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미 식품의약국(FDA)은 블루버드바이오가 개발한 신약 ‘진테글로’를 승인했다. 이 약이 희귀질환인 지중해빈혈을 단 한 번의 투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중해빈혈은 유전적 결함으로 적혈구 속 산소를 신체 조직으로 운반하는 혈액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이 결핍돼 장애가 발생하는 혈액 질환이다.
약 효과보다 더 큰 놀라움을 준 건 가격이었다. 진테글로를 1회 투약하는 데 필요한 돈은 280만달러로 약 37억원에 이른다. 먼저 나온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의 1회 투약 가격인 210만달러(약 28억원)를 뛰어넘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 자리에 올랐다.
진테글로와 졸겐스마는 대표적인 ‘유전자 치료제’다. 유전자 치료제는 몸속에 유전자를 전달해 병을 일으켰던 유전자를 교정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질병의 원인을 뿌리부터 뜯어 고치기 위해 수많은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면서 가격이 비싸진 것이다. 최첨단 기술력이 집약된 고가 상품이라는 점에서 유전자 치료제는 미래 바이오산업을 이끌어갈 핵심 제품군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를 내세운 바이오 의약품 전쟁의 최일선에 한국 벤처기업도 있다. 서울대 농화학과에서 석·박사를 따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연구원을 지낸 김용삼 대표가 창립한 진코어가 그 주인공이다. 진코어는 유전자 치료제 중에서도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치료제는 아직 FDA 승인을 받은 사례가 없다. 김용삼 대표의 도전이 성공하면 전인미답의 경지를 한국 바이오 기업이 도달하는 셈이다.
유전자 가위는 환자 몸속에 들어가 문제가 되는 DNA에서 특정 유전자 부위를 찾아내 자르고 붙여 교정·개선해주는 단백질을 말한다.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란 이름의 유전자 편집 기술을 처음 개발한 에마뉴엘 샤르팡티에 우메오대 교수,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는 지난 20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현재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치료제 대부분이 캐스(Cas)9 효소를 이용한 크리스퍼-캐스9 유전자 가위로 활용해 개발되고 있다. 문제는 캐스9의 크기가 커서 이를 몸속의 원하는 부위까지 보내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진코어는 캐스9보다 크기가 3분의 1 이하로 작으면서 유전자 교정 효율은 그대로인 ‘크리스퍼-캐스12f1′을 개발했다.
크리스퍼-캐스12f1은 직접 유전자를 교정하는 효소인 캐스12f1과 표적 유전자를 빠르게 찾아가도록 돕는 길잡이인 크리스퍼(가이드RNA)로 구성돼있다. 이 기술이 향후 시각장애, 근위축증, 빈혈, 암과 같은 다양한 유전병, 희귀난치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크리스퍼-캐스12f1을 이용해 만든 유전자가위 플랫폼 ‘타겟(TaRGET)’은 지난 1월부터 기술이전을 위한 공동연구 과정에 들어갔다. 진코어는 미국 내 20위권 제약·바이오 기업과 계약을 맺었다. 타겟 기술이 사업화에 성공할 경우 3억5000만달러(약 4500억원)를 받게 되는 조건이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제는 진코어의 대표가 된 김 대표를 만났다.
-생명연 연구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하다 벤처 대표가 됐다.
“기존에 나온 유전자가위 중 ‘캐스12a’가 있었다. 생명연에 있을 당시 캐스12a를 기반으로 성능 개량을 해서 좀 더 효율적인 유전자가위를 개발했다. 결과가 좋았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커뮤니케이션에 논문을 실었고 특허도 냈다. 이후 해당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려동물 시장을 노린 것으로 안다.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는 가운데 유전자가위로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품종견, 품종묘들에게서 나타나는 유전병을 유전자가위로 치료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했다. 품종 유지를 위해 근친교배를 거듭한 탓에 반려견이나 반려묘 중에 유전병을 달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유전자가위로 DNA를 수정해 반려동물이 유전병 없이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하려 했다.”
-왜 무산됐나.
