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크게 뜨고 보자. 이쪽과 저쪽이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수학자들이 반복되는 형태 없이 평면을 채울 수 있는 도형을 사상 최초로 발견했다. 수학계의 난제를 해결한 순수 학문의 성과이면서도 고강도 신소재를 개발할 길을 연 실용적 가치도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아칸소대의 챔 굿맨-스트라우스(Chaim Goodman-Strauss)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일(현지 시각)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비주기적 타일링(aperiodic tiling)이 가능한 13각형 도형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 도형의 모양 때문에 ‘모자(the hat)’라는 별명을 붙였다. 모자들은 서로 빈틈없이 맞물리며 평면을 가득 채우면서도 반복되는 형태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 모자의 각 변의 길이가 달라져도 결과는 같았다.
◇블랙홀 연구자가 창시한 ‘이상한’ 타일
보도블록이나 벽지, 욕실을 보면 단순한 무늬가 반복적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 타일들이 빈틈없이 이어진 것과 같다고 타일링 또는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쪽매맞춤’이라고 부른다.
여러 도형이 대칭 이동을 반복하며 벽면을 채운 것을 ‘주기적 타일링(periodic tiling)’이라고 한다. 체스판은 검고 흰 정사각형이 번갈아 있다. 한 줄만 건너뛰면 똑같은 무늬가 나온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은 17가지 주기적 타일링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비주기적 타일링은 반복되는 형태 없이 도형으로 평면을 채우는 것이다. 1963년 미국의 수학자인 로버트 버거(Robert Berger)는 처음으로 서로 다른 2만426개의 도형이 평면을 반복 형태 없이 채울 수 있음을 입증했다.
연구진은 이번 13각형 모자가 ‘아인슈타인(einstein)’ 도형이라고 했다. 상대성이론을 만든 물리학자의 이름이 아니라 독일어로 ‘하나의 돌(ein stein)’이란 뜻이다. 한 가지 도형으로 벽면을 대칭 구조 없이 채웠다는 것이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는 1974년 두 가지 다른 모양의 마름모로 비주기적 타일링을 구현했다. 단일 도형으로 비주기적 타일링이 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펜로즈는 우주론에서도 이름을 남겼다, 옥스퍼드대 교수로 있으면서 1970년 당시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에 있던 스티븐 호킹 교수와 우주가 블랙홀의 한 점(點)에서 시작됐다는 이론을 만들었다.
연구진은 두 가지 방법으로 아인슈타인 도형을 증명했다. 먼저 13각형 도형을 여러 개 연결한 ‘메타타일(metatile)’들이 모여 다시 더 큰 ‘슈퍼타일(supertile)’을 만들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이 무한히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런 계층적 구조는 비주기적 타일링의 일반적 모습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다음은 13각형 변들의 상대적 길이를 바꿔도 역시 반복되는 형태가 없이 평면을 채울 수 있음을 입증했다.
연구진은 비주기적 타일링의 증명은 고성능 컴퓨터와 창의적인 인간의 합작품이라고 밝혔다. 굿맨-스트라우스 교수는 “말 그대로 100만개 중 하나를 찾기 위해 99만9999개를 걸러내는 지루한 작업을 해야 하지만 가치가 있다”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증거를 만드는 데 인간이 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또 다른 아인슈타인 도형을 찾겠다고 밝혔디. 논문 공저자인 캐나다 워털루대의 크레이그 카플란(Craig S. Kaplan) 교수는 “이번에 우리가 문을 열었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새로운 도형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고강도 신소재 개발 길도 열어
과학계는 이번 연구 결과가 기초 수학 연구의 성과이면서도 응용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주기적 타일링은 결정 구조에서도 나타난다. 같은 구조가 반복되다 보니 일부 문제가 생기면 결정 구조가 무너진다. 바로 깨어지는 것이다. 비주기적 타일링은 이런 문제가 없는 고강도 신소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비주기성을 띠는 이른바 ‘준결정(準結晶, quasicrystal)’에서 잘 알 수 있다. 이스라엘 공대(테크니온)의 댄 셰흐트만(Dan Shechtman) 교수는 결정도 비결정도 아닌 준결정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발견한 공로로 20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셰흐트만 교수가 1982년 처음 발견한 것은 수직 방향으로는 결정의 구조와 비슷했지만, 평면은 기존 결정학 이론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구조였다. 그는 소금이나 철 같은 결정도, 유리 같은 비결정도 아닌 이 구조를 준결정이라고 이름 붙이고 2년 뒤 학계에 발표했다.
그는 준결정 구조가 1970년대 영국의 수학자 펜로즈가 이론적으로 발견한 비주기적 타일링 구조와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미국 프린스턴대와 이탈리아 자연사박물관 공동 연구팀이 러시아에서 채취한 운석에서 동일한 준결정 구조를 발견한 뒤 셰흐트만 박사의 발견은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았다.
준결정의 수학적 특징도 밝혀졌다. 주변의 꽃잎을 세보면 그 수가 1, 2, 3, 5, 8, 13, 21, 34…중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수가 앞 두 수의 합이 되는 이른바 ‘피보나치 수열’이다. 2005년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의 박정영 박사는 피보나치 수열의 원자배열을 가진 준결정은 일반 원자 배열의 결정보다 마찰력이 8분의 1로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강도에 잘 닳지 않는 특성 때문에 준결정 구조는 신소재의 금맥(金脈)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준결정은 열이나 전기를 잘 전달하지 않고 표면에 다른 물질이 잘 달라붙지 않는 특성도 있다. 노벨 재단은 셰흐트만 교수 수상 당시 기업들이 준결정 구조를 응용해 프라이팬 코팅재나 엔진을 보호하는 단열재 등으로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비주기적 타일링 연구 성과 역시 같은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예술적 가치도 있다. 네덜란드 판화가인 에셔( Maurits Cornelis Escher)는 기하학을 응용해 있을 수 없는 세계를 그려냈다. 워털루대의 카플란 교수는 “사람들이 이번 모자 도형으로 에셔 풍의 디자인을 만드는 것을 봤다”며 “많은 사람이 욕실 바닥에도 모자 도형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arxiv, DOI: https://doi.org/10.48550/arXiv.2303.10798
Nobel prize, https://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2011/popular-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