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가 기계전자장치와 결합된 사이보그(cyborg)가 될 날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스웨덴 린셰핑대의 마그누스 베르그렌 교수 연구진은 2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고분자 원료와 효소를 액체상태로 동물에 주입하자 몸 안에서 전류가 흐르는 전극이 생합성됐다”고 밝혔다.
지금도 신경질환을 치료하거나 진단하기 위해 인체에 전극을 이식하지만 딱딱한 인공물이 세포나 조직에 부작용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몸에서 저절로 합성되는 젤 형태의 전극은 인체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아 의학 연구와 치료에 새로운 길을 열 전망이다.
◇동물 몸이 스스로 전극 합성
연구진은 생물학과 전자공학을 연결하기 위해 딱딱한 기판이 없어 부드러우면서도 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을 생체 조직 안에서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효소가 담긴 액체 상태의 젤을 과학실험에 많이 쓰는 어류인 제브라피시와 질병 치료에 쓰는 거머리의 몸에 주입해 전극이 자라도록 한 것이다.
논문 공동 저자인 스웨덴 룬드대의 크세노폰 스트라코사스 연구원은 “젤이 몸 안의 물질과 만나면서 전류가 잘 흐르는 형태로 구조가 바뀌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제브라피시의 뇌와 심장, 꼬리지느러미, 거머리의 신경조직에 젤 상태의 생체 전극을 합성시켰다.
생체 전극 합성은 전적으로 이미 몸에 있는 신진대사 과정을 이용해 동물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외부에서 주입한 젤과 효소가 몸의 신진대사 공장에 투입돼 전극을 생산한 셈이다. 실험동물의 유전자를 변형하지 않았고, 외부에서 빛이나 전기자극을 주지도 않았다. 점성이 있는 젤을 주입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연구진은 전극으로 바뀐 젤에 외부의 센서 장치를 연결해 생체 신호를 감지하는 데 성공했다. 생체 전극이 외부 전자장치를 통해 신경을 자극할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피부에 붙이는 박막형 전자회로를 몸 안의 생체 전극과 연결하면 인체에서 완전히 통합된 전자회로가 완성될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장미로 만든 전자회로를 발전시켜
논문 공동 저자인 룬드대의 로저 올슨 교수는 앞서 린셰핑대 베르그렌 교수가 만든 장미 전자회로를 보고 동물의 몸에서 전극을 생합성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베르그렌 교수는 2015년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살아있는 장미의 관다발을 이용해 전자회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관다발은 식물 줄기에서 물과 영양분이 오가는 통로이다. 연구진은 전기가 잘 통하는 고분자 물질을 관다발에 넣어 살아있는 전선을 만들었다. 물과 양분의 이동에는 문제가 없도록 했다. 연구진은 이 전선으로 일종의 트랜지스터를 구성했다.
하지만 식물과 동물은 큰 차이가 있다. 식물에는 단단한 세포벽이 있어 전극 형성이 쉽지만, 동물 세포는 물렁물렁한 형태이다. 연구진은 젤 상태의 원료를 주입해 부드러운 동물 세포 안에서도 전극을 생합성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과학기술대의 사히카 이날 교수는 사이언스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과거 실험동물의 유전자를 바꿔 전기가 흐르는 물질을 합성시킨 적이 있지만 그 방법은 인체에 적용할 수 없다”며 “유전자 변형 없이 주입한 젤이 몸이 원래 만드는 물질과 반응해 전극을 만든 것이 이번 연구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물론 당장 사람 몸에서 전극을 합성할 수는 없다. 이날 교수는 “전극 생합성 방법이 동물에 안전한지 장기적인 관찰로 입증해야 한다”며 “젤을 제브라피시의 뇌에 주입해도 행동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지만 3일만 관찰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참고자료
Science, DOI: 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c9998
Science, DOI: 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g4761
Science Advances, DOI: https://doi.org/10.1126/sciadv.150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