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로체스터대의 랑가 디아스 교수가 초전도체 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네이처에 다른 연구팀보다 훨씬 낮은 압력에서 작동하는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미 로체스터대

전류가 흐를 때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超傳導) 현상을 일상 온도에서 구현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이라면 거리 상관없이 무손실 송전(送電)이 가능해 에너지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고성능 전자석도 만들어 자기부상열차와 핵융합 발전에 활용될 수 있다.

미국 로체스터대의 랑가 디아스(Ranga Dias) 교수 연구진은 9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섭씨 21도에서 대기압 1만배 정도 압력으로 상온 초전도 현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초전도 물질을 개발했지만 대부분 영하의 온도나 대기압 수백만배인 초고압에서 가능했다.

하지만 과학계는 환호보다 냉담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디아스 교수가 지난 2020년에도 네이처에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실험 자료를 임의로 수정한 의혹이 있다고 지난해 네이처가 논문을 철회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로체스터대 연구진은 “이번에는 다섯 번이나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다른 연구진에게 초전도체 시료를 검증용으로 제공하지도 않아 의혹만 증폭시켰다.

미 로체스터대의 랑가 디아스 교수는 다이아몬드 모루 사이에 수산화물을 넣고 압착해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미 로체스터대

◇초전도 현상 구현한 ‘붉은 물체’

초전도 현상은 전류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흐르는 것이다. 1911년 영하 270도에서 처음으로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이래 과학자들은 더 높은 온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찾기 위해 경쟁했다. 상온 초전도가 구현되면 무손실 전력 전송을 구현할 꿈의 기술이 되기 때문이다.

디아스 교수는 2020년 당시 섭씨 15도에서 수소와 탄소, 황을 다이아몬드 모루 사이에 넣고 압착해 초전도체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성과는 그해 사이언스지의 10대 과학 성과에도 선정됐다.

이번에는 희토류 원소인 루테튬에 수소와 질소를 넣고 대기압의 2만배 압력으로 압착하고 3일간 섭씨 200도로 구웠다. 연구진은 새로 만든 초전도체가 압력을 가했을 때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고 ‘붉은 물체(red matter)’라고 이름 붙였다.

상온 초전도체인 루테튬 산화물. 크기가 1㎜ 정도이다. 압력을 가하면 파란 색에서 붉은 색으로 바뀐다고 '붉은 물체(red matter)'란 별명을 얻었다./미 로체스터대

붉은 물체는 대기압 1만배와 섭씨 21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가장 잘 보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디아스 교수는 “이전 실험에서 상온 초전도체가 대기압의 100만배에서 작동한 것을 이번 결과와 비교하면 말을 탄 사람 옆으로 페라리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 차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문의 공저자인 미국 네바다대의 아슈칸 살라마트 교수는 “이번 논문은 수산화물에 대해 가장 상세한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카네기 과학연구소의 알렉산도 곤차로프 박사도 사이언스지에 “믿을 만하다”며 “맞는다면 이 논문은 다양한 기술을 동원한 역작”이라고 말했다.

◇학계는 판단 유보하는 의견 많아

학계 다수는 아직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대의 제임스 햄린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맞는다면 정말 혁명적인 결과”라면서 “상온 초전도체는 초고효율 전력망과 컴퓨터칩뿐 아니라 자기부상열차와 핵융합에 필요한 초강력 전자석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과학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은 과거 논문 철회 이력뿐 아니라 이번 발표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피엔자대의 릴리아 보에리 교수는 “수산화물에서 기대한 모든 것과 모순된다”고 말했다.

영하의 초전도체 위에서 자석이 떠 있는 모습. 상온 초전도가 구현되면 자기부상열차를 쉽게 만들 수 있다./미 로체스터대

기존 초전도 이론은 결정 구조의 진동이 전자 사이의 접착제 역할을 해서 저항 없이 전류가 흐른다고 설명한다. 과학자들은 수산화물에서도 상온 초전도 현상이 가능하나 영하 148의 극저온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접착제 역할을 하던 진동이 약해져 초고압에서나 격자 구조와 전자쌍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아스 교수는 이번에는 크기가 아주 작은 질소 원자가 커다란 루테튬 원자 사이를 꿈틀거리듯 지나가면서 격자 구조를 단단하게 하는 상자 모양을 이룬다고 반박했다. 질소가 진동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로체스터대 연구진은 지식재산권을 들어 이번에 만든 초전도체를 다른 연구기관에 배포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이언스에 밝혔다. 사피엔자대의 보에리 교수는 “완전히 비과학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플로리다대의 햄린 교수는 “로체스터대 연구진이 시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재현 실험을 하지 말라고 하겠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Natru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5742-0

arXiv, DOI: https://doi.org/10.48550/arXiv.2302.08622

미 로체스터대 연구진이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네이처에 발표했다./미 로체스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