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에스코바르가 남긴 하마가 콜롬비아의 강과 호수에서 번식해 30년만에 수가 4마리에서 150마리로 늘었다./AP연합

콜롬비아의 마약왕인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1993년 경찰과 총격전 끝에 사망했다. 그는 생전 미국에서 하마 4마리를 밀수해 집에서 키웠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마약왕의 하마들이 인근 강과 호수로 도망가 약 150마리로 불었다.

과학자들은 외래종인 하마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동물보호 단체는 하마 포획이나 살처분에 반대하고 나섰다. 일부에서는 하마가 현지에서 멸종한 대형 초식동물을 대신해 자연을 예전 상태로 복원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과연 마약왕의 하마는 민폐일까, 아니면 굴러 들어온 복덩이일까.

◇천적 없는 하마, 강·호수에서 번식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2일 “과학자들이 콜롬비아 환경부가 외래 침입 동물인 에스코바르의 하마가 퍼지는 것을 막는 대신 동물보호 활동가들 편에 설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콜롬비아 환경부의 수잔나 무하마드 장관은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외래종인 하마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보다 보호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촉발했다. 무하마드 장관은 지난 1월 말 연설에서 하마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동물보호국 신설을 포함해 동물의 복지를 정책의 우선순위로 삼겠다고 밝혔다.

에스코바르는 생전 미국 동물원에서 수컷 하마 한 마리와 암컷 3마리를 몰래 들여왔다. 그가 죽자 하마들은 인근 마그달레나 강과 인근 호수에서 번식했다. 하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외래 침입 동물이다. 콜롬비아에는 하마의 천적이 될 만한 동물이 없다.

과학자들은 하마가 생태계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한다. 2019년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조너선 서린 교수 연구진은 ‘생태학(Ecology)’에 “하마가 있는 호수는 유기물이 많아 독성 녹조를 유발하는 수중 미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가 증식하기 좋다”고 밝혔다. 녹조는 수질을 악화시키고 물고기를 죽여 지역 어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다른 과학자들은 하마가 현지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바다소 일종인 서인도제도 매너티의 먹이와 서식지를 뺏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마가 자동차와 충돌하거나 사람을 공격하는 일도 늘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멸종위기 동물인 서인도제도 매너티. 바다소 일종인 이 동물은 콜롬비아에서 퍼지고 있는 하마에 먹이와 서식지를 뺏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위키미디어

◇“정부 나서지 않으면 주민들이 사살할 것”

과학자들은 궁극적으로 하마 개체수를 자연에서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살처분하고 일부는 포획해서 동물원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2021년 멕시코 과학자들이 국제 학술지 ‘생물 보전(Biological Conservation)’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앞으로 16년 안에 하마는 1500마리까지 늘 수 있다. 멕시코 연구진의 시뮬레이션(가상실험)에 따르면 2033년까지 야생 하마 수를 0으로 만들려면 매년 30마리씩 제거해야 한다.

당시 논문의 교신저자인 멕시코 킨타나로오 자치대의 나탈리 카스텔블랑코 마르티네즈 교수는 네이처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20년 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콜롬비아 정부가 과학자들이 제시한 증거 대신 대중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2000년대 하마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2009년 군인들이 에스코바르가 키우던 수컷 하마인 ‘페페’에 총을 겨눈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하마에 대한 동정론이 퍼졌다.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환경부에 몰려가 마비 상태로 만들었다. 콜롬비아에서는 처음 보는 하마의 모습에 반한 사람들이 늘고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자 정부도 하마 제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콜롬비아 출신인 미국 스탠퍼드대의 알레한드라 에체베리 교수는 “왜 생태계 전체에서 고유종도 아닌 한 종만 우선순위로 삼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그는 지난달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에 콜롬비아 정부의 생물다양성 정책 중 외래종 관리 정책이 매우 적다고 지적했다.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환경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 활동가는 “일시적 기분으로 하마를 구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며 “가능한 많은 동물을 윤리적으로 구하자는 것이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카스텔블랑코 마르티네즈 교수는 “우리도 하마를 걱정한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하마를 살처분하거나 거세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지금 개체수를 줄여야 나중에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정부가 살처분하지 않으면 주민들이 나서서 총으로 사살할지 모른다”고 했다.

외래 종과 유사한 멸종 초식동물. 호주 시드니 공대 연구진은 외래 종이 멸종 동물을 대신해 원시 생태계를 되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조선DB

◇”원시 생태계 회복에 도움될 수도”

지난 4일 미국 CNN방송은 현지 주민들의 우려가 커지자 마그달레나 강이 있는 안티오키아주 당국이 결국 하마 70마리를 인도(60마리)와 멕시코(10마리)의 자연보호구역에 각각 이주시키는 계획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다만 인도와 멕시코는 하마들의 자연 서식지는 아니다. 아니발 가비리아 안티오키아주지사는 현지 매체 블루라디오(Blu Radio)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원래 서식지인 아프리카에 보내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하마가 콜롬비아 생태계를 인간이 살던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호주 시드니 공대의 애리언 월릭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20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외래 초식동물 64%가 지난 10만년 동안 인간이 멸종시킨 대형 초식동물과 유사했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콜롬비아의 하마는 1만년 전 멸종한 대형 라마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실제로 일부 외래종들은 이미 생태계에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호주에 들어온 물소는 산불의 강도와 횟수를 줄였다. 멸종한 대형 유대류처럼 풀과 나뭇잎을 적절히 조절해 불쏘시개를 줄였다는 것이다. 남미의 하마는 뭍에서는 멸종한 라마처럼 풀을 뜯고, 물에서는 멸종한 코뿔소처럼 배설물로 수중 생태계를 비옥하게 한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많다. 하마의 배설물로 인해 콜롬비아 수중 생태계에 녹조가 심해졌다는 보고도 있다. 연구진도 “새로 동물을 도입하지는 게 아니라 이미 도입된 동물의 특성을 연구한 것일 뿐”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논문의 공동 저자인 미국 매사추세츠대의 존 로원 교수는 “인간 때문에 포식자가 사라지고 서식지가 파편화된 것이 문제지 초식동물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Nature,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3-00606-z

Biological Conservation, DOI: https://doi.org/10.1016/j.biocon.2020.108923

Ecology, DOI: https://doi.org/10.1002/ecy.2991

Nature Ecology & Evolution, DOI: https://doi.org/10.1038/s41559-023-01983-4

PNAS, DOI: https://doi.org/10.1073/pnas.1915769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