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부터 8일까지(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제3차 인간 유전체 편집 정상회의가 열렸다. /영국왕립학회 영상 캡처

인간 유전체(게놈) 편집에서 눈부신 발전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체세포 유전자 치료법이 과도하게 비싸고 누구나 더 저렴하고 공평한 혜택을 누리도록 세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책임 있는 사용을 위한 윤리 원칙이 마련돼 있지 않고 안전성과 효능 기준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물림될 수 있는 인간게놈편집 기술을 허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합법적인 연구를 보호하면서도 일부 병원과 개인이 질병 예방을 가장해 입증되지 않은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10일 영국왕립학회에 따르면 이달 8일 영국 런던에서 폐막한 제3차 인간게놈편집 국제정상회의 조직위원회는 “유전될 수 있는 유전체 편집은 아직 이르며 연구윤리를 위한 규제가 더 필요하다”며 이 같은 내용의 조직위원회 성명을 발표했다.

6일부터 사흘간 열린 이번 회의는 영국왕립학회, 영국의학한림원, 미국립과학원, 세계 과학한림원 회의가 참여한 가운데 인간 유전체 편집 연구의 진행 상황, 전망과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개최됐다.

인간 유전체 편집은 인간의 염색체에서 DNA의 구성 요소인 ‘뉴클레오티드’를 추가하거나 제거, 교체해 DNA를 바꾸는 방법이다.

이번 회의에선 특히 후손에게 유전될 수 있는 유전체 편집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허젠쿠이 전 중국 남방과학기술대 교수는 2018년 11월 유전체 편집 아기를 발표하며 과학계에 윤리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허젠쿠이 전 교수의 실험을 두고 “유전체 편집이 의도치 않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우려하는 의견이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1년 전 지구적 협의를 통해 인간 유전체 편집에 대한 규칙을 발표했으나 권장에만 그쳤다. 정상회의 연사들은 “현재까지도 관련 국제법이 없다”며 “규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상회의 조직위원회도 마지막날 발표한 성명에서 “유전될 수 있는 인간 유전체 편집은 현재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 절차와 윤리적 원칙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논의가 계속돼야 할 것”이라 밝혔다.

허젠쿠이 전 중국 남방과학기술대 교수는 2018년 홍콩에서 열린 제2회 인간 유전체 편집 국제 정상회의에서 "크리스퍼(CRISPR) 기술로 최초의 유전체 편집 아기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조선비즈

◇ 체세포 게놈 편집 공평한 접근 필요

조직위원회는 체세포 인간 게놈 편집 연구에서 성과를 보였으며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형되는 겸상적혈구병에 관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 연구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고 광범위한 유전병과 후천적 질병과 장애 모두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직위원회는 다른 유전자 치료법처럼 결과를 완전히 이해하고 예상치 못한 영향이 발생할 경우 이를 식별하려면 장기 연구가 필요하고 체세포 치료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위해서는 현재의 비싼 유전자 치료비와 인프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겸상 적혈구 질환과 다른 유전 질환 환자의 상당수는 서비스가 부족한 국가 및 지역 사회 또는 적절한 기반 시설이 없는 환경에 살고 있어 더 많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인구가 포함되도록 하고 연구를 구상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직위원회는 또 인간 배아에서 게놈 편집을 사용한 기본 연구도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인간 배아 게놈 편집은 초기 인간 발달의 측면을 이해하거나 유전 질환으로 이어지는 유전자 변이를 수정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계속되고 있다. 조직위원회는 줄기세포로부터 기능적 배우자를 유도하는 기초 연구에서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며 이 분야의 기초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中, 개정한 윤리 정책 발표... 민간 연구는 아직 규제 밖

이런 가운데 중국은 지난달 27일 유전체 편집에 대한 새로운 윤리 규정을 제정했다. 중국에선 허 전 교수가 유전체 편집 아기를 발표한 직후 세계 각국이 중국 과학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자 2019년부터 관련 윤리 규정 제정을 추진해왔다. 각국은 과연 중국에서 또다시 유전체 교정을 통해 태어난 아기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겠냐고 봐왔다.

중국 과학계가 마련한 새 규칙은 기존 지침과 규칙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먼저 연구의 대상이나 인간 피험자는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 참여자’로 불리며 연구자와 동등하게 과학에 기여하는 것으로 문구를 변경했다. 이를 두고 장린치 중국 칭화대 의대 교수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균형있는 조치”라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사용하는 약물이나 치료법의 대안을 알려야 한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문제가 생길 때는 참가자들이 윤리 심의위원회에 연락할 수 있도록 방법을 설명해야 하며 이해 관계와 생물학적 시료의 출처, 연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병원과 의료 기관에만 적용됐지만 이번 정책은 고등 교육 기관과 과학 연구 기관에도 적용된다.

일부 연구자들은 중국 과학계가 마련한 이번 규칙이 아직 허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조이 장 영국 켄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정안이 매우 중요하지만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회사와 비영리기관, 기타 민간 단체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열린 제3차 유전체 편집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과학자들도 “중국이 인간 유전체 편집에 대한 지침과 정책을 개정하고 있지만 민간 연구는 테두리 밖에 있다”고 꼬집었다.

민간 연구에 대한 정책은 다른 국가들도 손대지 못하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2015년 이미 인간 배아에 유전체 편집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에는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며 일찍이 윤리 문제에 대처했다. 하지만 이 역시 민간 기관에는 공공 기관보다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적용해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녜징바오 뉴질랜드 오타고대 생명윤리센터 교수는 “문제는 서류상의 지침이나 규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며 “정책 발표 이후에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