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오리건대 연구진은 선충의 유전자를 변형해 대마초 성분인 카나비노이드와 만나면 신경세포가 녹색형광을 띠게 했다. 적색은 다른 신경세포이다./Stacy Levichev

마리화나(Marijuana), 즉 대마초를 피우면 공복감이 몰려와 음식을 마구 먹는다고 한다. 몸 길이 1㎜인 선충도 사람처럼 대마초에 취하면 식탐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마초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때 선충이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미국 오리건대의 숀 로커리(Shawn Lockery) 교수 연구진은 21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대마 성분인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에 취하면 식탐이 폭발한다”고 밝혔다.

예쁜꼬마선충은 회충이나 요충 같은 기생충과 같은 선형동물이다. 신경세포가 300여 개에 불과해 사람을 대신해 뇌과학 연구에 많이 쓰인다. 선충은 인간과 5억년 전에 갈라져 따로 진화했다.

◇오리건주 대마 합법화 계기로 연구

로커리 교수는 “대마 성분인 카나비노이드에 취하면 선충이 먹이를 찾는 시간이 크게 늘고, 영양분이 더 많은 쪽만 찾는다”며 “사람이 마리화나에 취해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폭식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로커리 교수는 2015년 오리건주의 대마초 합법화 조치가 선충 실험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오리건주는 중독성이 약한 대마를 양성화해 마약 수요를 통제하고 세금을 물려 세수도 늘리려 했다. 하지만 대마초에 맛을 들인 사람들이 더 강력한 마약을 찾기 시작했고, 사망자도 급증했다.

로커리 교수는 당시 선충이 먹이를 찾는 과정을 통해 신경세포 차원에서 경제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었다. 대마초가 합법화되자 연구 방향을 틀었다.

대마의 활성 성분인 카나비노이드는 우리 몸에도 있다. 뇌와 신경계, 근육 등 몸 전체에 있는 카나비노이드 수용체 단백질은 인체에 원래 있는 내인성 카나비노이드와 결합해 식사, 학습, 기억과 수면 등 다양한 신체 활동을 조절한다. 대마초를 피워 갑자기 카나비노이드가 많이 들어오면 인체의 다양한 기능이 망가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대마초 성분인 카나비노이드에 노출된 선충은 미로에 들어가 왼쪽으로만 몰려갔다. 그곳에는 선충이 좋아하는 먹이가 있다. 사람이 대마초에 취하면 공복감이 몰려와 식탐을 부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15분 동안 진행된 과정을 180배로 속도를 높여 5초로 보여준 영상이다./Aaron Scha

◇대마초 피운 사람과 같은 식탐 반응 보여

연구진은 선충에게 내인성 카나비노이드인 아난다미드(anandamide)를 과도하게 주고 T자형 미로로 집어넣었다. 미로 입구를 지나면 수평으로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에는 선충이 좋아하는 먹이인 박테리아가 있고, 오른쪽은 영양분이 적은 박테리아가 있는 구조였다. 카나비노이드에 취한 선충은 무조건 왼쪽으로 가서 이전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

다음 실험은 유전자를 바꿔 인간 카나비노이드 수용체가 생긴 선충으로 진행했다. 역시 같은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카나비노이드를 주면 선충이 좋아하는 먹이의 냄새를 더 잘 감지한다고 밝혔다. 카나비노이드가 후각 신경세포에 작용한 것이다.

앞서 연구에서는 대마 성분이 쥐와 영장류 같은 동물에서도 식탐을 유도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대마 효과가 선충처럼 단순한 동물에도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카나비이노이드 수용체와 이로 인한 행동이 아주 오래전부터 진화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를 근거로 대마 성분이 인체 신경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선충으로 저렴하게 알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로커리 교수는 “카나비노이드 신호전달이 인체 대부분에서 나타나므로 다양한 질병과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선충을 이용하면 이와 관련된 치료제를 신속하고 저렴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자료

Current Biology, DOI: https://doi.org/10.1016/j.cub.2023.03.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