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비롯해 대다수 동물의 신경계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흔히 뉴런(신경세포)과 이들을 연결하는 조직인 시냅스를 꼽는다. 뉴런이 외부에서 입력된 정보를 저장한다면 시냅스는 그 정보를 다른 뉴런으로 전달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뇌가 없는 동물도 뉴런과 시냅스가 온 몸에 퍼져있어 몸을 움직인다.
영국과 노르웨이 과학자들이 시냅스 없이 뉴런끼리 직접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식으로 신경계를 작동시키는 동물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일부 진화생물학자들이 지구 최초의 동물이라 주장하는 바닷속 동물 ‘빗해파리(comb jelly)’가 주인공이다.
영국 옥스퍼드 브룩스대 생물의학과의 마이크 키틀만(Maike Kittelmann) 교수와 노르웨이 베르겐대의 파블 버크하트(Pawel Burkhardt) 박사 연구진은 지난 2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빗해파리 신경망 분석 결과가 신경계 진화 과정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준다”고 발표했다.
빗해파리는 표면에 달린 털 형태의 섬모를 움직여 바다 속을 헤엄친다. 섬모가 난 모습이 머리빗과 닮았다 해서 빗해파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빛이 섬모를 통과하면 산란한다. 이 때문에 빗해파리는 몸이 무지개색으로 빛난다.
버크하트 박사 연구팀은 초고속투과전자현미경을 이용해 빗해파리의 신경계가 어떻게 이뤄져있는지 분석했다. 신경계는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를 분석하려면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반응을 포착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초고속투과전자현미경은 광전자를 높은 에너지로 발사해 관찰 대상의 움직임을 펨토초(10억 분의 1초) 단위로 끊어서 볼 수 있도록 만든 기기다.
분석 결과 연구진은 빗해파리 신경계를 구성하는 뉴런들이 시냅스로 연결돼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신 ‘합포체(Syncytium)’라 불리는 얇은 막들이 뉴런과 뉴런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다. 합포체란 핵을 하나만 갖고 있는 세포들이 서로 여러번 융합해 만들어지는 다핵성 세포다. 신경계가 이런 식으로 구성된 동물이 발견된 건 빗해파리가 처음이다.
키틀만 박사는 “동물 신경계는 개별 세포로 존재하는 뉴런들을 시냅스가 이어주는 형태로 돼있을 거라는 게 지금까지 기본 전제였다”며 “이번 연구 결과로 그 전제가 깨졌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확실한 결과를 위해 빗해파리를 한 번 더 분석해 데이터를 재확인하는 과정까지 거쳤다. 키틀만 박사는 “두 번째 분석 결과도 첫 번째와 같았다”며 “빗해파리 신경계에는 시냅스가 없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빗해파리 신경계가 다른 동물들 신경계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빗해파리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다세포동물이라는 가설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말미잘, 산호, 해파리와 같은 생물들은 자포에 있는 촉수로 사냥을 하는 특성 때문에 ‘자포동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혹스(Hox)라 불리는 유전자를 공유한다. 혹스 유전자는 사지나 장기 같은 다양한 신체 구조물 형성을 돕는다. 빗해파리는 혹스 유전자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아 지구에 가장 먼저 생긴 동물이라고 보는 과학자들도 있다.
참고자료
Science, DOI: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e5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