“동물 윤리 문제가 있었다. 생명연 중기센터 도움을 받아 비즈니스 모델의 미래 가능성, 사회적 수용성과 같은 것을 점검 받았는데 리스크가 크다는 의견이 있었다. 우리 사업을 부정적인 쪽으로 이슈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아무래도 품종견이나 품종묘가 태어나는 과정 자체에 문제가 많다 보니 해당 시장을 공략하려는 움직임도 좋은 시선을 받기 어려웠다. 창업 초기부터 부정적 이미지를 안고 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 반려동물 쪽 사업은 접기로 했다.”
-유전자가위 효소인 ‘캐스12f1′을 개발한 건 그 이후 이야기인가.
“그렇다. 동물이 아닌 사람을 위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 쪽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 뒤에 창업한 게 진코어다. 창업 이후 캐스12a를 개량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그렇게 캐스12f1 개발에 성공했다. 가장 널리 활용되던 캐스9에 비해 크기가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유전자 치료제로 딱이라는 생각을 했다.”
-유전자 교정 기술은 예전부터 있던 걸로 아는데, 유전자가위는 그것과 뭐가 다른 건가.
“유전자가위도 유전자 조작 기술에 들어간다. 유전자를 자르고 붙여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드는 건 훨씬 예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다만 유전자 조작이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느냐가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전통적인 유전자 조작은 시험관에서 이뤄진다. 몸속 유전자를 밖으로 빼서 조작을 거친 뒤 다시 집어넣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엑스비보(ex-vivo)라 부른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라고도 한다. 반면 유전자가위는 인비보(in-vivo) 방식으로 몸속에 유전자가위 효소를 집어넣어서 그 효소가 알아서 유전자를 교정·개선한다.”
-유전자 가위가 스스로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임무를 수행하는 게 핵심 기술 같은데.
“사람 세포에 있는 유전자는 30억개 정도의 DNA로 구성돼 있다. 그 중 유전자가위가 잘라서 고쳐야하는 건 한두 군데가 전부다. 그래서 유전자를 자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부위를 자를지 파악해 유전자가위가 그 위치로 가게끔 유도하는 게 기술의 핵심이다. 그 역할을 하는 게 ‘크리스퍼’라 불리는 가이드RNA다. 유전자가위가 유도탄이라면 크리스퍼는 유도탄 표적을 가리켜주는 레이저 유도 장치라 보면 된다.”
-크리스퍼가 제 기능을 하도록 정확도를 끌어올려야 치료제 상용화가 가능한 걸로 이해된다.
“처음 나온 유전자가위 기술인 크리스퍼-캐스9은 오프타겟 문제를 고질적으로 안고 있다. 오프타겟이란 크리스퍼가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거나 오류를 일으켜 유전자가위가 멀쩡한 유전자를 건드려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의미한다. 유전자가위 기술로 유전자 치료제를 만들어 상용화하려면 결국 세 가지가 필요하다. 유전자가위가 유전자를 제대로 잘라 붙이는 것, 크리스퍼가 유전자가위를 제대로 유도하는 것, 몸속 유전자까지 막힘없이 갈 수 있을 만큼 유전자가위 크기가 작을 것이다.”
-진코어의 ‘타겟’ 플랫폼도 그걸 목표로 공동연구 중인 건가.
“미국 제약·바이오 업계를 통틀어 20위권에 있는 글로벌 기업과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R&D(연구개발)를 이어가 기술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사업화에 성공하면 3억5000만달러를 해당 기업으로부터 받기로 했다. 매출이 생기면 그에 따른 로열티도 나온다. 진코어의 역할은 물질개발과 전임상(동물실험)을 완료하는 것까지다. 이후 임상부터 승인, 출시까지는 해당 기업이 도맡아서 한다.”
-기술이전을 넘어 인수합병에 대한 생각은 없나.
“당연히 열려있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제약·바이오 산업 규모와 기업들 몸집이 엄청나게 커졌다. 꿈을 크게 갖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벤처로 시작해 그 정도로 몸집을 불리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시장이 커지면서 생태계가 굴러가는 흐름도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벤처 창업과 기술이전, 대기업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전반적인 기술 수준도 크게 상승했고 좋은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 선순환 흐름에 올라탈 생각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