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배 한국과학영재학교장이 지난달 20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KSA

부산 부산진구 백양산 초입에는 한국 과학기술계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모여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영재학교인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일찌감치 과학영재로 인정받은 학생들이 전국에서 모인다. 학교 안에 들어서면 수리정보학부와 물리지구학부, 화학생물학부, 인문예술학부 네 개 학부로 나눠서 자신들의 연구 분야를 놓고 토론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한국과학영재학교 한편에는 ‘노벨공원’이 있다. 졸업생 중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흉상을 제작해 공원에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학교엔 전자현미경과 3D프린터, 천체망원경 등 물리·화학·생물 분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장비들이 마련됐다. 영재학교 교사와 KAIST 교수들의 지도를 받는 학생들은 재학 중 논문을 쓰고, 심지어 특허를 내기도 한다.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까. 지난달 20일 학교에서 만난 최종배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장은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처럼 과학만 알고 사회에 공헌할 줄 아는 ‘괴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취임 초부터 괴짜를 찾겠다는 최 교장의 교육 철학은 2년 새 더 확고해졌다.

지난달 20일 오후 2시쯤 한국과학영재학교 화학생물학부 학생들이 연구 프로젝트와 관련해 논의하는 모습. /송복규 기자

최 교장은 학생 선발 방식부터 바꿨다. 지필평가 없이 2~3시간의 구술·면접평가로 학생을 선발하는 ‘장영실 전형’을 시행한 것이다. 조선비즈는 4년 임기의 전환점을 맞이한 최 교장을 만나 과학 영재교육의 명암과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교장으로 취임한 지 2년이 지났다. 원래는 과기정통부 관료였는데, 다른 점이 있나.

“차이가 너무 크다. 관료는 큰 정책을 세우고 의견을 수렴한다. 반면 학교는 완전한 현장이다. 어떤 제도를 실행하면 바로바로 바뀌는 모습이 보인다. 좋은 제도를 만들면 학생들이 좋아하는 게 보이는데, 그만큼 잘못 정책을 수립하면 폐해도 말할 수 없어서 조심스럽다.”

–취임 초 ‘괴짜’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교육 철학은 현재도 유지 중인가.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왜 교육부 산하가 아니고 과기정통부 소속의 유일한 학교인지, 입학한 학생들은 정말 영재인지, 교육자가 아니다 보니 근본적인 질문부터 했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달라야 한다고 봤다. 일반적인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 중에도 좋은 인재가 있을 것이다. 그런 학생을 우리가 찾아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명 ‘괴짜’들이다. 괴짜는 일반적인 영재학교에 들어가지 못한다. 모든 분야에서 다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데, 괴짜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한두 가지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영실 전형’을 시작한 건가.

“괴짜를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지필평가 대신 구술·면접을 세 시간 정도 본다. 모든 과목을 다 잘하고, 선행 학습을 잘 한 학생만 영재학교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실 다른 교사들은 반대했다. 모든 분야를 잘하면 모든 과목을 잘 따라가는데, 한 분야만 잘하면 가르치기 어렵다는 거다. 그래도 제대로 된 영재교육을 위해 밀어붙였다.”

최 교장이 야심 차게 추진한 장영실 전형은 한국과학영재학교 정원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전망이다. 현재는 모집인원 120명 중 20명 내외가 장영실 전형으로 들어오지만, 최 교장은 앞으로 6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영재학교가 진정한 과학영재를 키워내기 위해선 과학밖에 모르는 학생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과학기술계 인재양성의 요람인 영재학교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여전히 인력이 부족하다는 곡소리가 나온다. 특히 교육부 산하 영재학교 7곳은 의약학 계열로 진학하기 위해 중도이탈하는 학생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영재학교도 연구중심대학인 과학기술원 대신 서울대 같은 종합대학으로 진학하는 비율이 한때 40% 가까이 차지했다.

최종배 한국과학영재학교장이 지난달 20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KSA

–취임 초 한국과학영재학교의 KAIST 진학률이 60% 정도였다. 진학률을 높이겠다고 밝혔는데, 현재는 개선됐나.

“사실 KAIST 진학을 강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때 KAIST 아니면 못 갈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발부터 신경 써야 진학률이 높아지지 어느 날 갑자기 강제한다고 높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작년보다 작년 진학률이 좋았고, 작년보다 올해가 좋을 거라고 본다. 궁극적으로는 진학률이 80%까지는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

–연구 현장에서 인재양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일반적으로 똑똑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에서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근데 미래가 있나. 나는 미래가 잘 안 보인다. 대부분 연구자가 공부도 잘하고 연구도 많이 하는데, 연구비 따느라고 허덕인다. 연구자의 생계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반대로 의학계는 안정적이다. 연구자들은 머리로 연구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연구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오래 앉아서 미치도록 고민하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국가에서 ‘묻지마 투자’를 해줘야 한다.”

–영재교육이 사교육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장영실 전형을 도입하기 전에 시험 문제를 정답이 없는 문제로 내라고 했다.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이렇게 풀면 될 것 같은데’ 정도의 답이 나오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어떤 학생은 물리적으로, 어떤 학생은 화학적으로 접근해서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실수하지 않고 정답 찾아가듯이 공부하는 학생은 영재학교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문제를 내더라도 준비는 한다. 하지만 정답 없는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야 한다면 사교육 시장도 따라오기 쉽지 않을 거다.”

한국과학영재학교 1기 학생이 입학한 2003년 이후 올해 20주년을 맞는다. 한국 영재교육 역사의 현장인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새로운 20년을 준비하고 있다. 최 교장은 올해 9월 2040년까지의 발전상을 담은 비전 선포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올해 과기정통부에서 ‘과학영재 발굴·육성 전략’이 발표된 만큼, 한 단계 점프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한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20주년을 맞이해 발전상과 비전을 수립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2년째 운영되고 있는데, 올해 9월 비전 선포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비전 선포식은 교육 방향을 담아서 획기적으로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획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올해 5월에는 한국과학영재학교 1기를 대상으로 ‘홈커밍데이’를 열고, 재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4년 임기의 절반이 지났다. 남은 2년 계획은 무엇인가.

“오자마자 입시 전형을 많이 살폈다. 문제는 학생들이 입학한 뒤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영재학교에서는 1년에 한 명 정도 휴학하는데, 우리 학교는 5~10명 사이다. 공부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아야 할 공부와 자신이 재미있어서 둘러보는 공부가 있다. 그래서 1학년은 고등학교 과정을 ‘패스·페일’ 방식으로 끝내고, 2·3학년에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남은 임기 동안 학생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걸 정착시켜야 한다. 남은 기간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