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발전(토카막 방식)을 위해서는 고온의 플라스마를 자기장 방식으로 가두는 게 필요하다. 핵융합 발전에서는 이 고온의 플라스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핵융합 발전 설비를 흔히 ‘인공 태양’에 비유하는데 바꿔서 말하면 인공 태양의 불이 얼마나 오랫동안 꺼지지 않고 유지하느냐가 핵심인 셈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밝은 빛을 내뿜는 인공 태양이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과학 선진국이 아닌 한국에 있다. 바로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 있는 한국형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다. 2050년 정도로 예상되는 핵융합 상업 발전을 위해 KSTAR에서는 플라스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운영하고 있는 KSTAR의 모습. 현재 토카막 내벽을 텅스텐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지난 22일 방문한 KSTAR 제어실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KSTAR는 초전도 니오븀주석합금(Nb3Sn)으로 만든 초전도 자석으로 세계 최초 운전에 성공했고, 지난 2020년에는 플라스마 온도 1억도를 30초 동안 유지하면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기존 세계 최고 기록도 KSTAR가 세운 8초다.

KSTAR 제어실의 한쪽 벽면은 실시간으로 KSTAR의 운전 조건과 플라스마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모니터로 가득했다. 화면 중앙에 있는 모니터는 토카막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토카막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플라즈마 상태로 만든 연료 기체를 담아두는 도넛 모양의 용기를 말한다.

원자의 핵과 전자가 분리된 플라즈마 상태는 불안정해 핵융합 발전을 위해서는 오랜시간 유지하는 기술이 필수다. 토카막 주변에는 초전도 자석이 감싸 강한 자기장이 만들어지는데, 그 덕에 플라즈마가 토카막 내벽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다. 플라즈마는 이렇게 토카막 안을 계속 회전하면서 안정성을 유지한다.

명성에 비해 KSTAR 제어실이 한산한 이유는 내벽 업그레이드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KSTAR는 토카막 내벽을 탄소 타일에서 텅스텐 디버터로 교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윤시우 핵융합에너지연구원 부원장은 토카막 내부의 고온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KSTAR 제어실에서 윤시우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부원장이 토카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병철 기자

플라스마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플라스마-내벽 상호작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플라스마 내벽 소재인 탄소는 고온을 버티기에 적합하지만, 핵융합의 원료인 수소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반면 텅스텐은 고온에서 안정적이면서, 수소를 흡수하지도 않아 플라스마-내벽 상호작용을 줄일 수 있다. 윤 부원장은 “올해 안으로 KSTAR 토카막 내부의 절반을 텅스텐으로 교체할 예정”이라면서 “이를 통해 올해 플라스마 운전 시간을 50초까지 연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제어실에서 연결된 통로를 지나 주장치실에 들어서자 지름 10m, 높이 6m의 거대한 크기를 가진 KSTAR가 나타났다. 토카막을 감싸는 원통형 진공용기 주변으로 헬륨 공급장치, 플라즈마 진단장치를 비롯해 각종 장치가 연결돼 있었다.

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목표는 2026년까지 KSTAR를 이용해 플라스마 온도 1억도로 운전 시간 300초를 달성하는 것이다. 윤 부원장은 “플라스마 운전 시간을 늘리려면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100초 운전까지는 플라스마-내벽 상호작용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100초 운전을 달성하면 300초까지 큰 문제는 없고, 300초 이후에는 플라스마가 안정돼 상시 운전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KSTAR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가동은 쉽지가 않다. 한 번 켜는데만 1000만원이 들고 기타 실험 비용을 감안하면 자주 작동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실제 KSTAR를 가상의 공간에 그대로 구현한 버추얼 KSTAR를 활용할 계획이다. 버추얼 KSTAR는 언제, 어디에서든 플라스마 운전 시험을 할 수 있다.

권재민 핵융합에너지연구원 통합시뮬레이션연구부장은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버추얼 KSTAR의 플라스마 안정성은 실제 KSTAR에서 일어나는 것과 거의 같아 언제, 어디서든 연구할 수 있다”며 “플라스마 안정성의 난제를 푸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버추얼 KSTAR에는 지난 2020년 도입한 슈퍼컴퓨터 ‘카이로스’가 쓰인다. 카이로스는 1.56PF(페타플롭스·1PF는 초당 1000조번의 연산처리를 수행)의 연산 속도를 가진 슈퍼컴퓨터다.

KSTAR의 토카막 내부 모습. 토카막 내벽은 텅스텐 디버터로 교체할 예정으로, 고온 플라즈마의 장시간 운전 기술 확보에 필수적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KSTAR가 플라즈마 300초 운전에 성공하면 한국은 ‘핵융합 실증로(DEMO)’ 건설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KSTAR가 플라즈마 운전 조건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라면, DEMO는 핵융합 에너지를 이용해 실제 전기를 만들고, 그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하는 장치다.

정부는 핵융합 실증로 기본개념을 수립해 올해부터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목표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서고 있다. 핵융합 실증로를 건설해 차세대 에너지원으로서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하고, 경제성을 높이고, 안전 기술 확보·규제를 정비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최대 전기출력 500㎿ 이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절반 수준의 발전 능력을 갖추고, 삼중수소 유효자급률을 1 이상 달성해 안정적인 연료 공급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핵융합 연료 중 하나인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지만, 삼중수소는 지구에 희귀하게 존재한다. 이외에도 저·중준위 방사성폐기물과 삼중수소의 관리 능력을 검증하고 경제성을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목표 달성을 위해 실증로 설계에 착수하고, 올해 안으로 핵융합 장기 연구개발(R&D) 로드맵을 수립하기로 했다. 또 기초연구 지원 대상을 토카막에서 혁신 기술까지 넓혀 지난해 순에너지 생산에 성공한 레이저 핵융합 등 다양한 기술 개발을 지원해 핵융합 저변을 넓힐 예정이다. 유석재 핵융합에너지연구원장은 “이제 핵융합을 더이상 ‘꿈의 에너지’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에 가까워졌다”며 “핵융합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버추얼 KSTAR에서 이뤄지는 플라즈마 운전 시험을 가상으로 재현한 영상. 가상 실험으로 플라즈마 운전 기술을 확보할 예정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