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가고 꽃이 만개하면 밤거리에 사람들이 몰린다. 덩달아 나방도 밤나들이에 나선다. 곳곳에 환하게 전등이 켜지면 온갖 날벌레가 다 몰려든다. 왜 곤충은 전등만 보면 정신없이 달려들까.
초고속 카메라가 전등에 달려드는 곤충의 비밀을 밝혀냈다. 인공조명은 직접 곤충을 유인하는 것이 아니라, 곤충의 자세 제어 체계를 교란한다는 것이다. 나방은 비행 장치가 망가져 전등으로 돌진한다는 말이다.
최근 인공조명이 늘면서 곤충이 급감해 우려를 낳았다. 전등에 몰려드는 곤충의 비밀이 밝혀지면 광공해(光公害) 피해를 줄일 방법도 찾을 수 있다. 이미 인공조명의 파장을 조절하거나 조명 방향을 조절하는 식의 대안이 나왔다.
◇상하 구분하는 자세제어가 교란돼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화이-티 린(Huai-Ti Lin) 교수와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의 제이미 시어볼드(Jamie Theobald) 교수 연구진은 지난 12일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비행 도중 아래위를 구분하는 반사 작용 때문에 곤충이 야간 인공조명에 몰려든다”고 밝혔다.
곤충이 전등에 몰려드는 것을 두고 여러 설명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이론은 밤에 달빛을 보고 길을 잡는 곤충이 인공조명을 달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낮에만 날아다니는 곤충도 전등 불빛에 몰려든다는 사실은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곤충이 조명의 열에 끌리는 것도 아니었다. 곤충이 닫힌 공간에서 전등 불빛이 나오는 곳을 빈틈이라고 보고 돌진한다는 설명도 있지만, 곤충이 전등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야외에서 고속 카메라로 전등 불빛에 몰려드는 곤충들을 촬영했다. 동시에 모션 캡처(motion capture, 동작 인식) 기술로 잠자리나 나방의 정확한 비행 동작을 분석했다. 전등에 몰려드는 곤충은 인공조명의 위치에 따라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보였다.
먼저 곤충이 전등 위로 날아가면 종종 몸을 뒤집어 거꾸로 비행했다. 이로 인해 곤충이 전등 쪽으로 급강하했다. 전등 밑에 있는 곤충은 거꾸로 조명을 등에 지고 급상승했다. 그러다가 양력을 잃고 속도가 떨어지는 실속(失速) 현상이 일어났다. 전등 옆에 있으면 달이 지구를 돌 듯 곤충이 전등을 선회했다. 이런 행동들이 마치 곤충이 전등에 이끌려 몰려든 듯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세 가지 행동 모두 곤충이 자신의 등을 전등 쪽에 두려는 반사 행동 때문에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부 어류에서도 나타나는 행동으로, 밝게 빛나는 물체는 위에 있기 마련이라는 전제로 자세를 똑바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연구진은 빛에 대한 반사 행동을 입력하고 컴퓨터에서 실험했다. 가상의 곤충들도 야외에서 관찰한 것과 같이 전등을 향해 몸을 뒤집거나 속도를 잃고, 궤도 선회 비행을 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앞서 2018년 스웨덴 룬드대의 로만 굴라드(Roman Goulard) 교수 연구진이 ‘바이올로지 레터’에 발표한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스웨덴 연구진은 조명이 밑에 있으면 꽃등에가 더 많이 충돌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서 곤충이 전등 위를 비행하다가 몸을 뒤집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곤충들이 전등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몸 윗부분이 밤이든 낮이든 항상 위를 향하게 하다 보니 전등 주변을 맴돈다는 것을 고속 카메라 촬영을 통해서 밝혀낸 것”이라며 “지금까지 어두운 곳에서 작은 곤충의 움직음을 고속으로 촬영을 할 수가 없었는데, 논문 저자들이 이를 처음 성공해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광공해 문제 해결할 방법 찾을 수도
최근 광공해가 심해지면서 곤충도 위험에 빠지고 있다. 독일 지구과학연구센터가 지난 1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에서 매년 밤하늘이 9.6%씩 밝아졌다. 밤이 환해질수록 곤충의 번식 활동에 문제가 생긴다. 암컷은 주로 어두운 곳에서 알을 낳는데 밤이 밝아지면 산란 행동이 교란되면서 개체수가 줄어든다.
가로등 불빛에 모여든 나방은 박쥐 같은 천적에도 그대로 노출된다. 뉴캐슬대에 따르면 영국에서 나방 개체수가 1970년대 이래 3분의 1이 줄었다. 또 반딧불이는 빛을 발산해 짝을 찾는데 그보다 더 밝은 전등이 있으면 힘들어진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2001년 이후 반딧불이의 수가 4분의 3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번 연구진은 인공조명의 빛을 줄이고 가능하면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간접 조명을 하면 곤충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조명을 아래로 비추면 전등이 밑에 있듯 곤충이 그쪽으로 곤두박질했지만, 위로 비추면 전등이 위에 있듯 정상적으로 비행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인공조명의 색도 바꿀 필요가 있다. 영국 생태·수문학센터와 뉴캐슬대 연구진은 지난 2021년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친환경으로 알려진 발광다이오드(LED) 가로등이 곤충들에게는 기존의 나트륨 전등보다 더욱 심한 빛 공해를 유발한다고 발표했다. 곤충이 나트륨등의 노란색보다 LED의 흰색에 더 많이 교란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도로변 부지 26곳에서 가로등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 모이는 나방 애벌레의 수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모든 장소에서 가로등이 켜진 곳에서 애벌레가 절반까지 줄었다. 특히 나트륨등이 있는 곳은 애벌레의 개체수가 가로등이 없는 곳보다 41% 적었으나, LED 가로등은 52% 더 적었다.
이는 LED에서 나오는 빛이 곤충들이 주로 보는 파란색 계열의 단파장이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뉴캐슬대 연구진은 파란색 빛이 덜한 LED로 바꾸거나 사람이 지나갈 때만 켜지는 동작 감응 기능을 갖춘 스마트 가로등을 도입하면 광공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참고자료
bio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4.11.536486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bq7781
Insects(2021), DOI: https://doi.org/10.3390/insects12080734
Science Advances(2021), DOI: https://doi.org/10.1126/sciadv.abi8322
Biology Letters(2018), DOI: https://doi.org/10.1098/rsbl.2018.0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