 넘어서는 수준의 강진이 발생하면 땅이 크게 흔들리면서 원전을 구성하는 각종 장치들이 손상을 입을 수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연료봉 분리와 핵분열 정지가 늦게 이뤄지면 큰일이 생기기 때문에 지진을 단 1초라도 빨리 감지하는 게 원자력 안전 분야에서는 너무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