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세포의 핵에 있는 유전자는 마음껏 편집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세포 소기관에 있는 유전자에 손을 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질병 치료, 탄소 배출 절감처럼 세포 소기관의 유전자 편집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김진수 싱가포르국립대 초빙교수는 14일 제주 서귀포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한국생물공학회 춘계학술대회 및 국제심포지엄에 초청 강연자로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을 지낸 김 교수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체 교정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유전체 교정 전문기업 툴젠을 창업해 유전자 편집 기술의 상용화를 이끌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동물의 미토콘드리아와 식물의 엽록체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을 소개했다. 세포 소기관은 세포에서 특별한 기능을 하는 구조를 말하는데, 각각 단백질을 만들거나 분해하고 에너지를 만드는 등 생명 활동에 필요한 기능을 한다.
이중 에너지를 만드는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각각 동물과 식물 세포에 있다. 이들은 다른 세포소기관과 다르게 자신만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세포의 에너지를 만드는 기능을 하는 만큼 질병이나 탄소 배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김 교수는 “엽록체에서는 광합성이 일어나는데, 광합성은 탄소 배출 저감과도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광합성은 식물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물을 결합해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으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는 만큼 광합성은 온실가스를 감축할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김 교수는 그 예로 미국의 유전자 편집 기업인 리빙카본을 소개했다. 리빙카본은 유전자 편집으로 생장 속도를 높인 나무를 키워 광합성을 늘린다는 전략으로, 탄소배출권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다만 리빙카본은 핵에 있는 유전자를 교정하는 방식으로, 유전자변형작물(GMO)로 인한 생태계 교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이미 유전자 편집을 활용해 작물 생산량을 늘리거나 재배 편의성을 늘릴 수 있지만, 기존 방식으로 만든 작물은 GMO로 분류돼 소비자들이 꺼려하거나 심한 규제를 받는다”며 “세포 소기관 유전자 편집은 GMO에 속하지 않아 더 경쟁력 있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교수는 엽록체 유전자를 교정해 광합성 효율과 재배 편의성을 높인 작물을 개발하는 ‘그린진’을 창업했다. 또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교정으로 질병 치료를 목표로 하는 ‘엣진’도 창업하고, 세포 배양으로 혈액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레드진’에도 최고기술자문으로 참여하는 등 툴젠 이후 활발한 창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 교수는 “과학자가 창업을 하면 기술 개발이 완료된 이후에는 특별한 역할이 없다”며 “모더나를 창업한 로버트 랭거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MIT) 교수도 40여개의 기업을 창업했는데, 그가 만약 창업에 소극적이었다면 모더나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앞으로 당분간은 현재 창업 기업들의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5~10년 후에는 또 다른 기업을 창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